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은 남자가 미투해야"..하일지 교수 대한 문단 생각은?

권영미 기자,윤다정 기자 2018. 3. 2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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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 과격" "학생들에게 사과않는 것은 잘못" 지적
"미투 분위기 경직" "다양한 의견 존중돼야" 의견도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미투’ 비하 관련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윤다정 기자 = 수업에서 '미투'(#MeToo) 운동을 깎아내리는 말을 해 논란을 빚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하일지 교수(본명 임종주·62)에 대해 해당 학교 학생들의 "파면하라"는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그의 주장에 대한 문단의 반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단에선 대체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지만 "교수가 학생들과 싸우려 들어서는 안된다" "하일지 교수의 의견 표명이 너무 과격하다"는 등의 의견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하일지 교수가 수업 사례로 든 김유정의 '동백꽃'에 대해서는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인 A씨는 "하일지 작가가 말하고자 한 점은 문학적으로 그린 것을 문학 밖에 끄집어내어 도식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라면서 "'(동백꽃의 남자 주인공인) 얘도 미투해야겠네'라고 말한 것은 정말로 미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히 볼수 없다는 반어적 표현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하 작가가) 학생들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은 다소 과해 보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문학평론가들은 또 하일지 교수가 수업 교재로 삼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대해 단선적으로 작품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놨다. 1930년대 강원도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 동갑인 '나'와 '점순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이 작품은 단순히 여성 쪽에서 먼저 남성을 유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B는 "하일지 교수가 강의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맥락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보도된 것처럼) 동백꽃은 누가 누구를 유혹하고, 서로 호감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여성보다 계급이 낮은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낮은 사회적 위치 때문에 두려워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마름의 딸인 점순이가 감자를 주면서 호감을 표시하지만 소극적인 화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나중에 점순이네 닭을 지게막대기로 내리침으로써 우월감을 맛본 후에야 그 호감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C 평론가는 "하일지 교수가 이 작품을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 뒤에 복잡한 맥락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를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로 안희정 전 충남 지사의 피해자 욕망 운운한 것은 단선적인 설명을 다시 단선적으로 뒤집은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안희정 전 지사의 미투 운동과 관련해 '이혼녀로서 욕망이 있을 수 있다' '결혼해주지 않아 폭로했다' 운운한 것은 '흑백논리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 자신의 취지였다'는 스스로의 설명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단에서는 그러나 미투운동이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로 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D문학평론가는 "페미니즘이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면서 "작가가 느끼기에 구속이나 검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E 역시 "문학은 '옮음'을 지지하거나 지향하지만, 그 옮음의 기준에 대해서도 물음을 항상 거두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설 '경마장 가는 길'로 잘 알려진 하일지 교수는 지난 14일 수업시간에 소설 '동백꽃'이 "처녀가 순진한 총각을 따X으려는, 감자로 꼬시려고 하는 내용"이라며 "점순이가 남자애를 강간한 것이다. 성폭행한 것이다. 얘도 '미투'해야겠네"라고 이야기했다. 또 안 전 지사의 피해자가 실명을 밝히고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학생의 질문에 "결혼해 준다고 했으면 안 그랬겠지. 질투심 때문에"라고 답했다.

하 교수는 뉴스1과 통화에서 "소설은 인간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우리는 흑백논리에 빠질 수 있다. '미투운동'에 반박하면 공격을 당할 수 있는데 인간의 문제로 어쩌면 이럴 수도 있지 않겠냐는 예로서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또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사회학, 정치학 과목이 아닌 소설 과목이다"라며 "소설에서는 때때로 자신의 이념과 다른 것들도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하 교수는 지난 19일 학교 측에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19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미투’ 비하 관련 해명 기자회견에서 재학생들이 하 교수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News1 허경 기자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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