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단독] 마녀사냥하듯 공격적 댓글 경쟁 .. 김보름 결국 입원

김민상.임선영.하선영.김준영 입력 2018.03.19. 02:31 수정 2018.03.19. 20:31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짜내야 할 고름" "국대 박탈" 공격
기사보다 댓글 보고 우르르 따라가
문 대통령 "댓글 담담하게 생각을"
전문가 "악플 폐해 너무 가볍게 봐
실명제, 금칙어 강화 등 대책 필요"
━ 댓글 이대론 안 된다<상>
[포토]김보름,은메달 큰절
“감정을 바깥으로 잘 표현하는 선수가 아니어서 올림픽 뒤 안정을 되찾은 줄 알았다. 충격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국가대표 김보름 선수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 15일 김씨의 소속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창올림픽 팀추월 경기에서 동료를 왕따시켰다는 논란이 인 직후 김 선수는 인스타그램을 폐쇄하고 선수촌 방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이후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딴 뒤 빙판에서 큰절을 하고 “죄송하다”는 소감을 밝히는 등 부담을 극복해가는 듯했다. 지난달 말에는 소속팀 강원도청이 주최한 행사에서 환히 웃으며 ‘이번 일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선수의 어머니 김선옥씨는 “보름이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고 있다. 서울 개인 병원에 갔는데 상태가 심각해 (고향인) 대구로 오게 했다”고 말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사실 확인이 안 됐는데도 도를 넘어선 비난과 악플이 쏟아지면 누구나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실제 평창올림픽 동안 그와 관련된 기사에 달린 악플은 험악하기 그지 없다. ‘짜내야 할 고름’ ‘노란 머리에 문신 벌레’ 같은 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일부 네티즌은 그를 후원한 의류브랜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까지 찾아가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그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청원에는 6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 여론은 제대로 잘잘못이 가려지기도 전에 당사자를 천사와 악마로 재단하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며 “댓글도 서로 경쟁이 붙다 보니 내용이 점차 자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진화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다”고 말했다.

댓글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연구원은 청소년들이 기사보다는 댓글을 뉴스의 신뢰도와 가치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참여한 중·고교생은 “기사 본문을 읽기 전에 댓글을 먼저 본다. 댓글로 기사를 요약해 써놓거나 자기 생각을 썼으니 이걸 먼저 보고 ‘볼 만하구나’ 생각이 들면 기사를 본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피해자도 양산되고 있다. ‘악마’로 규정된 사람을 밝혀내겠다는 이른바 ‘신상털이’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경찰은 최근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여성이 누구인지 밝히겠다면서 신상털이에 나선 지지자 60여 명을 무더기로 입건했다. 이들은 성추행 의혹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와 친분이 있고 같은 대학을 나온 데다 현직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단서로 A씨가 의혹을 폭로했다고 추정했지만 A씨는 사건과 전혀 무관했다. 지난해 ‘아이 혼자 내리게 했다’는 오해를 샀던 ‘240번 버스 기사’도 온라인에서 근거 없는 비방과 공격을 당해야 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악플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권상희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은 기사 내용엔 관심이 없고 댓글로 이 사안에 대해 동조할지 비난할지를 결정한다”며 “이 과정에서 포털사이트가 자극적인 댓글을 상단에 배치해 감정이 무분별하게 전염되는 데 동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악플을 단 사람에게 강력히 대응해 온 탤런트 김가연씨는 “해당 제도와 법안을 관장하는 공무원, 정치인들은 인터넷 세대가 아니라서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며 “가끔 ‘선플 달자’는 보여주기식 캠페인 같은 것을 하는 게 전부 아니냐”고 꼬집었다. “법과 기업 의식을 바꿔 악플을 다는 소수를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은 대통령도 악플 질문을 받자 ‘담담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댓글 폐해를 가볍게 본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최근 정부 비판 기사에 안 좋은 댓글이 달린다”는 질문에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많은 악플을 당한 정치인이 아마 없을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좀 담담하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 바 있다. 성 교수는 “악플에 대한 심각성을 사회 전반적으로 절실하게 봐야 한다”며 “댓글 부분 실명제 등 본인 확인을 강화하는 장치가 필요하고 욕설을 막기 위해 금칙어를 강화하고 추천 수순 배열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민상·임선영·하선영·김준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