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의점 왕국' 흔들린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2018. 3. 2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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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수 5만5000개 포화 상태에서.. 24개월 연속 고객 감소]
- 일본인의 '일상·문화의 일부'
빵 코너만 둘러봐도 종류 다양.. 다이어트 식빵·金식빵 '차별화'
동네·계절마다 한정판도 내놔
- 점점 치열해지는 아이디어 경쟁
자전거 대여·동전세탁기 설치, 간병 서비스 상담 창구도 열어

'편의점 왕국' 일본에서 편의점 고객 수가 줄고 있다.

지난 20일 일본프랜차이즈체인협회는 올해 2월 편의점 고객 수가 작년 같은 시기보다 2만명 안팎 줄었다고 잠정 집계했다. 이달만 그런 게 아니라 '24개월 연속 감소'라는 게 큰 문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04년 조사를 시작한 뒤 최장기간 마이너스 기록"이라며 "편의점 성장 신화에 하락 조짐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40년간 일본에서 편의점은 단순히 물건 파는 공간을 넘어 일상에 스며든 '풍경의 일부' '생활의 일부' '문화의 일부'였다. 2016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문학상 수상작 제목이 '편의점 인간'일 정도다. 대학 졸업 후 18년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해온 작가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39)씨가 시상식 날도 "알바 끝나고 왔다"고 말해 국민이 웃었다.

편의점이 처음 생긴 건 1927년 미국 텍사스지만, 그걸 지금 우리가 아는 편의점으로 바꿔 세계에 보급한 건 일본이었다. 1960~70년대 일본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일본 유통 회사들이 처음 도입했다. 1973년 패밀리마트가 일본 수도권 사이타마시에, 이듬해 세븐일레븐과 로손이 각각 도쿄와 오사카에 1호점을 열었다.

이후 20년 장기 불황으로 백화점과 동네 수퍼가 죽을 쑬 때 편의점은 되레 더 잘나갔다. 1980년대 주택가를 꽉 채우고, 1990년대 도심과 역세권에 진입하고, 2000년대 이후엔 병원과 공공건물에 비집고 들어갔다. 점포 수가 2006년 4만곳, 2012년 4만5000곳, 2014년 5만곳, 2017년 5만5000곳을 넘어섰다.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정확히 읽고, 고객이 가려운 데를 한발 앞서 정확하게 긁어준 게 주효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자 전자레인지에 2~3분 데워 먹는 도시락을 판매하고, 밤늦게 돈 뽑는 사람을 위해 현금인출기를 들여놨다. 공과금, 택배도 편의점에서 해결된다. 빵 코너도 소보로빵, 식빵 같은 기본 항목이 최소 너덧 종류씩 있다. 탄수화물 안 먹는 다이어트를 노린 '저당질 소보로빵', 큰 사치는 못 해도 식빵 하나는 좋은 거 먹고 싶은 심리를 노린 '금(金)식빵' 등이 빼곡하다. 하다못해 빼빼로 과자도 계절마다 동네마다 조금씩 풍미를 바꿔 '이번 시즌 한정 상품' '우리 동네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는다.

문제는 일본 사회 자체가 더는 소매업종의 팽창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 등 주요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신규 점포를 늘려 매출액 자체는 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님 수는 감소일로이고, 신규 확장도 더는 무리다. 일본은 이미 편의점 수가 우체국(2만3000곳)의 두 배가 넘고, 총선 투표소 숫자(4만8000곳)보다도 많다.

일본 편의점이 갈수록 치열하게 아이디어 경쟁을 벌이는 게 이 때문이다. 일본 최대 편의점 회사 세븐일레븐은 최근 2년간 전국 곳곳에 '자전거 빌려주는 편의점'을 100곳 만들었다. 올해 안에 1000곳 채우는 게 목표다. 한참 타다가 원래 빌려간 가게에 돌려줘도 되고, 돌아다니다 다른 점포에 반납해도 된다. 요즘 뜨는 '공유 경제' 개념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노리는 건 자전거 빌리러 온 손님이 오며 가며 사탕도 사고 주먹밥도 집는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자전거 빌려준 뒤 해당 점포들 손님이 2% 늘었다"고 했다.

그러자 업계 2위 로손이 "그럼 우리는 '간병 서비스 상담 창구'가 있는 편의점을 만들겠다"고 했고, 업계 3위 패밀리마트는 "우리는 헬스클럽과 동전 세탁기가 있는 편의점을 늘리겠다"고 반격했다. 일본 편의점이 '금식빵 히트' 수준을 넘어 '간병과 빨래를 해결해주는 공간'으로 진화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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