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헬조선? 내겐 새 삶 준 고마운 나라

여성국 2018. 3. 2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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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결핵퇴치위원 엔다카츄 페카두
한국컴패션 도움으로 약사 꿈 이뤄
에티오피아 의료봉사단 창립도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엔다카츄 페카두. 컴패션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사진 컴패션]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친구들의 후원으로 극복하고 새 삶을 살고 있다.”

최근 방한한 에티오피아의 약사 엔다카츄 페카두(32)는 ‘에티오피아 의학정보네트워크’와 의료인이 주축인 ‘에티오피아 보건의료자원봉사단’의 창립자 겸 대표다. UNTAID(국제의약품구매기구) 이사회의 결핵부문 대표단 일원이며 유엔 산하 결핵퇴치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그의 결핵 퇴치 활동은 2015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크게 소개됐다. 올해 1~2월 국제기구들이 위치한 스위스 등 6개국을 돌며 지속적인 지원을 호소한 그는 같은 목적으로 방한했다.

엔다카츄와 한국의 인연은 14년 전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맺어졌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난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세 명의 동생과 함께 자랐다.

“신발이 없어서 자동차 타이어에서 나온 폐고무로 고무신을 만들어 신었다. 매일 배고팠다. 수많은 이웃 아이들이 결핵이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9살 때 교회를 통해 컴패션 후원 아동으로 선발됐다. 컴패션은 하루 생계비가 2달러 미만이거나 부모가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어린이, 질병 때문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아동을 먼저 후원 대상으로 선발한다.

엔다카츄는 그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뜨겁기만 한 줄 알았던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후 폐타이어 신발 대신 운동화를 신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이후 그는 아디스아바바대 약대에 진학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가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대학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희귀질환인 ‘다제내성 결핵(치료제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운 결핵)’을 앓았다. 시중에 나온 항생제가 듣지 않았고 약값도 비쌌다. 병은 악화됐다.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었다.”

죽음 앞에서는 꿈도 사치였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2년 동안 치료를 받은 끝에 2007년 완치됐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엔다카츄는 삶의 의미를 고민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는 매년 12만5000명의 결핵환자가 발생하는데 그중 5000명가량이 내가 겪은 다제내성 결핵 환자다”며 “내 나라와 지역사회, 국민이 덜 아프고 더 교육받게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종잣돈 100달러로 사업을 시작했다.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았다. 국제기구·정치인·기업들에 편지를 보내 후원을 요청했다. 잡지사를 통해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의료봉사단 비정부기구(NGO)도 설립했다. 의료정보 잡지는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와 영어로 전문가용과 시민용으로 나눠 두 달에 한 번 발행했다. 최근에는 시민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온라인 페이지를 개설했다.

엔다카츄는 “부패와 가난은 에티오피아의 큰 문제”라며 “결핵이나 말라리아, 가난과 연계된 질병들이 굉장히 많은데 입법자들의 인식 개선을 통해 에티오피아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구호단체의 후원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한국이 다른 나라를 돕듯 에티오피아도 곧 가난에서 벗어나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그 일에 내가 기여하는 것이 내 남은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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