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통치 막는 건 죽음 뿐"..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방미

이선목 기자 2018. 3. 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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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오는 19일(현지 시각)부터 20일간 미국을 방문하는 가운데 빈살만 왕세자의 방미 목적과 양국의 관계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20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난다. 그는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미 행정부 관료·의회 의원들과 함께 예멘 내전, 카타르 단교, 이란과의 분쟁 등 중동 지역 현안과 사우디 경제·안보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우버,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에너지 관련 기업, 할리우드 등을 방문한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오는 19~22일 미국을 방문한다. 사진은 이달 7일 영국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 /블룸버그

아델 알 주베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 회견을 통해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최상”이라며 “우리의 방문은 무역, 투자, 군사협력 등 모든 분야에서 탄탄한 외교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외신들은 빈살만 왕세자가 미국을 방문하는 목적에 주목했다. 중동 전문매체 알자지라는 빈살만 왕세자가 미국 방문을 통해 (사우디) 왕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걸프만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덴버대 조세프 코벨 국제대의 나데르 하셰미 중동연구센터 책임자는 “사우디는 중동 국가 중 매우 보수적이고 독재적인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며 “빈살만은 개혁자로서, 여성 해방자로서 사우디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 원한다”고 설명했다.

◇ 빈살만 방미, 중동 현안 논의·투자 유치 등 목적

빈살만은 또 아랍 국가를 대표하는 사우디 수장으로서 아랍 지역의 분쟁 현안들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이집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은 지난해 6월 빈살만 왕세자르 주도 아래 카타르 단교를 추진했다.

알자지라는 카타르 단교가 GCC의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다고 평했다. 카타르는 GCC 국가들의 행위가 합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카타르 단교와 관련, 걸프 아랍 국가들과의 연합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관련국들과 회담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 사우디 내부 권력 갈등과 3년 간 이어진 예멘 내전 간섭 문제, 이란과 갈등 고조 등도 논의할 전망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번 방미 기간 동안 사우디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논의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6월 권력을 잡은 이래 과도하게 석유에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 구조를 변화하기 위한 개혁안인 ‘비전 2030’을 추진해왔다.

그중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사우디 원자로 개발 계획이다. 앞으로 20년간 원자로 16기를 건설하는 980억달러짜리 대규모 프로젝트로, 올해 2기 건설에 착수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과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이 수주 경쟁에 나선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원자로 사업을 수주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빈살만 왕세자와 회담에서도 이를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CNN 캡처

아울러 차량 호출 서비스 업체 우버와 함께 사우디에서 웹서비스 데이터 센터를 개설하기 위해 협의 중인 아마존 등을 방문하고, 보잉과 GE 등 미 주요 기업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특히 우버는 여성의 운전이 가능해진 사우디에서 여성의 새로운 사회 진출 통로로 기대되고 있다. 사우디 영화산업 활성화를 적극 장려하고 있는 빈살만 왕세자는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에 있는 월트디즈니, 유니버셜픽처스 등도 방문할 전망이라고 포브스는 전했다.

다만, 빈살만 왕세자의 필수 코스로 예상됐던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방문을 취소할 가능성이 커졌다. CNBC는 이날 사우디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의 해외 거래소 기업공개(IPO)가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람코의 IPO는 사우디 증시에서만 올 하반기나 내년 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해외 상장과 관련한 법적 리스크가 크고, 아람코 해외 상장의 이유였던 저유가가 해소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빈살만 왕세자 방문 둘러싼 의견 분분…“양국 관계 회복” vs “핵확산 위험”

미국 내에서 빈살만 왕세자의 방문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사우디는 중동 내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다. 그러나 지난 2016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와 미 국무부 중동 차관보가 임명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빈살만 왕세자의 방문으로 양국 간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 주재 미 대사관 대변인인 크리스토퍼 헨젤은 이날 아랍뉴스와 인터뷰에서 “빈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믿고 있으며, 다양한 이슈를 개방적이고 솔직하게 대화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짐 스미스 전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는 “빈살만이 온건 이슬람교를 뿌리내리기 위한 긍정적인 문화 개혁을 시작했다”며 “미국과 사우디의 순조로운 협력을 위해 빈살만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빈살만 왕세자의 급진적 면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아랍 여성 해방, 경제 개방 등 혁신적인 개혁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정적을 제거하거나 주변국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끌고 가는 등 호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는 앞서 언급한 원자로 개발을 미국 기업이 수주하도록 하는 대가로 미 원자력법 123조 완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사용하는 나라가 우라늄 농축 등 재처리를 원할 경우 미 정부와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연료 공급권을 확보하겠다며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연료 재처리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빈살만 왕세자는 “이란이 핵개발을 계속하면 사우디도 핵폭탄을 보유하겠다”고 주장하는 등 핵무기 개발 야욕을 드러냈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연료 재처리가 가능한 국가는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이에 이번 미국 방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빈살만 왕세자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핵무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무기통제 국제운동기구인 군축운동연합(ACA)의 대릴 킴볼 사무국장은 “사우디는 러시아 등에서 원자력 발전을 위한 핵연료 공급원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드 마키 민주당 상원의원(매사추세츠)도 이날 성명을 내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우디의 핵개발은 전력 생산 목적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의심해 왔고, 사우디 왕세자는 이를 확인했다"며 "미국은 사우디와 123조에 대해 타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미스터 에브리싱’ 빈살만…“내 통치 막을 수 있는 것은 죽음 뿐”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6월 자신과 왕위 계승권 다툼을 했던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수십명을 부패 혐의로 긴급 체포하면서 실권을 장악했다. 이로써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의 현 국왕인 아버지 살만 빈 압둘 아지즈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있는 1순위 왕세자가 됐다. 그는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불리며 사우디 실세로 통한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슬람 원리주의에서 벗어나는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선보였다. 기성세대 때문에 사우디가 극단주의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여성 운전, 병역, 공연·스포츠 경기 관람, 외국인 관광 비자 발급 등을 허용하고 비키니 착용과 음주가 가능한 관광특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또 지난 18일 공개된 미 CBS 인터뷰에서 그는 “아랍 여성의 전통 옷인 아바야(몸매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검은색의 이슬람식 원피스)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남녀의 동등한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규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경제 체질을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석유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사우디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인 ‘비전 2030’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그 일환으로 정부 지출을 9780억리얄(약 287조원), 수입을 7830억리얄(약 229조원)로 책정한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안을 편성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 장악에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빈살만 왕세자는 CBS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무엇이 당신의 통치를 멈출 수 있냐”는 질문에 “죽음 뿐”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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