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강국의 이면②]'울며 먹는 겨자' 인천공항 면세점..임차료 4조에 만년적자

심나영 2018. 3. 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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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서울 시내 면세점 6개→13개
'울며 먹는 겨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우는 면세점 뺨까지 때리는 규제


천문학적인 임차료에 사드 보복 겹쳐 적자 신세 못 면해
매출 따라 임차료 달라지는 '영업요율' 고려해 볼만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인천국제공항은 국제공항협의회가 뽑는 '세계공항서비스평가상'을 12년 내내 받아왔다. 지난해엔 평가에 참여하지 않아 상을 못 받았지만 세계에서 1위를 지킨 분야는 여전히 있다. 면세점 매출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은 2조3313억원이었다. 두바이 공항을 제치고 2년 연속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면세 잔치'는 공항의 몫일 뿐 이곳에서 영업하는 면세점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유는 부담스런 임차료 금액이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올린 매출 약 1조2000억원 중 절반인 6000억원가량을 임차료로 인천국제공항공사(공사)에 지급했다. A면세점 관계자는 "매출을 많이 올린다고 해도 임차료가 워낙 비싼 데다 임차료 외에도 제품 원가, 인건비, 관리유지비까지 내야 하는 실정"이라며 "공항 면세점은 만년 적자"라고 말했다.

◆밑 빠진 독 인천공항, 그래도 들어가려는 이유

'밑 빠진 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면세점들이 인천공항을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까닭은 복합적이다. 먼저 '구매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면세점은 화장품ㆍ주류ㆍ담배ㆍ패션 등 각 업체에서 물건을 직매입해 재고를 확보한 다음 물건을 판매한다. 대량으로 물건을 떼어 올수록 '바잉 파워'가 커진다. 고객이 몰리는 인천공항은 이런 점에서 필수적이다.

인천공항은 면세점 해외 진출의 교두보이기도 하다. 국내 면세점이 해외에 진출할 때 공항 운영 능력을 평가받는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천공항의 면세점 운영 경험은 가점 요소다. 우리나라에 들어 오는 외국인들이 통과하는 관문이란 점에서 '자존심'도 걸렸다. 면세업계가 인천공항을 '울면서도 먹어야 할 겨자'에 비유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설날 연휴를 하루 앞둔 14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이 예년에 비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영종도=강진형 기자aymsdream@


그럼에도 롯데면세점이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건 천문학적인 임대료를 이겨내지 못해서였다. 현재 1터미널에 입점한 면세점들은 2015년 9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3기 사업자들이다. 3기 입찰 당시는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들던 황금기였다. 입찰 직전 해인 2014년 롯데면세점은 연간 사상 최대 영업이익(3915억원)을 기록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입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롯데면세점은 5년간 임차료 4조100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1터미널 4개 구역 사업권을 따냈다.

중국인 관광객 유입만 보장되면 시내 면세점 이익으로 공항 면세점 적자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외부 변수가 생겼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이 발길을 끊었다. 2015년 9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공항에서만 2000억원 적자를 냈다. 그래도 처음부터 롯데면세점이 철수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지난해 추석 이후부터 공사에 임차료 재협상을 요구했다. 임차료 납부 방식을 매출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게 핵심이었다. 실적에 따라 임차료도 변동돼 면세점 측 부담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공사는 귀를 닫았다. "영업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매출이 줄어도 재협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특약 내용이 근거였다.

◆공사 요구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근본 문제

업계는 모든 계약 내용을 공사가 제시한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B면세점 관계자는 "계약 해지 시 위약금도 김포공항 면세점과 비교하면 5배 차이가 난다"며 "공사가 제시한 대로 따르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어 사인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롯데면세점이 철수 결정을 내린 뒤에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공사의 불공정 거래 행위 신고는 취하하지 않고 결과를 기다리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도 1터미널 임대료 재조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발단은 2터미널 개장이었다. 대한항공이 2터미널로 이사하며 1터미널 이용객 수가 줄어들어 면세점 매출도 함께 추락했다. 지난해부터 공사와 면세점 측은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임차료 재조정에 나선 것이다. 임차료 인하 폭과 관련 2터미널 개장 이후 빠진 '고객수'만 고려해야 한다는 공사 측과 '객단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면세점 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매출 감소분만큼 임차료를 인하하는 방식까지 나왔지만 쉽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급한 불은 롯데면세점이 떠난 자리에 들어올 사업자를 선정하는 일이다. 4월 초 공고가 나면 바로 입찰 절차에 들어간다. 공사 측은 "롯데면세점은 물론 해외 사업자까지 입찰에 들어올 수 있다"며 '입찰 흥행'에 신경 쓰는 눈치다. 임차료 때문에 크게 데인 3기 사업자들은 '영업요율(매출액에 일정비율을 곱해서 산정한 금액)'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매출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 임차료를 무조건 내야 하는 '최저보장금액'을 기반으로 한 입찰 방식은 지금 같은 사태를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할 사례는 있다. 지난해 말 입찰한 제주국제공항의 경우다. 한화 갤러리아 면세점이 영업난으로 철수 의사를 밝히자 한국공항공사는 매출에 따라 임차료도 변동되는 영업요율 입찰 방식을 채택했다. C면세점 관계자는 "면세 사업은 국제 정세와 정부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며 "영업요율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해야 면세점과 공항이 상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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