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는 기망인가, 희망인가

오준엽 입력 2018. 3. 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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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vs 건보공단노조, '동상이몽'.. 정부는 또 밥그릇 틀 씌우나
고령화와 저출산, 평균수명의 증가, 그로 인한 생산인구 급감과 사회적 부담의 급증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정권 수립과 함께 정부의 책임을 강조한 다양한 정책들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정책 중 당초 계획보다 시행이 늦어지는 있는 정책이 있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직접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하 문재인 케어)이다.
대통령의 발표 이후 보건당국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케어의 세부시행계획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까지 계획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전제돼야하지만 이들의 반대가 극심해 정책을 강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18일 광화문 광장에는 “문재인 케어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또 다시 울렸다. 전국 13만 의사들을 대표하는 500여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가 국민을 기망하는 허구이자 의료체계를 망치고 국민 건강을 위협할 포퓰리즘적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사의 죽음을 앞두고 쏟아낸 정부와 의료계를 향한 일침. 사진=블로그 글 중 일부 갈무리
◇ 살기 위해 투쟁 밖에 남은 길 없다는 의사들의 절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대회를 시작하며 예비급여 강행과 신포괄수가제 확대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3개월 전 대통령이 약속한 의료수가체계 정상화와 비정상적 건강보험정책 심의구조 개편을 조속히 실행하라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엄중히 경고한다.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제대로 된 협상태도를 취하기 바란다”면서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국민을 위한 지속가능한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 의사들에게 투쟁 밖에 남지 않았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6인의 의사협회장 후보들 또한 겉으로는 비대위로 일원화된 소통 및 협상을 말하며 뒤로는 학회 등과 개별접촉을 시도하고, 상복부초음파 전면 급여화처럼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행태를 입 모아 비난했다.
심지어 하나같이 대정부 투쟁에 자신이 적임자라며 최선봉에서 의사의 진료권과 생존, 국민의 건강과 사회를 위해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금의 일방적인 문재인 케어 추진 시, 의사들은 목숨을 끊고 병원은 망하며 국민들은 병들어간다는 대동소이한 관측도 내놨다.
특히 의료를 멈춰서라도 의사를 살리겠다는 최대집 후보와 고공크레인에 여성의 몸으로 오르겠다는 김숙희 후보, 더 이상 의사들의 희생과 양보를 용납할 수 없다는 나머지 후보들의 발언에서 정부를 향한 강한 불만과 불신이 엿보였다.
안치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연대사를 통해 “더 많은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요구가 아니다. 배운 것을 그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 견디기 어렵고, 환자를 치료하다 범죄자로 몰리는 것을 두려워해야하는 현실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라며 강변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 비관한 의사의 죽음
이들의 주장은 단순하지만 일견 타당한 배경과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1970년 국민건강보험(당시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후 민간의료기관은 강제지정제를 통해 사회보장영역으로 강제 편입됐고, 의사들의 선택권은 제한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급여 수가를 50% 언저리에서 결정했고,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가조차 보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 원가계산시스템 연구에서 건강보험수가의 원가보존율은 78.4~79.1%로 조사됐다. 
같은 해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서도 종합병원의 원가보존율이 89.67%로 분석됐다. 이후 2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등 수가조정이 일부 이뤄졌지만 여전히 원가보존율은 80~85% 수준이라고 통상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수익사업이 금지된 상황에서 선택진료비 폐지, 상급병실료 개편 등 보장성강화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최저임금 상승, 간호인력 수요급증, 까다로워진 심사평가로 인한 급여비용 삭감 등 외부요인까지 겹쳐 병원의 수익구조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지난 17일 성형외과 전문의 A씨는 “보통의 착한 의사로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허락해주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남기고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로 추정되는 글에는 현행 보건의료계와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와 경험이 가득 담겼다.
A씨는 “환자가 돼보면 한국에서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 원하는 의사를 예약하는 것, 충분한 설명은 너무너무 어렵다. 의사인 나도 이 의료체계 속에서 환자가 돼보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면서 “의료의 본질이 너무 왜곡됐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돼보면 저수가의 뒤틀어진 의료시스템에서 사악하지 않게 착한 의사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면서 “바지 기장 줄이는 것보다 얼굴 열상 봉합수술 수가가 더 싼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치료라는 기본에 충실하기 힘들다. 저수가 시스템이, 자본이 의사들을 돈 버는 공장으로 가도록 몰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 건보공단노조, “국민 위한다는 명분, 믿을 국민 없다”
이처럼 의사들의 집회가 한참인 시각, 이들의 현행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불만과 문재인 케어로 인한 변화에 대한 우려를 두고 국민건강보험 노동조합과 공단에서 운영하는 일산병원 노동조합은 전국의사대표자대회가 열린 광화문 건너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반대집회를 가졌다.
두 노동조합은 “일부 의사 단체에서 길거리로 뛰쳐나와 문재인 케어를 저지하겠다고 하는 원인이 정말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윤을 끝없이 확대하려는 시장경제 원칙만 지배하는 현 의료공급체계에 대해 국민들의 불신은 뿌리가 너무 깊다”고 대변했다.
이어 “의료계는 낮은 진료수가를 주장하며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압박하면서 무수히 많은 비급여 진료항목으로 이윤을 극대화해왔다”면서 “비급여의 급여화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병원비 부담에서 헤어날 수 없으며 값비싼 민간의료보험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의료계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는 억지주장이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케어의 내용을 호도하고, 국민의 여망을 외면하는 일부 의사단체의 과격한 주장과 행동을 우려하며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의 완성을 저지하거나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문재인 케어가 국민과 의료계를 위해 왜곡된 의료를 바로잡을 방법이라는 주장도 포함됐다.
더 나아가 “문재인 케어를 위한 의정협의체에서 일부 의사단체가 탈퇴를 선언했다면 돌아올 기약 없는 단체를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노동시민사회를 포함한 가입자 단체와 전문가, 학계 등이 참여하는 확대된 사회적 합의기구를 조속히 구성해야한다”며 의사협회를 배제한 논의를 이어가자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일산병원노조 배형길 위원장은 “저수가 주장은 결국 수익에 대한 이야기”라며 “일반 직장인들의 평균 4배 이상의 월 소득을 얻으며 적정수가를 주장하고, 문재인 케어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것을 일반 국민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위해서라도 제도가 시행될 길을 열어주고 원하는 바를 논의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앞둔 지난 14일, 의사의 월평균임금이 1304만원에 달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후 언론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월평균소득 281만원의 4.6배에 이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와 관련 의료계는 집회의 정당성을 흐리기 위한 복지부의 ‘교활한 전략’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의료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확성조차 의심스러운 통계를 장외투쟁을 앞두고 공개한 점은 악의적이라는 설명이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연대사에서 “교활한 문 정권은 의사의 평균월급이 일반직장인의 4.6배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병원 운영하다 망해나간 수많은 개원의들의 한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이 시점에서 이런 글을 퍼트리느냐”면서 “교활한 문재인 케어의 민낯”이라고 비난했다.
이동욱 비대위 사무총장 겸 경기도의사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계의 정확성과 비교대상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며 “복지부 통계발표와 기사대로라면 주 100시간 일하는 전공의에게 최저시급을 적용할 경우 월급 450만원이 초과한다. 무의미한 비교”라고 일축했다.
이용민 의사협회장 후보도 “왜곡된 자료로 의사명예를 실추시키고 악의적 보도를 유도하는 복지부는 사죄해야한다”며 “의료계와 정부가 문 케어를 놓고 대립과 협상을 반복하는 지금 왜곡된 보도를 유도한 것은 나쁜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여론 조작이자 국민 기만행위”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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