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합격이 안 되는 이유,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훈희 입력 2018. 3. 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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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공시생 일상 그린 웹툰 <9급 공무원>

[오마이뉴스 글:이훈희, 편집:최은경]

10여 년 전 우석훈, 박권일님은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취업난을 겪으며 어렵게 직장을 구해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청년 세대'를 '88만원 세대'라 불렀습니다. '88만원'은 어린시절 소위 IMF 시대를 겪으며 불안한 미래를 맞이했던 세대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때 받을 것으로 추정되는 급여액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IMF 시대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받아들여 경쟁은 격화되고 고용은 더 불안정해졌습니다.

구제금융 시대를 지나 힘겹게 회복해가던 경제는 2008년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또 한번 휘청거립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성역없이 구조조정을 감행했는데, 구조조정의 대부분은 인력감축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며 구조조정은 위기 때만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상시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고용의 질은 88만원 세대 때보다 더욱 떨어졌고 어렵게 얻은 일자리마저도 안정적이지 않은 세상이 찾아왔습니다.

대학생들로 대표되는 요즘 청년층에게 이전 세대 선배들이 말하던 캠퍼스의 낭만이란 말은 먼 과거의 흔적일 뿐인 듯 합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해 스펙을 쌓아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춘 인재들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지만 직장을 구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인생에서 대학생 다음 취업준비생이라는 새로운 단계가 더해졌습니다. 바늘구멍을 통과해 취직에 성공한다고 해도 고용불안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요즘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가기관이나 공기업을 선호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가장 말단인 9급 공무원은 해마다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청년층이 몰립니다. 심지어 최근엔 '9급 공무원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포착한 것일까요? 출판사 필로소픽에서는 독자들로부터 예기치 않은 호응을 얻었던 일상 웹툰 <9급 공무원>을 단행본으로 출간했습니다.

취업실패 3년 취준생 공무원을 꿈꾸며 노량진으로

만화속 주인공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맞습니다)는 지방 대학교 문과 출신으로 26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생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자신있게 구직활동을 시작했지만 3년 동안 지원했던 모든 회사들에서 불합격되는 열패감만을 안고 29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는 우연히 급여는 좀 적지만 '정년보장, 퇴직 후 연금, 정시퇴근, 다양한 복지 혜택' 등이 제공되는 공무원 광고를 보고 '공시생의 길'에 들어서기로 합니다.

인터넷 공시생 커뮤니티를 돌아보며 얻은 정보, 다양한 합격수기 등을 보며 %%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키워갑니다. 자신은 수월하게 합격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일까요. %%은 공무원 시험 설명회에도 참석해 맘 잡고 1년만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상담사의 말에 합격의 희망을 품습니다. 인터넷 강의도 신청하고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려니 쉽지 않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계획대로 공부가 되지 않고 졸기만 하는 자신을 보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갑니다. 결국 %%은 집에서는 공부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어머님의 퇴직금을 받아들고 1년을 목표로 노량진 공시생의 일원이 됩니다.

환경이 바뀌기는 했지만 %%의 공부 태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첫 공무원 필기시험을 치지만 탈락하고 맙니다. %%는 첫 시험 실패 후 함께 공부하기 위해 스터디 그룹에도 가입했습니다. 스터디 그룹 멤버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모두들 시험에 합격해 노량진 생활을 끝냈지만 %%는 여전히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료들의 노량진 탈출을 지켜보면서 %%도 느끼는 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게 남은 건 셀 수 없이 많은 취업 실패경험, 서울 일반행정 불합격, 노량진 이사, 9급 공무원 시험 2년 연속 불합격, 그리고 32살이라는 나이였습니다.

