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어느 탤런트의 고백 "그의 추행을 잊지 못하는 이유"

김대오 프리랜서 연예기자 입력 2018.03.18. 12:26 수정 2018.03.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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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로 탤런트 생활 당시 인기 남자배우가 성폭행 시도

198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전해 상을 받은 김현미(가명)씨, 이후 한 방송사의 공채 탤런트로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다. 어느 날, 김씨는 사라졌다. 떠난다는 선언도, 떠나야 하는 이유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그녀가 알려진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고, 자녀를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사실도 언론에 보도된 적은 없다. 그녀가 36년 만에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미투( #Me Too)였다. 왜 그녀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일까. 김씨와의 인터뷰를 옮긴다. 자신도 익명으로, 가해자도 익명으로 해달라는 조건이 붙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탤런트로 이름을 날리다 연예계를 떠난 김현미(가명)씨.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그 일’이 여전히 가슴 속 커다란 응어리로 남아있다 했다. /김대오

“1980년대 초반이었어요. 미스코리아 전속(대회에 입상을 하면 1년간 주최 측의 행사만 참가하는 규칙이 당시에는 있었다)이 풀려 여러 여성잡지들과 화보 촬영을 하며 연예계 데뷔를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하루는 여의도 야외에서 가을 의상을 주제로 한 촬영이 있었어요. 저만 촬영하는 게 아니라 남자 모델과 촬영하는 화보였는데, 그 상대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에 갓 들어간 어린애였고요. 그분은 워낙 유명했던 분이라 바쁘시다면서 저랑 함께 촬영하는 이른바 ‘투 샷’을 먼저 촬영하고 가셨어요. 가시면서 저보고 촬영을 끝낸 후 뭔가를 가지고 여의도에 있는 한 관광호텔로 오라고 했어요. 어두워진 시간이었지만 집이 여의도였기 때문에 겁 없이 그 호텔로 갔습니다. 만남의 장소가 호텔 로비 커피숍이겠거니 했는데 그분이 없었어요. 호텔 방으로 올라오라는 전갈을 받고 어떤 의심도 없이 올라갔습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술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를 강압적으로 침대에 눕혔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열아홉 나이에 뭘 알겠어요? 저는 너무 놀라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 남들은 그러잖아요?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변했고, 온몸에 힘만 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온몸에 멍이 들어있었어요. 그분이 한 손으로는 제 목과 가슴을 압박하고, 또 한 손으로는 제 몸을 만지고 청바지를 벗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저는 온몸이 굳어,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저 좀 살려주세요. 저는 이런 적은 절대로 없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라고만 했어요. 그분은 멈추지 않았고,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소름 끼치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저를 온몸으로 짓눌렀습니다. 어느 순간, 조금 벗겨진 제 청바지 위로 축축함이 느껴졌습니다. 지난 36년간 저는 그 불결했던 그 축축함에 대한 느낌을 지니고 살아야 했습니다.”

◇대학생 딸 “이건 엄마가 클리어해야 한다"

그녀 나이 50 중반, 벌써 36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그 일에 대해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가슴에 묻어뒀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도 이 계통의 일을 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분이나 그분의 아내에 관한 소식을 매스컴, TV를 통해 볼 때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분을 어떻게 하겠다 하는 그런 생각보다 그 기억을 지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기억과 스칠 때 그냥 눈물부터 납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 겁니다.”

- 힘드셨겠지만 그동안 그분과 그 일에 대해선 묻어두시지 않으셨나요?

“묻어두려고 했지요. 그러려고 했어요. 그런데 뉴스를 통해 저와 비슷한 피해 여성들을 접하며 그때 일이 떠올랐어요.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딸에게 ‘생각난다. 채널 돌리자’라고 했어요.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딸 아이와는 비밀이 없어 그 일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엄마. 아픈 거 싫다. 클리어하자. 이건 엄마가 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게 알려져 너에게 피해가 가면 어떻게 해? 결혼할 때도 그렇고…’라고 하니까, 딸아이가 ‘아니야 엄마, 엄마가 편해야지, 지금까지도 많이 아팠는데 엄마가 앞으로도 아프면 어떻게 해’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딸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묻어둔 것처럼 앞으로도 묻어 두었겠지요.”

-그 일이 있은 후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도망쳐서 집에 왔어요.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어요. 당황한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좋냐”면서 “지금 당장 쫓아가겠다”라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어쩌지 못했죠. 당시 아버지의 성격이 다혈질이셨기에 만약 그 일이 알려졌다면 큰 사단이 났을 거예요. 그때는 그런 일 당하면 연예인은 물론 여자로서 살아가기 힘든 시절이었으니까 엄마는 저를 걱정하셔서 그랬던 것으로 이해해요.”

-그분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그분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지 않으셨나요?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그 일 두서너달 뒤였어요. 드라마 대본 연습을 할 때 다시 그 얼굴을 봤습니다. 저를 보고 당황했습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습니다. 흔들리는 그 분의 눈을 보면서 어린 마음이었지만 ‘내 눈 못 맞추는구나, 내가 여기 들어올지 몰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어려움이 크셨을 것 같습니다.

“출연하고 싶었겠어요? 하지만 작가와 PD가 써주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안 하겠다고 하겠어요? 공채 탤런트로서 첫 번째 출연이었고, 중요 배역이었는데 그걸 마다하면 결국 매장당하던 시절이잖아요. 다른 방송국을 갈 수도 없고요. 어쩔 수 없이 드라마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을 드라마 배역에 따라 친·인척 호칭으로 불러야만 했고, 평상시에도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어요.”

-촬영할 때나 대기실에서는 어땠나요?

