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주52시간 못 지키는 삼성맨에 '경고 메일'

장은지 기자 2018. 3.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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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근무 불가피한 R&D 부서는 탄력 근무제 독려
© News1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주 52시간 근무 예행연습에 돌입한 삼성전자는 집중근무가 불가피한 R&D(연구개발)부서를 중심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사전에 신청하도록 공지했다. 탄력 근로시간제는 주 52시간 근무를 3개월 단위로 맞추도록 한 근무 형태이다. 삼성전자는 주52시간 근로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직원들에게는 경고메일도 보낸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부터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시범운영하면서, 근태입력 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해야 하는 R&D 업무의 특수성이다. 제조현장이야 대부분 교대근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기업들의 설명이다. 다만 대체인력 투입이 어려운 R&D가 기업들의 가장 큰 걱정이다. 특히 해외 기업들과 협업하는 일이 잦은 반도체나 스마트폰 개발부서는 시차를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 혹은 밤 늦게 파트너기업들과 콘퍼런스콜(화상회의)을 하는 일이 잦다. 특히 출시 시점이 정해진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분야는 '스피드'와 '완벽한 품질'이 생명이다. 제품 출시 시기가 다가오면 야근 등 집중근무가 불가피했다.

2009년 국내 기업 중에선 획기적으로 자율출근제를 도입한 것도 미국 서부에 위치한 퀄컴, 구글 등 해외 기업들과 협업이 많은데다, 실리콘밸리식 R&D 문화를 이식해보자는 것이었다. 천편일률적인 '나인 투 식스(9 to 6)'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몰입도가 높은 시간에 R&D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주 52시간에 묶이다보니 오히려 자유로움에 제약이 생겼다. 저녁이 있는 삶은 좋지만 집중 업무가 필요한 개발 업무에는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시장에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술 리더십을 지켜온 삼성전자는 특히나 개발부서 직원들의 혼선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각 부서마다 담당 관리자가 있어 근로시간을 취합, 제대로 근로시간을 관리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경고메일을 보낸다. 업무가 바빠 깜빡하고 근태입력 시스템에 제외시간을 제대로 입력하지 않은 직원들은 담당 임원의 경고를 받기도 한다.

저녁식사의 경우 구내식당 입구에 사원증을 태그하면 30분이 제외되고, 저녁식사로 빵이나 과일 등 테이크아웃 메뉴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10분이 제외된다. 빵을 사무실로 들고 가 먹으면서 일하는 경우를 감안한 조치다. 당장 할 일이 많아 오버타임 근무가 불가피한 직원들은 근태입력 시스템에 '개인용무' 등의 사유를 입력한다. 단순 생산직이 아닌 R&D는 신입 인력을 갑자기 뽑는다고 해서 대체되는 업무가 아니다. 연구원들이 오너십을 갖고 이끄는 팀 프로젝트들이 모여 세계 1위 제품이 탄생하게 된다. 이때문에 개발부서 직원들은 근로시간에 계산되지 않는 '제외시간'을 어떻게 입력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아침 업무를 시작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잘못했다간 담당 임원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위반 때 과태료만 물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개정 근로기준법은 사업주를 징역·벌금형으로 형사 처벌하도록 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규정은 해외에선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러다보니 임원들은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감시하기에 바쁘다. 업무가 급한 직원들은 눈치보며 병원이나 은행, 운동 등 개인용무를 적어두고 일을 하거나 오버타임 최소기준이 되는 2시간에 못미치는 1시간50분에 맞춰 추가근무를 해 제도를 피해간다. 주52시간을 지키려 건물 밖 카페로 가서 퇴근한 것처럼 가장한 후 못 마친 일을 할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개발부서의 경우 기술유출을 방지하는 보안이 매우 엄격해 사외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이때문에 재계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대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월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부회장은 취재진의 질문에도 "주 52시간 제도는 회사에서 여러 가지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일본,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기업 경쟁력 저하를 막기위해 탄력근로제를 1년 단위로 운용하고 있다. 이때문에 성수기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비수기에 휴가를 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탄력근로제는 취업 규칙에 따라 2주 단위로 운용하게 돼 있다.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최장 3개월이다.

국내 반도체기업 고위관계자는 "마치 아기처럼 시시때때로 변하는 반도체 라인 수율을 컨트롤하거나 장비 등에 문제가 생기면 숙련된 직원들을 바로 보내고 연구원들이 달라붙어야 큰 피해가 없다"며 "단순히 신입사원들을 많이 뽑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반도체 라인 하나하나에 세계 반도체 시장의 수급과 가격이 출렁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이 산업현장의 피해가 없도록 유연하게 적용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se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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