"%%는 노량진에서의 시간이 계속되길 원했던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희생하면서라도. 그렇게 이번 연도도 또 똑같이 학원에 돈을 주고 또 잠을 자고 또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을 기다려주지 않았다."(132쪽)

공시생 %%에게 노량진 생활이 남긴 것

다시 한 해를 보낸 33살의 %%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합격 커트라인이 낮은 직렬로 목표를 수정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공부를 단 한번도 열심히 해본 적이 없기에 의자에 1시간 앉아 있는 것도 자신에겐 힘들다는 사실을 공시공부 4년차에 알게 되었다. %%은 그날 화장실에서 조용히 울었다. 공부하려는 마음가짐은 생겼지만 따라 주지 않는 자신의 몸이 너무 싫었다. 노량진으로 올라온 지 3년, %%은 그렇게 진짜 공시공부를 시작했다. 남들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만큼 책도 보고 문제도 풀었다."(136-137쪽)

공무원 시험 합격의 영광은 %%에게 끝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 도전에서도 불합격한 후 %%는 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노량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은 5년이란 시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그것이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까? 조금만 더 일찍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더라면, 차라리 5년 전에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 들어갔더라면, 아니면 고등학교 때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지잡대에 안 갔더라면, 애초에 공무원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더라면, 이 상황이 바뀔 수 있었을까? 책을 펴는 게 무서웠다. 노량진 특유의 우울함은 %%을 도저히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148-151쪽)

멈추지 않는 후회가 밀려오는 %%에게 남은 것은 5년 동안의 노량진 생활로 늘어난 빚과 병에 걸린 어머니, 그리고 회복할 수 없는 그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지역의 작은 신문 한켠에 %%와 어머니의 기사가 실리는데...

잘그린 그림도 아니고 뭔가 심오한 내용을 다루었던 것도 아닌데 독자들은 왜 이 웹툰에 공감하고 호응했던 걸까요. 아마도 노량진이라는 공간에서 시험준비를 하며 지내봤던 사람들이라면 %%와 자신을 온전하게 등치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허송세월했던 시간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를 한심하고 철없는 인간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량진'이라는 장소가 가진 압박감과 그곳에서의 삶이 가진 척박함에는 공통적으로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그린 노량진 학원가의 모습을 지나치듯 본 적이 있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새벽에 나와 자리를 맡으려 길게 줄을 서고,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책을 보고 걸어가며 밥을 먹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시험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합격자는 지원자의 채 3%가 되지 않습니다.

무뎌진 공감 능력 회복과 국가적 논의가 함께 가야

만화를 다 읽은 후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갑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회를, 특히 청년들을 이와 같은 상황으로 내모는 걸까요? 요즘 청년들이 '열정'과 '노력'이 부족해서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청년 실업은 노력하지 않는 혹은 눈만 높아진 청년들의 책임일까요? 누구 말처럼 아픈 게 청춘이니까 참고 지내라고 하면 될까요? 이들을 '9급 공무원 세대'라고 단순화된 범주로 취급하는 것이 정당할까요?

주인공 %%보다는 약 10여 년 정도 앞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저와 같은 선배세대들은 이 만화를 어떻게 읽을지 궁금합니다. 제 경우 대학시절 공무원 시험 준비라 하면 사법, 행정, 기술 등 고시를 의미했습니다. 9급 공무원에 대학졸업생들이 몰린다는 뉴스를 보면서 한심하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새 저도 모르게 '요즘 젊은 애들은 파이팅이 없다'던 제 선배 세대들처럼 되어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 <9급 공무원>을 통해 타인의 처지와 감정에 무뎌져가던 공감의 감각을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을 제대로 노력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의 모습을 보며 야단이라도 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노력하라 야단치고 %%가 더 열심히 공부를 했으면 %%는 공무원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매년 지원자의 97%는 합격이라는 영광을 품에 안을 수 없는 게임이니까요. 이 문제,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최근 몇 년 동안 심화되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한다거나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보겠다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거나 하는 시도를 하고는 있습니다. 청년배당 혹은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마련해 실행하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명확히 진단하지 않은 채 언 발에 오줌 누는 것 같은 처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또한 주도하는 정치 세력의 변화에 따라 정책의 유동성이 큰 것도 걱정입니다. 사람들의 심리, 사회분위기, 경제상황, 교육정책, 정치지형 등 다양한 영역이 얽히고설킨 청년 문제라는 실타래를 어디에서부터 풀어가야 하는 것인지 국가적인 논의가 지속되어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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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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