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불로소득 없어지면 '특권 없는 세상' 성큼"

2018. 3. 22. 2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짬]헨리조지포럼 공동대표 김윤상 교수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는 ‘지대이자차액세’로 토지 불로소득을 100% 환수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토지 소유자가 얻는 지대(임대료)에서 땅 매입 자금의 이자를 빼곤 모두 조세로 거두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불로소득이 없어지니 투기도 사라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가 토지 불로소득에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것은 50년 전인 1968년이다. 그해 2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했다. 전국 땅값이 들썩했다. 평당 200원이던 땅값이 5000원으로 치솟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 2학년이던 그는 지주들이 정부 개발의 결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부나 대학원에서 전공한 도시계획학 교수들은 대부분 ‘문제가 없다’고 했다.

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도시계획학 박사를 받은 뒤엔 아예 연구 주제를 토지로 바꿨다. 그리고 지금껏 토지 불로소득과의 싸움을 해오고 있다. 21일 대구 자택에 머물고 있는 이 교수와 전화로 만났다. 때마침 토지공개념이 헌법개정안에 포함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1994년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 대구지역 교수들과 만든 헨리조지연구회는 지난해 10월 헨지조지포럼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이정우, 전강수, 강남훈 한신대 교수와 함께 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다. 포럼의 활동 근거지도 대구에서 서울로 옮겼다. “서울에 젊고 열정적인 조지스트(헨지 조지의 사상을 따르는 이들)가 여럿 있고 정부 정책에 대한 영향력도 서울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죠.” 포럼 내부적으로 월 1회 세미나를 하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엔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함께 지대개혁을 주제로, 올 1월엔 김종민 민주당 의원실과 보유세 개편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19세기 미국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1839~1897)는 사회가 진보하는데도 극심한 가난이 존재하는 것은 토지사유제 때문이라고 봤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대 100%를 조세로 징수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런 사유의 뿌리를 치밀하게 파고든 조지의 대표작 <진보와 빈곤>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82년 유학을 마치고 경북대로 복직한 뒤 토지 문제에 관심을 쏟다 조지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바로 조지의 사상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샬켄백재단에서 그의 저작을 구해 읽기 시작했죠.”

도시계획학에서 토지로 연구 주제를 바꾸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도시계획학의) 도시모형을 다루다 보면 우리 사회에 보다 절실한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얄팍한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죠.” 그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절실한 본질적 문제는 바로 토지이다.

50년 전 경부고속 개통 뒤 땅값 들썩
지주 막대한 불로소득에 고개 갸웃

도시계획학 박사 뒤 토지연구로 전환
미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 저술 번역

94년 대구에서 꾸린 헨리조지연구회
작년말 ‘서울기반’ 헨리조지포럼으로

조지의 저작을 접하고 토지 정책에 대한 연구 의지는 더 굳어졌다. 86년부터 잇달아 토지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89년엔 <진보와 빈곤> 축약번역본, 97년엔 완역번역본을 냈다. 2009년엔 30여년에 걸친 토지 연구를 정리해 <지공주의: 새로운 토지 패러다임>이라는 책을 냈다. 그 뒤론 특권 문제로 연구 범위를 넓혀 2013년과 2017년 <특권 없는 세상: 헨리 조지 사상의 새로운 해석> <이상사회를 찾아서>와 같은 저술도 냈다.

<진보와 빈곤> 표지.

먼저 포럼의 역점 추진 사업을 물었다. “제가 참여는 하고 있지만 전강수 교수와 이태경 헨리조지포럼 사무처장이 활동을 주도합니다.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의 연계’ 방안이 관심사항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토지 보유 규모에 따라 누진제를 적용한 토지보유세를 거둬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조세 저항이 줄어들 수 있다는 보는 것이죠.” 그는 누진세로 불로소득을 일부 인정하지 말고, 이자를 빼곤 지대를 100% 환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포럼 안에서도 원칙주의자인 셈이다.

1968년과 2017년 토지 불로소득 문제의 심각성을 비교하면? “지금은 지가 상승의 정도가 훨씬 완화됐죠. 그동안 많이 올랐어요. 그 이익을 기성세대가 많이 가져갔어요. 그로 인해 세대간 격차가 심해졌죠. 요새 헬조선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부동산 문제에 기인합니다. 월급 받아 월세 내거나 대출금 갚으면 남는 게 없잖아요.”

참여정부 때 그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해 토지 불로소득 환수 강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절친인 이정우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참여정부도 노력한 만큼 토지보유세 강화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불로소득 환수라는 정의가 현실이 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거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죠. 불평등 구조의 하위 그룹인 을 중에서도 변화가 오면 자신이 더 불리해질까 염려하거나 또는 ‘사회는 원래 그런 것’이란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고정관념이 판단력을 마비시켜 이해관계마저 초월하죠.” 외국은? “미국만 해도 부동산보유세가 우리보다 많게는 10배 가까이 됩니다. 중국과 대만의 국부 쑨원이 제창한 3민주의 중 민생주의가 헨리 조지 사상을 이어받았어요. 그 때문인지 두 나라 토지제도는 우리보다 나아요.”

주류 경제학계 쪽에선 토지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김 교수의 주장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지치지 않았나요? “기독교 역사가 오래됐지만 아직도 하나님 나라가 오지 않았잖아요. 정의로운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어요. 인생 허무하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니 허무한 것이죠.” 그가 20년 이상 함께해온 옛 헨리조지연구회 회원 가운데 비기독교인은 그와 이정우 교수뿐이었다.

“토지는 불평등 구조를 낳는 특권의 핵심입니다. 미투도 남성 특권의 반작용이잖아요. 토지 개혁 사상이 확대되면 특권 없는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윤상 교수 제공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