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빠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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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할 아빠 모여봐요.'
얼마 전 텔레그램 마을방에서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데 관심 있는 아빠들도 모여 함께 공부하는 게 어떠냐'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모르면 배우자'는 각오로 마을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페미니즘 공부 모임 '아빠페미'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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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미투를 계기로 동네 아빠들과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딩동.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할 아빠 모여봐요.’
얼마 전 텔레그램 마을방에서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데 관심 있는 아빠들도 모여 함께 공부하는 게 어떠냐’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솔깃했다. 마침 <씨네21>도 영화계 #미투 제보를 받아 몇몇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다.
막상 취재를 해보니, 성폭력 사건은 일반 사건보다 취재하기가 훨씬 어렵고 조심스러웠다. 평소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기사 쓰는 게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르면 배우자’는 각오로 마을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페미니즘 공부 모임 ‘아빠페미’의 문을 두드렸다.
나를 포함한 동네 아빠 일곱 명은 퇴근하자마자 성미산학교에 쭈빗쭈빗 모였다. 학습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해서라도 알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보통) 아빠들 대화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이야기가 없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배워 (대화 자리에서)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꺼내고 싶다.”(돌고래·마을별명) “살면서 실수를 많이 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신경 쓰고 조심하기 위해 공부하고 싶었다.”(토끼) “내가 가진 편견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까치) 수업 참여 동기를 말하는 아빠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아뿔싸! 첫 수업은 자기소개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시험까지 볼 줄이야. 앞으로 수업을 진행할 노리 선생님은 “아빠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하면 칭찬받는다. 하지만 여자들이 공부한다고 하면 ‘너 메갈 이니?’라는 질문을 받는다. 한번 참여했으면 끝까지 잘 참여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한 뒤,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문제의 수준은 ‘대략난감’이었다. 문제2,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 또는 과거에 만났던 적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 폭력’ 이것은 무엇일까요? 끙,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땡! 문제8. LGBTAIQ는 무엇의 약자인지 아는 만큼 적어주세요. 에, 그러니까 L은 레즈비언, G는 게이, B는, 그렇다면 T는, A는, I는, Q는? 땡! B가 바이섹슈얼(양성애자), T가 트랜스젠더, A가 에이섹슈얼(무성애자), I가 인터섹스(간성·남성 여성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 Q가 퀘스처너(성정체성, 성적 지향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약자인 줄 나중에 알았다. 동그라미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린 시험지를 받아보니 페미니즘을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싶어 부끄러웠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싶었다.
한편, 첫 아빠페미 모임에 참석하고 난 뒤 딸 도담이가 첫 번째 생일을 맞았다. 가족만 초대해 조촐한 돌잔치를 치렀다. 도담이에게 돌잡이를 시켰더니 활과 화살을 잡았다. 용기 있고 씩씩한 여성이 되려나보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를 돌보면서 깨달은 건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글·사진 김성훈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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