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에서 백남준까지, 어렵지 않아요

김미진 입력 2018. 3. 22. 17:57 수정 2018. 4. 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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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글:김미진, 편집:최은경]

앤디워홀 그림은 알록달록 예쁘기라도 하지만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도대체 어디서 감상의 시작점을 두어야할지 어렵다. 현대 미술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요리 같아서 앞에 놓은 포크, 나이프, 숟가락, 젓가락 등을 두고 무엇으로 한 점 먹어보나 고민만 많았다.

4월 8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사전 7키워드> 전은 현대 미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포크, 나이프, 숟가락, 젓가락 사용법을 친절하게 일러주고 있다.   

초현실주의, 이성을 넘어 또 다른 세계로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전쟁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탈출하려는 의지로 찾아낸 대안이다.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인간의 무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상상력의 세계를 주로 표현했다. 초현실주의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자동기술법(automatism), 콜라주(collage), 프로타주(protage), 데칼코마니(decalcomanie), 데페이즈망(depaysement) 등의 기법을 활용했다." - <현대미술사전 7키워드>전 팸플릿 중에서
좌 : Reproduction of time ? Explorer. 한만영. 220x145.5x4.2cm. 판넬에 혼합재료. 거울. 2017 초현실주의. / 우 : Work. 고영훈. 혼합재료. 1990.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극사실주의. ⓒ김미진
아하! 그래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 어려운 거구나. 대신 한만영 작가의 Reproduction of time ? Explorer 는 재밌다. 그리스나 로마에 있을 법한 신전 기둥 사이로 내가 있다. 시간과 공간의 초점을 내게로 맞추어 본다. 신전의 기둥 사이로 비치는 나는 그 시대로 갈 수 있지만 여신도 아니고, 그 시대 사람도 아니고, 그냥 나다. 내가 시간과 공간을 규정하는 주체가 되어본다.

모노크롬, 사유하는 단색 미학으로

"모노크롬 회화는 흰색, 흑색 등 한 가지 또는 매우 제한된 색채만 사용한다. 한국에는 1970년대 초반에 등장하여 중반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서구의 미니멀 아트와 비교되는 경향으로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국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진화했다. 여백의 미와 무위자연 사상 등 한국의 전통 미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전통적 가치관을 내재한 회화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는 '단색화'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 - <현대미술사전 7키워드>전 팸플릿 중에서
좌 : 마포87-7. 박장년. 240x130.3cm. 생마포에 유채. 1987. 전북도립미술관 소장. 모노크롬. 우 : 상황. 문복철. 캔버스에 유채. 1961. 전북도립미술관소장. 앵포르멜. ⓒ김미진
작품 앞에 서 본다. 먹먹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한참을 서 있으려니 단색이 주는 단조로움이 나를 쉬게 해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그냥 고요하다거나 완전히 단절된 세계도 아니다. 단색의 화면 속에 형태가 있고, 질감과 양감 뿐 아니라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보면 흐르는 시간속에서 순간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멈춘 딱 그 순간 같기도 하다. 화살이 날아가는 도중의 시간을 아주 잘게 쪼갠 어느 시점에는 화살이 정지되어 있는지, 날아가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 갑자기 생각난다.

미디어 아트, 미디어는 마사지다

"미디어 아트는 사진·전화·영화 등의 발명 이후, 이러한 신기술을 활용하는 예술을 말한다. '뉴미디어 아트'라고도 불리며 '매체예술'로 번역한다. 1960년대 텔레비전과 방송의 등장으로 대중매체가 도래한 이후에는 위성방송, 인터넷, 웹사이트, 컴퓨터를 이용한 멀티미디어, 가상현실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 대중매체가 발달한 오늘날 미디어아트는 단순한 예술을 넘어서 일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 <현대미술사전 7키워드>전 팸플릿 중에서
근대화슈퍼. 조형섭. 혼합매체. 가변크기.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미디어아트 전시관 일부 ⓒ김미진
백남준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백남준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머릿속에 온통 회오리 바람만 일었다. 다행히 오늘은 아니다. "TV모니터를 이용해 로봇이나 악기를 만들고, 그것이 내는 소리를 시각화해서 화면에 나타낸다"는 설명을 읽으니 그가 현대 문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내는지 알듯도 하다. 전시장 중앙에 있는 조형섭작가의<근대화슈퍼>는 재미있다. 뒷바퀴가 없는 자전거에 조명등이 실려 있고 뒷먼으로 돌아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모니터가 세 개 실려 있다.

훤하게 밝히고 달리고자 하는 뒷바퀴 없는 Morden은 무엇을 팔고 싶었을까? 뒤를 향한 브라운관이 과거를 자꾸 되새김질 해야 한다는 것일까? 뭐라고 해석하든 일단 관람자의 몫이다. 이제 겁이 덜난다.

이 세가지 주제 말고도 '앵포르멜(Informal) - 형(形)을 거부한 뜨거운 자유', '극사실주의(Hyper-Realism) -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 - 개념  ·사건 · 몸짓으로' 라는 4가지 주제에 따른 전시를 하고 있다.

좌 : 팝 아트 전시관 입구. / 퍼포먼스 아트 전시관 일부 ⓒ김미진
2층을 들어서 먼저 팸플릿을 받아들고 팸플릿의 순서를 따라가면서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전시관 순서대로 다니면서 보아도 무방하다. 현대미술을 7개의 주제로 나누어 간단한 설명과 그에 딱 부합하는 작품 몇 점인데 현대 미술에 대한 기초 강의를 들은 듯하다.

1층을 지나면서 언뜻 보이는 학예실이 달리 보인다. 그들이 전시를 의떤 의도로 기획을 하고, 어떻게 관람자들에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을 한 강도만큼 나는 즐거이 보고 가는구나 싶어 고마운 생각이 든다.

현대 미술은 언제나 건너 갈 다리를 못 찾는 강 저편의 언덕만 같았는데 오늘 전시회를 보고나니 이제는 징검다리 돌 일곱 개는 가진 듯하다. 물론 현대 미술을 몰라도 산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전북도립미술관의 <현대미술사전 7키워드> 전을 보고 난 후의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하다. 누군가가 고민을 하고 형상화를 해 놓은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의 결로 보편적인 이야기와 좀 다른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다. 그런 내가 맘에 든다.

좌 : 모악산 아래의 전북도립미술관. / 우 : 기둥에 말걸다. 박재연작 ⓒ김미진
전시장 밖을 나오니 비 온 뒤라 그런지 공기는 더 맑고, 풍광이 좋다. 모악산 아래 자리잡은 도립미술관의 야외 풍경은 소담스럽다. 나무를 따라 걷다보니 조형 작품도 만나지고, 멀리 산에서 피어 오르는 운무도 보인다. 봄이 되면 간단하게 점심 싸들고 와서 전시회 관람도 하고, 산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좀 걸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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