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교황 서한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옹호하려던 바티칸, 교묘한 사진 조작으로 '망신'

최민지 기자 2018. 3. 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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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을 옹호하기 위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서한을 활용하려던 교황청이 편지 내용의 ‘선택적 공개’로 망신을 당했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가 보내온 서한의 전문을 지난 17일(현지시간) 공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교묘한 이미지로 편지 내용을 조작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진 지 닷새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베네딕토16세 전 교황(오른쪽).
바티칸이 지난 12일 공개한 전 교황 베네딕토16세의 서한 사진. 서한 첫 장 맨 마지막 두 줄은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고, 두 번째 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을 주제로 교황청이 발간한 서적에 가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5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서한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을 주제로 교황청이 발간한 서적의 소개 행사에 맞춰 보내온 서한이었다.

공개된 서한에는 베네딕토 16세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학적 깊이가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어리석은 편견”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대 세력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또 서적과 관련해 “스타일과 성격에서 차이가 있을 지라도 나와 프란치스코의 임기 사이에 존재하는 내적 연속성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개혁적이고 사회참여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리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전임 베네딕토 16세와 곧잘 비교돼왔다. 일부 보수 가톨릭 세력은 파격 행보를 이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입장이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다며 비판한다. 교황청의 이같은 서한 공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 및 철학적 업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교황청이 지난 17일 공개한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서한 전문. 블러 처리가 되거나 가려진 곳 없이 모두 공개됐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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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터졌다. 당초 교황청이 공개한 사진에 서한의 일부 내용이 가려져있었기 때문이다. 총 두 장으로 이뤄진 서한의 첫 장 마지막 두 줄은 흐릿하게 처리돼 있었고, 마지막 장 내용 대부분은 책으로 가려져있었다. 교황을 홍보하기 위해 서한을 입맛대로 편집한다는 비판이 일자 교황청은 지난 17일 편지 전문을 숨김 없이 공개했다.

추가로 공개된 서한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해 책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쓸 수는 없었다”며 “내가 왜 (논평을) 거절하는지 당신이 이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서적 작업에 참여한 신학자 중 한 명이 자신과 대립각을 세워 온 인물이라는 데 놀라움도 드러냈다. 로이터는 “누락된 내용은 바티칸이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인용구의 의미를 크게 바꿔놓았다”며 “베네딕토 16세가 해당 책을 읽고, 동의했으며 전적인 지지를 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했다.

교황청은 편지 일부 내용을 보이지 않도록 처리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검열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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