그날 후 8번의 자해, 그리고 26년만의 '미투'

전북CBS 임상훈 기자 2018. 3. 2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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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교사에게 유사성행위 강요당해"

- 8차례 자해시도…"8월 정년 전에 반드시 파면돼야'"
- 해당 교사 "사실무근, 돈 요구하는 등 순수한 미투 아냐"

1992년 여름의 어느 날 청소시간, 전북 김제의 한 중학교 과학실.중학교 3학년이었던 A(41·여)씨는 이 시공간에서 삶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26년이 흐른 지금 A 씨는 그동안 정신과 육체를 곪게 한 교사의 성폭력을 폭로하겠다고 나섰다. 화려한 교육경력을 뒤로 하고 오는 8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전북지역 교장 B(61)씨는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A씨의 이름도 기억 못할 뿐 아니라 순수한 미투도 아니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26년의 한 맺힘'과 '정년을 앞둔 황당함' 사이의 상반된 주장을 정리했다.[편집자 주]

◇ 한 번의 성폭력, 8번의 극단적 선택

"A야, 면담 좀 하자."

청소시간. 교사 B씨가 손에 깍지를 꼈고 함께 복도를 걸어 과학실로 향했다는 말로 A씨는 그날의 기억을 설명했다.

B씨는 진한 키스를 하다 웃옷을 걷어 올리며 A씨의 가슴 맨살에 입을 대려했다.

강하게 저항하자 B씨는 은밀한 부위를 꺼내 A씨의 손으로 잡게한 뒤 격하게 흔들어 사정을 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B씨의 옷차림과 색깔 뿐 아니라 팬티도 기억할 정도로 당시 상황은 머릿속에 박혀 있다"며 "사정을 하고 나서 B씨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네 꿈이 뭐냐'고 물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르고 아주 작은 아이의 삶은 그 이후 무너졌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삶은 여중생 때 겪은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A씨는 말했다. 17살에 약을 먹은 것을 시작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8번의 자해를 했다. 서른 살 무렵 처음으로 정신과 의사에게 그날의 기억을 털어놨고, 거듭된 자해에 남편의 추궁이 이어지면서 2년 전에야 남편도 A씨의 상처를 알게 됐다.

A씨는 "저 하나 죽으면 그만이니까 어쩌면 덮고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미투운동에 용기를 얻었다"며 "8월이면 B씨가 정년인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반드시 파면돼야 한다"고 뒤늦은 미투의 이유를 밝혔다.

◇ 절대로 결백, 왜 하필 나를?

B씨는 A씨의 주장은 모순투성이이며 돈을 요구하는 등 순수성도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B씨는 "성추행을 했다는 학교 과학실은 학생들의 왕래가 잦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공간인데다가 A씨가 말하는 장소와 경위 등도 계속 바뀌고 있다"며 "결단코 성추행은 없었고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고 반박했다.

B씨는 또 "A씨가 5000만 원을 요구하며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한다고 하기에 제가 직접 입금하겠다고 하니 거부했다"며 "미투 운동이 불길처럼 번지던 때이고 오죽 힘들면 저런 고백을 할까 싶어 조용히 덮으려 했지만, 성추행은 없던데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A씨의 연락을 차단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목된 이유에 대해 B씨는 "당시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교사였기 때문에 그런 일도 있었겠다고 A씨가 스스로 생각한 것 같다"며 "만약 성추행을 할 생각이었다면 저를 따르는 학생이었겠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했겠느냐"고 답답해했다.

B씨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A씨는 "당시 과학실 쪽 건물 출입구가 공사 중이어서 한적했기에 장소로 삼았을 것이며 제 진술은 바뀐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5000만 원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B씨의 인정과 사과, 그리고 죗값으로 제가 봉사하는 사회복지단체에 후원금을 생각했다"며 "직접 입금하지 못하게 한 것은 B씨는 그 사람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자격이 안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 '인정하고 사과했다' vs '안쓰러워 그랬다'

26년이 흘렀다. CCTV도, 목격자도, 증거도 없다. A씨는 서른 살 무렵 정신과 치료 당시부터 자해의 원인으로 B씨의 성폭력을 얘기한 자료가 있다고 말할 뿐이다.

하지만 지난 2월초 A씨가 B씨에게 접근한 초기에는 B씨가 사건을 인정했다가 이후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고 A씨는 주장하고 있다. 둘 사이의 통화 녹음 중 B씨의 발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어제 밤에 생각했는데 나는 겨우 2~3일 됐는데, A씨는 이 십몇 년을 그렇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너무 잘못했더라고. 경찰 그런 건 내가 다 조사를 받을 거지만 만나서 진실로 용서를 구하고 싶네..(중략)..내가 하늘을 볼 엄두가 안 나더라고. 내 잘못으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까."

A씨는 "반성하고 사과할 시간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며 "공소시효도 지났고 증거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며칠 뒤 B씨가 돌변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분개했다.

그러나 B씨는 인정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B씨는 "A씨가 안쓰러워 순수한 의도로 달래려고 한 것일 뿐이다"며 "그런 말들에 앞서 A씨를 알지 못하고 성추행도 절대 없었지만 원한다면 사과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부분은 빼고 악의적으로 편집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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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임상훈 기자] axio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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