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가지 치다 이웃사촌 동강났네

2018. 3. 19. 16: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법원 가서 담판 짓자."

'온정'과 '양해'로 다툼이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판사를 찾습니다.

2015년 가을, 서울의 한 주택에 사는 80대 권아무개씨는 담을 넘어 이웃집을 비집고 들어간 감나무 가지치기에 나섰다.

그렇다고 이번 판결대로 이웃에게 집수리 등 '소일거리'를 맡길 때 일어난 모든 사고에 대해 집주인이 책임져야 할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힘들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액재판 톡톡]
감나무 가지 치던 이웃사촌 두개골 골절사고
집주인, 치료비·위자료 3000만원 피소당해
도급으로 볼 것인가, 고용으로 볼 것인지 관건

[한겨레]

소송금액 3000만원 이하 민사사건을 소액사건이라고 한다. 소액이라지만 한푼이 절박한 서민들은 사활을 건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원 가서 담판 짓자.”

‘온정’과 ‘양해’로 다툼이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판사를 찾습니다. 청구금액 3000만원 이하 민사재판이 열리는 소액법정은 서민들의 욕망과 한숨이 충돌하는 ‘삶의 현장’이자, 10명 중 8명이 법률 전문가 도움 없이 판사와 직접 대면하는 ‘민원실’입니다. 소액재판 연재로 서민 삶의 속살을 들여다봅니다. 금액은 적어도 사연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2015년 가을, 서울의 한 주택에 사는 80대 권아무개씨는 담을 넘어 이웃집을 비집고 들어간 감나무 가지치기에 나섰다. 권씨는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터라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 주민 전아무개(60대)씨를 찾았다. 하루벌이를 하는 전씨에게 일감을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전씨도 답례로 일당을 15만원에서 10만원으로 할인해줬다고 한다. 이웃사촌 간 사이좋게 ‘호의’를 주고받은 셈이다.

하지만 ‘호의’는 뜻하지 않게 ‘악연’으로 바뀌었다. 작업 날 아침 전씨가 가지치기를 하던 중 2m 높이 사다리에서 미끄러져 두개골이 골절된 것이다. 전씨는 사고 1년7개월 만에 권씨 부부를 상대로 치료비와 위자료를 포함해 최소 3000만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냈다.

소송은 1년 가까이 이어졌고, 그새 권씨는 숨졌다. 두 사람을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맺은 사이로 볼 것(도급)인지, 권씨가 감독한 관계로 볼 것(고용)인지가 관건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고용관계일 때 권씨가 안전조처를 취할 책임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전씨는 권씨가 자신을 고용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권씨가 어느 가지를 칠지도 지정하고, 야간수당까지 논의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권씨 쪽은 억울해했다. 그가 보기에 가지치기는 고용관계가 성립할 만한 일이 아니었고, 사다리 추락 정도는 전씨 스스로 대비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평소 동네에서 ‘술고래’로 통했던 전씨가 작업 당시에도 술이 덜 깬 상태였다는 주장도 내놨다. 서로 감정이 상하다 보니 톱을 누가 샀느냐, 권씨 건강 상태와 전씨 부상이 어느 정도냐 따지는 등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감나무. <한겨레> 자료사진

양쪽이 작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말을 내놓는 탓에 판사는 머리를 싸맸다. 다만 판사는 집주인 권씨가 사다리와 톱 같은 도구를 제공했고, 자신의 간병인을 시켜 작업을 지켜보게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용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권씨가 전씨의 안전을 보장할 최소한의 조처를 했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다만 사고 자체에는 전씨 책임도 크다고 보고 위자료를 200만원으로 제한했다.

그렇다고 이번 판결대로 이웃에게 집수리 등 ‘소일거리’를 맡길 때 일어난 모든 사고에 대해 집주인이 책임져야 할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힘들다. 일의 전문성이 커질수록 일을 맡긴 사람이 관여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작업 방식을 지정하거나 장비를 제공하기도 어려워진다. 김진 변호사는 “도급관계에서도 최소한의 안전배려 의무가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작업이 전문적이어서 여러 명이 작업하는 경우엔 도급이나 고용관계 여부에 따라 안전의무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