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비밀은 어떻게 국경을 넘었나

2018. 3. 2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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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전문가의 '전쟁 같은 음식사'
십자군과 잉어, 유럽이 부풀린 식인
흥미진진 서사에 화려한 도판
문학을 통해 본 음식 이야기도

[한겨레]

음식과 전쟁-숨겨진 맛의 역사
톰 닐론 지음, 신유진 옮김/루아크·2만4000원

음식의 역사는 대부분 만들어졌다. 소설 <삼총사>를 쓴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요리 대사전>(1873)이라는 1155쪽에 달하는 방대한 프랑스 음식사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시적 표현을 위해 정확성을 포기했다.” 요리를 한 사람은 절대다수가 여성이었지만 요리책은 대부분 남성이 썼다는 점도 한몫했고, 계급, 성별, 인종, 지리에 따라 요리책들은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느라 핵심은 놓치고 허점이 남았다. 문학이나 음식에 관한 희귀 고서적과 절판도서를 판매하는 중고책서점 파초서점을 운영하며 <슬레이트> <보스턴 글로브> 등의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기고해온 톰 닐론은 음식의 의미를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 역사를 다시 쓰고자 했다. <음식과 전쟁>은 로마인들이 유럽에 전파한 신기술이었던 잉어 양식부터 페스트 감염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 파리에서 대유행한 레모네이드, 신대륙을 탐험하며 식인 풍습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열광적으로 글로 옮겼던 문화, 프랑스 혁명과 저녁 만찬의 상관관계 등을 다룬다.

1529~1553년경 그려진 <마그리아베키 필사본>(1903년 복제)에 나오는 식인 광경. 아즈텍인들은 가축을 전혀 기르지 않았고 주민 대부분이 전적으로 옥수수에 의지했고 늘 기아상태였다. 톰 닐론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루아크 제공

1차 십자군 원정대는 ‘민중 십자군’이라고 쓰고 “굶주리고 무시무시한 폭도의 십자군”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게 닐론의 설명이다. 변변한 무기도 없는 5만여 농민들은 광란의 폭력과 무절제, 반유대주의로 무장하고 유럽을 가로질렀다. 이들을 이끈 이는 프랑스 북부 아미앵 출신으로 물고기와 와인으로만 연명했다는 맨발의 은자 피에르. 그는 나사렛 예수의 계시를 받고 ‘만나’로서 잉어 양식의 비법을 성지에서 가져가 고향에 전파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런 기묘한 논리의 사슬 덕에, 잉어를 먹은 십자군들은 콘스탄티노플까지 진격해 도시를 불태우고 짓밟았으며, “포로로 잡은 튀르크인을 삶아 먹고 이들을 ‘새로운 만나’로 여기게끔 권장했다. 가장 가난하고 약한 십자군들은 싸우는 대신 적을 먹어치움으로써 전쟁에 일조했다.”

식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다. 식인종들은 “그들이 물리치고 싶은 상대는 굽고, 아끼는 상대는 끓인다. 적에게는 불, 가족에게는 물”이라는 원칙을 지킨다. 가장 위대한 도시 문명인 아스테카 제국은 식인행위로 가장 위대한 문명이었다. 가축이 없이 옥수수에 의존해 도시의 규모가 커지자, 인육 요리를 위한 레시피를 개발했다. 문제는, 식인 이야기는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저지른 훨씬 더 끔찍한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있었다. 원주민이 유럽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들려준 식인 이야기는 흥을 돋우거나, 놀라게 하거나, 무섭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전달 과정에서 엄청나게 부풀려졌다. 신대륙의 원주민 문명에 주홍글씨를 새겨넣으려던 서양 세계는 오히려 식인 풍습에 빠져버린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부유한 잉글랜드인이 아일랜드 어린이를 잡아먹는 <겸손한 제안>이라는 소설을 썼고,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친구들과 두 달간 ‘시체보관소’에서 공급받은 ‘식사 재료’로 식인을 했다고 주장했다.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식인주의자일 텐데, 닐론의 말로는 “식인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미친 사람이다.”

빈첸초 세르비오의 <식칼>(1593년)에 나오는 연못에서 하는 잉어 낚시. 조각에 대한 대단히 영향력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서로, 새롭게 대중화된 포크의 사용법도 설명했다. 루아크 제공

<음식과 전쟁>이라는 제목은 음식과 전쟁의 관계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기도 하지만 식문화에 관련된 ‘전쟁 같은’ 이야기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의 가사에 등장하는 “전쟁 같은 사랑”처럼. 영어 원제는 “푸드 파이트와 문화 전쟁: 맛의 비밀스러운 역사”로, 푸드 파이트는 많이 먹기 대회나 음식을 집어 던지고 끼얹으며 즐기는 파티나 축제를 일컫는다. <음식과 전쟁>에는 음식 관련 희귀 고서적을 취급하는 저자답게 도판 자료가 크고 아름답게, 풍성하게 실려 있다.

김원중의 <푸드 에콜로지>는 문학을 통해 본 음식 이야기를 담았다. 백석의 시와 산문에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먹는 행위까지 이어지는 공동체의 문화를 읽어낸다. <여우난골족>에서 명절을 맞아 흩어져 살던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풍성하게 장만한 음식을 즐기는 풍경을 그리는 것처럼.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여우난골족>)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선 육식의 성정치학, 나아가 남성중심문화가 여성과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을 읽어낸다.

먹기는 쉽고 말하기는 복잡하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단계를 거쳐야 입안에 들어와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이 음식이기 때문이며, 그것 없이는 아무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고 먹으면 더 재미있다.

이다혜 작가,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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