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섬마을 대도·벽화마을 하덕에서 '봄' 담아가세요

글·사진 정유미 기자 2018. 3. 2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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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항구선 정에 흠뻑, 산골선 아픔 훌훌…조용히 큰 마음을 품다

경남 하동의 큰 섬 대도는 옛 어촌의 정취를 간직한 항구마을이다. 3월 초에도 문을 연 구멍가게조차 찾을 수 없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에는 식당과 편의점이 들어선다.

경남 하동 하면 화개장터, 쌍계사, 차밭이 유명하다. 섬진강이 남해로 흘러드는 길목인 하동에는 섬도 20개가 넘는다. 하동의 큰 섬, 대도는 옛 어촌 풍경을 풋풋하게 간직하고 있는 자그마한 항구마을이다. 산골에 오붓하게 자리한 하덕마을에는 갤러리도 있다. 하동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만나고 왔다.

■ 큰 섬을 가진 하동

경남 하동에 섬이 있다니? 하동군 금남면에서 오전 10시30분 배를 기다렸다. 봄을 시샘하는지 바람이 세찼다. ‘설마 제주도라면 모를까 배가 뜨지 않는 일은 없을 거야.’ 예상은 빗나갔다. 예정된 시간이 한참 지나도 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거센 바람에 운항이 금지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오후 1시30분 배를 탔다. 남해 앞바다에 새로 짓고 있는 제2남해대교 ‘노량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75인승 배를 타고 20분가량 파도를 갈랐다. 배가 선착장에 닿을 무렵 ‘대도 파라다이스’라고 쓰인 큼지막한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배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 옆에 헬스용 자전거 한 대가 떡 놓여 있었다. 1980~199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촌스러웠지만 정겨웠다. 손발이 아릴 만큼 추웠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경란 마을 이장이 “오늘 같은 풍랑은 정말 만나기 힘들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며 달짝지근한 프림커피를 내주었다.

대도에는 60가구, 140명 정도가 산다. 섬 주민의 평균 나이는 75세, 가장 어리다는 40대가 5명이다. 민박집이 10여개, 숙박료는 각자 알아서 받는다. 섬 사람들은 참숭어를 양식하거나 낙지와 주꾸미를 통발로 잡아 생계를 꾸린다. 식료품 가게나 식당은 없다. 자장면·짬뽕을 파는 중국음식점은 물론 치킨집도 없다. 세탁소며 병·의원과 약국도 없다. 인터넷은 잘 안 터졌다. 오지라 할 만한 마을이었다.

바닷가를 따라 언덕을 조금 오르자 ‘빨간 풍차’가 나왔다. 여름철에만 문을 여는 식당인데 성수기에는 활어회도 팔고 뷔페식도 내놓는다고 했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싶었지만 4월에나 문을 연다는 ‘편의점’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마을 사람들이 ‘워터파크’라고 부르는 수영장은 앙증맞았다. 슬라이드는 제법 재밌어 보였지만 수영장이 참 작았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갯벌 바지락 체험장과 낚시터는 단골들이 주로 찾는다고 했다.

섬 뒤편은 또 달랐다. 영국의 스톤헨지를 흉내 낸 조각공원, 해적선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는 사진을 찍기에 좋았다. 폐교인 대도초등학교 교실을 객실로 꾸민 게스트하우스도 흥미로웠다.

“저기 모자섬을 마을에선 둥근 섬이라고 불러요. 마을 어른들과 협의 중인데 대도 파라다이스라는 이름 대신 이제는 ‘큰 섬’ 또는 ‘하동 대도’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이현철 대도리어촌계 사무장은 “오는 5월에 양귀비꽃 축제가 열린다”며 “꼭 한번 놀러오시라”고 말했다. 대도를 한 바퀴 둘러보는 데 2시간이면 충분했다.

■ 큰마음 담은 하덕마을

하동 매암차박물관에 핀 홍매화.

하동에 벽화마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다.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나 벽화마을이 한두 곳씩 있기에 별 생각 없이 하덕마을로 향했다. 섬진강 꽃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니 평사리 최참판댁이 보였다. 하덕 벽화마을을 기획했다는 매암차박물관부터 찾았다.

지리산 자락에 오붓하게 자리한 하덕마을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고 정소운 할머니의 삶을 그린 벽화 등 25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차꽃 피던 날’을 주제로 골목 갤러리를 만들었어요. 약이 귀하던 시절 찻잎을 따 소반에 잘 말려 먹으면 명약이 따로 없었습니다.” 강동오 매암차박물관장은 “차꽃 피듯 곱디고왔던 어머님들의 삶을 담고 싶었다”면서 “하덕 출신 위안부 피해자인 고 정소운 할머니의 아픔도 서려 있다”고 말했다.

47가구가 모여 사는 입석리 하덕마을로 들어서자 ‘골목길 갤러리 섬등’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왔다. 언뜻 보기에 여러 가지 그림과 조형물이 좁은 골목을 따라 자리 잡고 있었다. 하동 출신 지역작가를 비롯해 전국의 뜻있는 동화작가, 그림책 작가, 화가 등 10여명이 완성한 25개 작품들이라고 했다.

‘만남’이라는 그림에는 하덕마을이 고향인 정소운 할머니의 슬픈 일생이 담겨 있었다. 벽면에 그려진 한겨울 밤 ‘달 아래서’ 상처받은 할머니의 영혼이 잠시나마 편히 쉬셨으면 했다. 담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성냥갑만 한 집들과 아슬아슬하게 벽을 타는 빨갛고 파란 차는 인상적이었다.

발걸음이 멈춘 것은 골목 끝자락에서 만난 나비 조형물 앞에서였다. 첫번째 빨강 나비는 정소운 할머니의 꿈 많던 소녀 시절을 그린 듯했지만 두번째 나비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었다. 세번째 나비는 일본으로 끌려가 송두리째 삶을 빼앗긴 분노의 시간처럼 보였고, 네번째 나비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소망을 담은 듯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하동군청 백승렬씨는 “하동에는 지리산과 한려수도 등 국립공원이 2개나 있다”면서 “하동에 오면 조용히 큰마음을 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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