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의 미래]① 문화예술계 '미투' 끝나지 않았다

장병호 2018. 3. 20. 05: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태석·남궁연, 사과·입장표명 없어
정부 '특별조사 100일'도 실효성 의문
큰 용기낸 피해자들에게 두 번 상처
예술인들 '사회구조 바꾸자' 한목소리
건강한 환경 위해 시스템 재정비 한창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위드유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곪았던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투’ 운동(MeToo·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으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고통과 상처는 아직 이어지고 있다. ‘미투’ 운동을 이슈 만들기로 바라보는 피상적인 접근이 이어지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현실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미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아직까지 사과는커녕 입장 표명도 없이 침묵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피해자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도 미흡함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예술인들은 ‘미투’ 운동이 이제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투, 폭로 넘어 사회 구조 변화를 바라보다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성폭력 가해자들은 문화예술계에서 권력과 지위, 명성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뮤지컬 제작자 윤호진, 대학교수였던 배우 조민기, 공연기획사 대표를 맡고 있던 배우 조재현 등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관습적으로 성추행 및 성폭행을 자행했다. 이들은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뒤에도 곧바로 사과하지 않았다. 뒤늦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여줬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에는 아직까지 사과나 입장 표명이 없는 이들도 있다. 연극연출가 오태석, 음악인 남궁연이 대표적이다. 오태석 연출은 여러 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졌음에도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국악계에서 활동하며 성추행 의혹에 휘말린 남궁연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강경대응 입장을 밝혔으나 또 다른 피해자들이 추가로 등장하자 입장 표명 없이 잠적한 상태다. 언론 대응에 적극적이던 남궁연의 법률대리인도 현재 언론과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이 가해를 하지 않았다고 철썩 같이 믿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해자가 주변에서 자신의 말을 피해자보다 더 믿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가해자의 변명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성폭력 문제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평등문화를 위한 연극인 궐기대회에 참석자들이 연극계 변화를 위한 규탄과 청원을 위한 행진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운영위도 제대로 구성 안된 정부 ‘특별조사단’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2일부터 피해자를 지원하는 ‘특별 신고·상담센터’와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일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별 신고·상담센터’와 ‘특별조사단’의 운영 기간이 100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체부·국가인권위원회·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하는 ‘특별조사단’의 경우 운영위원도 제대로 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반대연극인운동은 “정부 대책에는 ‘어떻게’가 빠져 있어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특별조사단은 처음 4명으로 구성할 예정이었으나 현장에 나가서 조사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구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별 신고·상담센터’와 ‘특별조사단’의 운영 기간에 대해서는 “100일간 운영을 하면서 향후 상설화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부장 사회 바꿀 씨앗 문화예술계가 품자”

희망적인 것은 문화예술계 스스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앞장 서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성폭력반대연극인운동은 지난 한 달 간 매주 1회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문화예술계 내부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연극계에 만연한 위계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 피해자 중심의 지원활동과 긴급 상담 창구 운영을 하고 있다. 국회와 관련 기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학교 및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하고 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문화예술계를 건강한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강력한 위계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견고한 가부장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씨앗이 문화예술계에서 잉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미투’는 가장 보편적인 신체의 자유, 인권의 문제”라며 “사회가 모든 사람의 인권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들도 문화예술계를 넘어 사회 각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투’ 운동의 확산과 지지를 위한 연대에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출범을 선언하며 “‘미투’ 운동은 성차별적인 구조와 문화를 바꾸자는 개혁 요구이자 시국선언”이라고 강조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