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기]학교가 문을 닫자 그들의 삶도 닫혔다

김소연 2018. 3.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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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폐교 경북외대생 42명, 전입 대학들도 문닫아
실업자 된 교수 "3년치 임금 못받아, 가정 파탄날 위기"
비리 설립자 폐교후 재산 회수..먹튀방지법은 낮잠
"폐교후 편입생 조사, 법인청산 총괄 시스템 마련해야"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지난달말 문을 닫은 서남대 사태는 지방 사립대학들에겐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사립대를 중심으로 폐교하는 곳이 잇따를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폐교도 문제지만 △교직원 대량 실직, △편입학한 학생의 학교 적응, △대학원생 학습권 보호, △학교법인 해산·법인 소유재산 청산 등 폐교 이후 뒤따르는 문제들에 대한 대비책이 사실상 전무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 대학이 망해도 비리를 저지른 설립자는 소유 재산을 그대로 챙겨가는 사립학교법 역시 손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경북외대 42명 폐교해 편입했는데 또 문닫아

19일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2월 28일자로 서남대·한중대·대구외대가 교육부의 폐쇄 명령을 받아 폐교한 가운데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자진·강제 폐교한 대학은 총 15개교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재학생은 고등교육법시행령 제29조에 따라 인근 대학 동일·유사학과에 특별 편·입학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별 편입학을 통해 학업의 기회를 얻은 학생은 전체의 절반도 안 됐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4년 낸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보면 명신대·성화대학·벽성대학 3곳의 재적 학생 2116명 중 920명(44%)만이 다른 대학에 특별 편입학한 것으로 집계됐다. 학교 폐교 소식을 듣고 자퇴하거나 등록을 포기해 재적 인원이 급감한 상황을 감안하면 실제 편입학 학생 비율은 더 떨어진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2014년 자진폐교한 경북외대에 다니던 학생 32명과 10명은 각각 대구외대와 서남대로 특별 편입학했다. 대구외대와 서남대는 올해 2월말 폐교했다. 이들 학생이 서남대나 대구외대가 폐교하기 전에 졸업했는지 혹은 다니던 대학이 또 폐교해 주변 다른 대학으로 다시 편입학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교육당국이 특별 편입학한 학생들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어서다.

교육부가 폐교 명령만 내리고 이후 벌어지는 학생들의 부적응 문제·구성원 간 갈등 등 부작용은 개인과 대학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같은 무성의한 행정처리 때문이다. 학생 관리 차원에서 최소한 1년 단위로라도 편입학 이후 추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남대 폐교로 올해 편입학 학생을 받게 된 모 대학 교수는 “교직원들은 몰라도 학생들에 대한 피해는 없어야 하는데 교육부는 학생들을 도와주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며 “폐교만 시켜놓고 편입생을 받은 대학에 모든 짐을 떠넘기고 최소한의 행·재정적 지원도 없다. 구성원 간 갈등마저도 편입생을 받은 학교가 떠안아 해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 개개인의 중도 포기 여부 등을 추적하는 데이터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올해 폐교한 서남대·한중대·대구외대 특별 편입학 결과는 아직 취합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학교 폐교로 한순간 실업자가 된 교직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교육부는 이들을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교직원에 대한 지원대책 마련은커녕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2012년 폐교한 성화대 김정희 교수가 분석한 ‘폐교된 대학교수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화대·명신대·경북외대 3개 폐교대 교수 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017년말 현재 1명만 전임교원이 됐고 20명은 무직·6명은 자영업자로 전업했다. 16명은 시간강사·강의전담 교수 등으로 떠돌이 생활 중이다. 이외 17명은 응답하지 않았다.

지난달 폐교한 한중대 한삭명 교수는 “학교 재정이 악화한 이래 3년 1개월치 임금을 못받았다”며 “학교까지 폐교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가정경제마저 파탄 난 교수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서남대학교 학생들이 지난해 8월 서울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서남대 정상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리 저질러도 재산 회수…‘먹튀방지법’ 법사위서 발목

청산작업이 폐교 이후 18년 넘게 지지부진한 곳도 있다. 광주예술대는 설립자인 이홍하씨의 교비 횡령, 대학 부실 운영 적발 등으로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고 교육부는 지난 2000년 처음으로 강제 폐교 조치했다. 그러나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학교건물·부지는 20년 가까이 그대로 남아있다. 학교법인 하남학원 역시 해산하지 않은 상태다.

신중범 중앙대 국가대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폐교한 15개 대학 중 아시아대, 선교청대, 성화대, 경북외대 등 4개 학교법인만 해산했다. 그 외 법인은 해산 절차가 아직까지 진행 중이거나 중·고등학교 등 교육시설이 남아 있어 존속 중이다.

길용수 한국사학진흥재단 학교경영본부장은 “일본 대학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폐교 유예 기간을 주는 등 폐교 이후 법인 청산까지 계획성 있게 절차가 이뤄진다”며 “향후 폐교 대학이 계속 늘어날 수 있는 만큼 폐교 이후 법인 청산, 편입학 학생에 대한 실태조사 등을 총괄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인 해산을 놓고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지금까지 폐교한 15개 대학은 대부분 설립자·설립자 가족·총장 등이 학교 교비를 횡령·불법사용하는 비리를 저지른 탓에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

문제는 현행 사립학교법상 학교가 폐교하고 청산 절차를 거쳐 남은 재산은 정관에서 정한 다른 학교법인으로 넘어간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비리를 저지른 설립자나 설립자 가족에게 학교를 청산하고 남은 재산이 돌아가게 된다.

이홍하씨처럼 여러 개의 학교법인을 본인 및 가족 등과 소유하고 있으면 비리를 저질러 폐교 명령을 받아도 남은 재산은 지킬 수 있다.

설립자 비리로 폐교하는 사학은 잔여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비리사학 먹튀방지법)을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난해 발의했으나 여지껏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본회의 상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국회 법사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계류돼 있던 먹튀방지법안을 처리하려 했으나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이 반발해 결국 무산됐다. 김 의원 등은 먹튀방지법이 사유 재산권 침해 등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법사위 관계자는 “먹튀방지법은 법안심사제2소위에서 다시 심사하기로 했다. 다만 해당 소위는 김진태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어 해당 법안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서남대 폐교 반대 및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김소연 (sy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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