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짧은 치마 안돼"..미투 키우는 대한민국 性교육

이영민 기자 2018. 3. 2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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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습니다.

교육부가 2015년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과 교육자료에는 성폭력 예방법으로 '단둘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등 성폭력 피해자의 대응만을 강조하는 내용이 실려 문제가 됐다.

박성정 선임연구위원은 "어려서부터 남자아이에게 '여자가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이나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가정·학교 교육에서 강하게 시켜야 한다"며 "여학생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 상의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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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곁에 미투-이것도 성폭력입니다②] 남녀 성장기..우리는 어떻게 무감각해지나

[편집자주] 미투 운동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만큼 참아온 피해자들의 울분이 큽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멀었다고 말합니다. 언어, 환경, 관행, 제도 등 곳곳에 바꿔야할게 많습니다. 이런 것도 미투 대상이 될까. 됩니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관행적으로 내려온 규율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누군가는 상처받고 불쾌해합니다. 이제는 바꿀 때입니다. 함께 편안하고 즐거운 사회를 위해 어떤 점을 고민해야할지 살펴봅니다.

/삽화=김현정 디자이너 기자


#A씨는 태어나자마자 분홍색 포대기에 싸였다. 공주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갈 때면 선생님의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여고 시절 교훈은 '착한 행실·고운 몸매'였다. 20세 딸이 짧은 치마를 입은 모습에 A씨의 부모님은 "그런 차림으로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나무랐다.

#B씨가 다닌 유치원은 여자에게 빨간색, 남자에게 파란색 가방을 줬다. 어릴 적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B씨에게 엄마는 일부러 어두운 옷을 입혔다. 초등학교 때 분홍색 옷을 입고 등교한 친구를 보고 "왜 여자처럼 입냐"며 놀렸다. 남고 시절 교훈은 '큰 뜻을 품고 세상을 바꾸자'였다. 선생님은 "여자는 예쁘다고 하면 다 좋아한다"고 가르쳤다.

대한민국 여성 A씨, 남성 B씨가 겪은 성장기 경험은 취재진이 20~30대 남녀 6명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 실제 성 역할을 고정하는 여러 요소가 우리 사회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뿌리박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듯 여겨지는 색상, 옷, 장난감 등 주변 환경과 가정·학교 교육이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를 낳고 성폭력은 바로 이런 불균형을 배경으로 싹을 틔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인숙 여성학 강사(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학 사회학 박사)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아들과 딸의 성역할과 고정관념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딸에겐 '말 잘 듣고 착한 모습', 아들에겐 '또래 친구를 주도하는 강한 모습'을 바라는 등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태도가 성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투 운동(Me too·나도 고발한다)이 확산 되자 '왜 참다가 이제야 말하냐'는 일각의 반응이 나오게 된 배경에도 성 역할의 사회화 문제가 깔려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자)은 "여성은 자라면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불쾌한 일도 참고 넘어가고,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도록 사회화가 된다"고 말했다.

성 역할 고정은 교육기관에서도 이뤄진다. 박성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교과서에는 직업, 가사 등 성 역할을 구분하는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며 "교사들도 학생을 대상으로 남녀역할을 구분하고 차별화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 당국이 내놓는 성교육 자료는 오히려 성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가 2015년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과 교육자료에는 성폭력 예방법으로 '단둘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등 성폭력 피해자의 대응만을 강조하는 내용이 실려 문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성교육을 성관계, 임신, 출산과 같은 보건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는 "교육청에서 성교육을 담당하는 장학사는 대부분 보건간호학 전공자"라며 "성교육에서 보건은 일부 일뿐, 그보다는 인권·평등 등의 개념을 아우르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성 역할을 고정하는 교육은 성폭력에 '무감각'해지는 방식으로 변질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피해자한테서 사건의 원인이나 책임을 찾으려고 하거나 가해자의 행위를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려는 경향이 여기에 해당한다.

박성정 선임연구위원은 "어려서부터 남자아이에게 '여자가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이나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가정·학교 교육에서 강하게 시켜야 한다"며 "여학생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즉각 상의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을 이야기하면 여성에게 피해가 온다고 생각해서 부모나 학교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조치하는 걸 회피해왔다"며 "부모와 교사, 남녀 모두 서로 주의하고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letswin@, 최민지 기자 mj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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