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다고 안아주지 마세요"

2018. 3. 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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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전찬한의 개이득 수업-불안하면 짖는 개
손님 와도 '왈왈', 다른 개 봐도 '왈왈'
그때마다 안아준 게 잘못
순간 모면이 잘못된 습관 만들었다

벨소리 나면 반려견 진정시키고
먹이를 주면서 보상하라
쉽게 안 바뀌지만 끈기있게 해야

[한겨레]

4살 몰티즈 ‘스노위’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리온동물병원에서 열린 사회화 교육 중 다른 개가 교육실에 들어오자 책상 아래 숨어 침을 흘릴 만큼 심하게 짖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왈왈왈왈.”

반려동물로 인한 갈등 중 가장 큰 이유가 짖음 때문이다. 저렇게 짖다가는 목이 쉴 것 같은데 어떤 개들은 끝 모르고 짖는다. 가만히 있으면 이웃집 현관문 여닫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면, 혹시 이웃들의 뭇매 대상이 우리 집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 안 할 수가 없다. 그도 그렇지만 일단은 사납게 짖어대는 나의 반려견 때문에 우리 가족이 먼저 노이로제다.

몰티즈 스노위(4살·암컷)는 안혜정(58)씨네 세 식구의 귀여운 가족이다. 생긴 건 백설기같이 뽀송뽀송하게 생겼는데 행동에는 날이 서 있다. 집에 찾아온 택배 기사가 벨을 누르거나 산책 가다 애들을 봤을 때,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 청소기를 돌릴 때, 다른 개를 만났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짖는다. 목소리도 크다.

안씨 가족은 지난 3일 스노위의 짖는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이리온동물병원을 찾았다. 이 동물병원 교육 이사이자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 애완동물학부 훈련 전임교수인 전찬한 교수가 스노위를 만났다. 교육실을 처음 온 스노위는 새로운 공간에 오자 다른 개들처럼 냄새를 맡으며 공간을 탐색하기보다 일단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조르기 바빴다. 그러다 작은 몸 어디서 나오는 소리인지 스노위의 목청에서 터져 나오는 우렁찬 소리로 교육실 전체가 꽉 찼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스노위는 하얀 침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한참을 짖어댔다.

다른 개를 보자 짖는 스노위(왼쪽). 이정아 기자

안씨와 가족들은 전 이사와 함께 스노위가 왜 이렇게 짓게 됐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전 이사가 가족들에게 스노위와의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했다. 엄마 무릎에 앉은 스노위는 상담시간 내내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혀를 보이며 한참을 헐떡였다. 안씨가 대답했다.

“배변 잘하고요. 크게 말썽 피운 적은 없어요. 조금만 주변 상황이 달라져도 짖어요. 겁도 많은 것 같고요.”

“지금까지 얘가 자라면서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거의 1살 됐을 때 오른쪽 뒷다리 골반 근처 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두 달 정도 입원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 더 많이 짖게 됐나…. 어릴 때 집안에서만 키우고 밖 출입을 안 했어요.”

“개가 짖으면 어떻게 하셨나요?”

“일단 안 짖도록 해야 하니까 안아줬어요. 안으면 조용해지거든요.”

안아주기. 개가 짖을 때 많은 보호자가 일단 개를 안고 진정시키기에 돌입한다. 또는 개가 짖으니 개들에게 침입자로 보이는 손님을 밖으로 내보내는 식으로 순간을 모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체 접촉은 개들에게 먹이보다 더 좋은 보상이다. 스노위가 짖을 때마다 가족들이 보상을 주는 행동을 했으니 스노위는 아마 자신이 짖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셨군요. 이제껏 보호자님들이 스노위에게 패를 다 보여주고 계셨네요.”

전 이사는 스노위가 짖을 때 절대 반응해주지 말라고 조언했다. 끙끙대고 짖고 슬퍼하는 개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기 쉽지만 그럴수록 개들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해 의기양양해진다. 그런데 계속 짖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나. 스노위가 짖는 이유를 좀 더 분명히 알고 그것에 맞게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보통 개들은 주목받고 싶어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려고, 심심해서, 재밌어서, 불안해서, 혹은 몸이 아파서 짖는다고 한다. 보통 여러 이유가 섞여 있다. 스노위는 먼저 공격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겁이 나고 불안하니까 방어하기 위해 짖는다고 볼 수 있었다.

가족들과 다 함께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걸까.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들도 남들로부터 침범받지 않는다고 느끼는 상상 속의 안전지대가 있다. 사람이나 동물 등 친하지 않은 대상이 그 공간으로 들어오면 짖거나 도망가거나 공격성을 보인다. 그 크기는 개마다 다른데 어린 스노위는 병원에 있느라 생활 소음에 익숙해지는 경험이 적기 때문에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자신의 공간이 침범당했다고 인식했을 것이라고 전 이사는 설명했다. 안정감을 느끼는 자신만의 공간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였다.

전찬한 이리온 동물병원 교육 이사가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병원 교육실에서 반려견들의 재사회화를 돕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스노위가 주변 경계를 풀고 자신감을 되찾는 길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이미 성견이 됐기 때문에 어린 강아지들처럼 새 경험을 하게 한다고 해도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만큼 어릴 때 사회화 교육이 중요하지만, 성견이라고 아예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그때그때 배워가는 수밖에 없다.

전 이사는 다음 시간까지 가족들에게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숙제를 냈다. 스노위의 먹성을 이용해 낯선 사람에게서 먹이를 받아먹는 훈련을 해보기로 했다. 이때에는 낯선 사람은 먹이를 들고만 있고 스노위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스노위가 스스로 경계를 허물어야지만 훈련이 성과가 있다.

또 가족들이 초인종 벨을 누르고 개가 짖기 시작하면 먹이를 이용해 스노위를 진정시킨 뒤 조용히 하면 먹이를 주라고 했다. 이때 벨 소리는 평소보다 작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청소기를 돌릴 때도 전원 버튼을 눌렀다가 바로 끄고 스노위가 얌전해지면 먹이로 보상한다.

개도 아이와 비슷하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알아서 하는 것과 같이 개들도 보호자의 마음을 살필 줄 안다. 예쁜 행동을 한 개에게는 먹이나 안아주기 같은 행복을 안겨주면서 서서히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를 몸에 익게 한다.

“학습량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전 이사의 말에 가족들은 “쉬운 것부터 하겠다”고 말했다. 안씨는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먹이 받아먹는 훈련부터 차근차근히 하면 스노위도 나아질 것 같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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