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창간기획 - 다가오는 '목말사회'] 공무원은 임금 전액 보전.. 기업선 교통비·식비까지 삭감

이현미 입력 2018.03.18. 18:47 수정 2018.03.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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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구멍'
“주당 근무시간을 25% 줄인 근로자는 매월 10만원씩 받던 식비도 근무시간에 비례해 7만5000원만 받아야 하나요?”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이용한 A씨가 급여의 타당성에 의구심을 가진 건 복지카드 한도마저 줄면서였다. A씨는 2010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식비와 교통비를 적게 준 국민은행과 기간제 근로자가 벌인 소송에서 대법원이 근로자 손을 들어준 판결을 떠올렸다. ‘똑같이 출퇴근 교통비용을 부담하고 사업장에서 밥도 먹는데 1∼2시간 적게 근무한다고 교통비와 식비까지 적게 받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용부 해석은 ‘오락가락’

18일 A씨에 따르면 그는 기본급뿐만 아니라 식비, 교통비, 각종 복지수당 등 전체 임금에서 매월 25%가 깎인 급여를 받았다. 사측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확인했는데 다 삭감하는 게 맞다더라”고 주장했다.

 A씨는 믿기 어려워 지난해 11월 고용부 상담센터에 직접 질의했다. 센터는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삭감하고 복지혜택은 줄이면 안 된다”고 했다.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다. 일반적으로 기본급과 직책수당, 직무수당 등이 포함되나 회사마다 적용 범위가 다르다. 자연히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삼으면 단시간 근로자의 임금삭감 범위가 회사별로 천차만별이 된다.

결국 센터는 A씨에게 다시 전화해 “통상임금이 아니라 시간에 비례해 지급하는 임금만 깎고 복지수당은 줄이면 안 된다”고 정정했다. 이후 고용부 산하 지청과 근로감독관도 같은 해석을 내놨다. A씨와 통화한 근로감독관은 “복지수당뿐만 아니라 다른 수당도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A씨는 기본급, 교통비, 식비, 직급수당, 근속수당, 자격수당(자격증 수당), 상여금, 보육수당 등도 근무시간에 비례해 깎는 게 맞는지 고용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고용부는 “근로시간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복리후생비, 기술수당(자격수당), 보육수당은 근로시간에 비례해 삭감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관행에 의해 단시간 근로자에게 시간비례 원칙을 적용하기로 한 경우는 예외적으로 삭감이 인정된다”고 해석했다.

근속수당, 직책수당 등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또 복리후생비 등을 근로시간에 관계 없이 줘야 하는 수당으로 판단해 놓고서도 ‘관행에 의한 경우는 삭감이 인정된다’는 모호한 단서를 달았다. 이는 임신·육아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게 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비정규직과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과도 배치된다.

◆공무원은 임금 100% 보전… 각 수당 기준도 ‘꼼꼼’ 

더욱이 고용부 의견은 일반 근로자와 공무원을 차별하는 해석이었다. 현재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쓰는 공무원은 아무런 삭감도 없이 임금을 전액 받는다. 현재는 생후 12개월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이 1시간 단축근무를 할 경우 임금을 100% 보전해주고있다. 오는 5월부터는 적용 대상과 시간을 각각 만 5세 이하 자녀, 매일 2시간으로 크게 늘렸다. 만 5세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은 하루 2시간씩 적게 일해도 똑같은 월급을 받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모범 사업장으로서 공직사회부터 임금 전액 보전제를 적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공무원이 받는 혜택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려면 근로자의 임금 상실분을 최소화하려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시간에 비례해 깎는 수당과 그렇지 않은 수당을 구분·제시하고 근로자의 불이익을 줄이는 방향으로 직장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관행상 시간비례로 적용한 임금은 깎아도 된다’는 해석으로 각 사업장에 빠져나갈 구실만 제공했다.

공무원들은 임신·육아가 아닌 기타 이유로 근무시간을 단축한 근로자의 임금삭감 규정도 꼼꼼히 마련돼 있다. 인사혁신처의 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에 따르면 가족수당, 자녀학비, 초과근무 수당 등은 그대로 지급한다. 직급보조비, 정근수당(근무연한에 따라 주는 수당), 정액급식비(시간이 아닌 출근일수에 비례해 삭감), 연가보상비 등만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깎는다.

공직사회만 ‘모범 사업장’을 만들어놓고 민간 사업장에는 정작 모범적 기준을 제시한 적조차 없다. 2015년 발표한 ‘전환형 시간선택제 운영 매뉴얼’에서 ‘단시간 근로자에게 임금, 상여금, 성과금, 그 밖에 근로조건 및 복리후생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고용부가 올 초 내놓은 유권해석에선 ‘관행상 적게 줬다면 문제 없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매뉴얼에도 ‘시간비례로 지급 가능한 항목은 시간비례로 적용한다’고만 적혀 있을 뿐 수당 관련 언급은 없다.

◆사업장 3곳 중 1곳… 근로자 부당 대우

고용부의 ‘2016년 일가정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쓴 근로자에게 “근로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하고 복리후생은 그대로 줬다”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46.8%, “모두 근로시간에 비례해 지급했다(삭감했다)”는 33.9%로 각각 나타났다.

사업장 3곳 중 1곳 이상은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식비, 교통비, 자녀학비, 경조사비 등 수당까지 깎았다. 2016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이용한 근로자는 2761명인데 그중 줄잡아 935명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셈이다. 고용부는 이러한 결과에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의 인지도와 도입률이 올랐다’는 홍보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민간 사업장 근로자들이 과연 마땅한 권리를 누렸는지는 관심 밖이다.

A씨는 “기업은 정부가 주는 제도 관련 인센티브를 챙기면서 깎으면 안 되는 임금까지 깎고 있는데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부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사용한 근로자와 기업에 각각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근로자 임금 감소분을 보전해주고 기업 부담도 줄이려는 취지다. 하지만 근로자의 복리후생까지 줄이는 일부 기업의 관행을 방치하는 한 A씨처럼 이 제도의 효과를 못 누리는 근로자가 늘 수밖에 없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수정권 9년간 정부가 노동자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임한 결과”라며 “좀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 목말사회
머잖아 우리나라는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목말사회’가 됩니다. 세계일보는 연중기획 ‘다가오는 목말사회’를 통해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문제점과 새로운 해법을 고민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