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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대통령 째려보기

조회수 2018. 3. 19. 08: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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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사진 하나가 큰 화제였다. 야구 선수 한 명이 대통령을 노려보는 장면이었다.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작은 호세 알투베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그것도 바로 등 뒤에서 째려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문제의 컷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를 두고 무수한 논평이 유통됐다. 그 중 금메달은 단연 <야후스포츠>였다. 이렇게 묘사했다. ‘돈 없다며 꾼 돈을 갚지 않는 친구를 쇼핑몰에서 만났을 때의 표정이었다.’ <스포팅뉴스>도 거들었다. ‘그가 왜 백악관 행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은 트럼프였다. 그는 알투베(168㎝)를 아래위로 한번 쓱 훑어보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큰 데?”라고 조크를 던졌다(트럼프의 키는 190㎝). 몇몇 미디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당사자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이후로는 굳은 얼굴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트럼프의 무례함에 팬 한 명이 불쾌함을 터트렸다. “나의 MVP를 존중해달라.” 수 천개의 엄지가 분노의 지지표를 던졌다. <usa투데이>는 ‘트럼프는 알투베가 애런 저지(201㎝)와 있는 사진만 봤나보다’라며 부적절한 멘트에 딴지를 걸었다.

미국의 주요 스포츠 우승팀은 백악관을 방문하는 게 전통이다. 우주인들도 그래서 초청됐다. 그러나 모두가 간 것은 아니었다. 주요 선수 몇몇은 불참했다. 카를로스 벨트란, 카를로스 코레아 등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둘러댔다.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알투베의 해명

‘째려보기’ 논란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다음 날 기자들이 당사자를 붙들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돌아온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천만에, 오해였어요.”

“(문제의 장면은) 대통령이 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내가 뭘 하면 좋겠어요? 난 그냥 거기 서서 듣고 있었을 뿐이예요. 만약 (백악관에) 가고 싶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겠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의 등 뒤에 있었어요. 웃거나,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잖아요.”

주연 배우의 손사래로 떠들썩한 ‘놀이’는 1막에서 끝나고 말았다. 알투베는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부인했을까. 묵묵히 노 코멘트로 있으면 뜻있는 지사의 풍모를 누릴 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그의 조국 베네수엘라의 동포들도 트럼프 반이민 정책의 피해자들일 것이다. 거기에 대한 묵언의 항의로 비춰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정치적인 이슈다. 정치적인 시각에서 답을 찾아보자. 그들의 프랜차이즈인 휴스턴(텍사스)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다. 지난 번 대선 때도 트럼프가 힐러리를 줄곧 10% 정도 앞서며 압도적으로 리드한 곳이다. 즉, 그들의 팬은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층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때문에 알투베의 째려보기 논란도 다른 지역의 진보적인 미디어들이 앞장섰다. 정작 그들의 지역 언론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당사자의 해명에 비중을 두고 보도했다.

그럼 벨트란과 코레아는 왜 불참했을까. 다른 종목의 항거자들(?)처럼 이민 정책 또는 인종 차별에 대한 비난을 앞세우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둘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다. 미국령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 허리케인 때 중앙 정부(미국)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피해가 컸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10% 이상의 주민들이 전력난을 겪고 있다. 고향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트럼프와 스테판 커리의 설전

한동안 말들이 있었다. 과연 트럼프가 애스트로스를 초청할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러나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무조건 ‘한다’였을 것이다. 왜? 거꾸로 생각해보자. 만약 월드시리즈 승자가 다저스였다면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였다. LA를 깨트린 팀이다. 게다가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의 지역구다. 백악관 주인이 그런 우승을 축하하지 않으면 누굴 축하하겠나.

다저스는 LA가 본거지다.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곳이다. LA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주지사가 너무 일을 못한다”며 직격탄을 날린다. 반대로 많은 그곳 주민들도 대부분 트럼프를 싫어한다.

NBA 최고의 인기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그렇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인근을 본거지로 삼는다. 지난 시즌 우승 이후 백악관 행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다. 일부에서는 설문조사를 해보자는 말도 나왔다. 그 무렵 간판 스타인 스테판 커리가 “난 가지 않겠다는 쪽에 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놀랍게도 대통령이 직접 반응했다.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팀이 백악관에 가는 건 큰 영광이다. 그런데 스테판 커리가 망설이고 있다니, 그렇다면 초청을 철회하겠다.”

커리도 답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우, 초현실적이다. 한 나라의 리더가 하기에는 너무나 수준 낮은 일이다.”

이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는 지 제3자 르브론 제임스가 참전했다. “스테판(커리)이 이미 안 가겠다고 말했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초대하지 않겠다는 건 말이 안되지.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백악관에 가는 게 큰 영광이었어.”


선수에게 막말까지 하는 대통령

트럼프식 저돌성의 하일라이트는 작년 9월 앨라배마주 연설 때 드러났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프로풋볼(NFL) 선수들의 무릎꿇기 퍼포먼스에 대해 ‘개자식’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는 “우리 국기를 존중하지 않는 선수에게 ‘저 개자식(son of a bitch)을 당장 끌어내. 해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구단주를 보고 싶지 않나요”라고 외쳤다.

청중들은 ‘USA! USA!’를 연호하며 열렬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상당수 미국인들은 아연실색했다. 도대체 대통령의 언어라고 볼 수 없는 어휘 선택에 할 말을 잊은 것이다. 커리를 향해 “오기 싫으면 관둬. 초대하지 않겠다”고 일갈했던 것은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대중 정치인이 야구나 스포츠를 만나서 안 될 이유는 없다. 소통과 공감의 현장을 찾는다는 게 결코 시비거리는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필요한 활동은 당연하다. 물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다만 살펴야 할 지점은 있다. 태도와 절차 같은 것들이다. “초대하면 감지덕지해야지. 니들이 감히 대통령 뜻을 비토(veto)해?” 따위는 안하무인의 극단이다.

‘동네 야구 4번 타자 출신’은 유명한 야구광이다. 대학(경희대) 때나 사법연수원 시절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변호사 개업 후에는 고인이 된 최동원 투수의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창립 과정을 돕기도 했다.

취임 후 오히려 야구와 떨어져 지내다가 지난 가을 그라운드를 찾았다. 광주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때였다. 시구를 겸해서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마침 고인의 동생 최수원 씨가 심판을 맡은 날이어서 뜻깊은 만남도 있었다.

자료를 뒤적이다보니, 인상적인 사진 몇 컷이 걸린다. 시구 뒤 굳이 포수 자리까지 다가가서 허리를 숙인 채 뭔가 고마움을 표시한다. 아마 약간의 패대기성이 마음에 걸린 탓이었으리라. 그리고 챔피언스 필드를 고즈넉하게 내려다보는 부부의 모습. 트럼프라면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장면들일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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