“힘들었어요. 그분 또래 남자 선배들도 많이 출연한 드라마였는데, 당시 영화로 큰 인기를 모았던 남자 선배와 제가 짝이었지요. 근데 그분이 주동이 돼서 남자들끼리 키득키득 웃기 일쑤였고, 촬영장이든 대기실에서든 저는 주눅이 들었지요. 드라마 촬영도 그렇고 연습에도 나가기 싫었어요. 그분과 마주치기 싫어서 연습에도 참가하지 않다 보니 작가분이 저를 3~4주씩 빼는 페널티도 받았어요. 결국 종영을 앞두고 제가 먼저 ‘그만 써달라’면서 빠졌어요.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어요. 나중에 그분은 동료 여자 연예인과 결혼했는데 집들이에도 가야만 했어요. 회식 자리에 불려가서 환하게 웃어야 했던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분의 집들이도 가셨다고요?

“네. 그때도 갔었고, 애 낳았을 때도 갔죠. 속으로는 ‘이런 데도 와야 되는 거구나’ ‘이런 데 와 있는 게 맞나’ ‘이게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한마디로 비참했어요. 그때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저를 대하는 그분을 볼 때 어땠겠어요? 그때는 제작진이든 연기자든 잔뜩 몰려다니던 때였잖아요. 그런데 그거 빠지면 따돌림을 당하는데 어떻게 빠질 수 있겠어요. 지금이라면 갔겠어요? 지금 같으면 절대 안 가지요. 엄마와 딸을 빼고 그때 일을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그 드라마에 함께 출연했던 제 동료 여배우였어요. 그것도 몇 년 전이에요.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저를 감싸주더군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천연덕스러워져야 하는 나 자신이 너무 힘들었어요. 화를 낼 수도 없고, ‘왜 나한테 그랬어요’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해야 했던 거, 밝게 ‘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더 밝게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가해자의 부인과도 드라마 촬영

-나중에 ‘그분’의 아내와도 함께 드라마 출연하셨잖아요?

“그분, 그리고 그 분위기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오락 프로그램에 눈을 돌렸고, 가요프로그램 MC로 활동했어요. 그런데 저를 아끼던 드라마 PD분이 준비하던 드라마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어요. 하필이면 그분의 아내분과 함께 출연하는 드라마였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거의 모든 신이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그런 역할이었어요. 출연하기 싫었지만,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어요. 아내분에게 그 일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너무 고통스러웠지요. 이후에 그분과 그분 아내가 캐스팅되지 않은 단막극에만 출연했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수 드라마 출연을 여러 번 제안받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이 세계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떠났죠. 그 이후로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왔어요.”

-그분은 촉망받는 한 연예인이 연예계 생활을 접어야 했던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그런 걸 알까요? 그런 거 모르실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을 볼 때마다 애써 태연한 척 웃어야만 했는데 그분이 알았을까요? 절대 몰랐겠죠. 그분과 고아원에서 촬영할 때였어요. 촬영이 끝나고 갈 때면 어느새 정이 든 아이들이 매달리잖아요. 그런 모습에 저도 모르게 불쌍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는데 그분이 ‘왜 그렇게 착한 척하냐’며 비아냥거리더군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난 너 같은 인간이 아니야’라고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용기 내서 이야기하셨을까요?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면... 누가 제 이야기를 믿겠어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는 동료 남자분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저를 보며 킥킥대고 웃어요. 그럴 때마다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들어서 저럴까, 왜들 저러실까 생각했어요. 그 싸했던 분위기, 그때는 ‘왕따’라는 말이 없었는데 정말 그런 분위기였어요.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길거리에서 만나더라도 “여보세요! △△△씨!”라고 쏘아붙이겠지만, 그때는 어려웠어요. 무서웠고요.”

-그 기억들이 얼마나 자주, 오래, 얼마만큼의 통증으로 떠오릅니까?

“안 좋은 일은 기억을 안 하려는 훈련을 했어요. 오십 평생 살아오면서 그 일 말고도 다른 나쁜 기억들도 있었겠죠. 그런 일들은 그게 통했는데, 그때 그 일만큼은 되지 않았어요. 솔직히 지금도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요. 하지만 그분은 매스컴에도 나오고, TV에도 나오잖아요. 그럴 때마다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해요? 그분이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맞아, 나도 한때 연예인이었지’하는 생각이 들면, 다시 그때 그 일이 떠오르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솔직히 그분 안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그걸 원해요.”

◇“미안하다고 직접 사과할 순간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른 분과는 그분과의 그 일에 대해 의논한 적은 없으신가요?

“최근에 아는 분에게 ‘누가 그러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면서 ‘근데, 그게 나라면 어때요? 나에요’라고 하자, ‘그동안 묻고 살았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 하더군요.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남자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공범의식인가요?”

-그분의 사과는 전혀 없었나요?

“제가 요구해야 했나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나요? 마음만 있었다면 나에게 미안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들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뒤에서 낄낄거리고, 그 시선들... 제가 그 시선을 느꼈을 땐 그만한 느낌이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 자체를 용서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조용히 저를 불러서라도 이야기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얼마나 기회가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사죄하고 잠을 못 잔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그래서 식사하자고요? 그게 사과인가요?”

-그럼 최근에 그분과 연락을 하셨군요.

“최근에 '요즘 #metoo 운동으로 온 세계가 이슈가 되고 있죠. 저도 오래전 힘들었던 일로(여의도 관광호텔 일 기억하시죠?) 어린 나이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힘들었던 일들, 모든 것이 고통스러워서 도망치고 싶었던 기억들이 오랜 세월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있어요’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뭐라고 답이 왔던가요?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35년 됐나요? 얼굴 보고 식사라도 하며 사과도 하며~ 편한 시간 주시면 약속 잡아 연락드릴게요”라고 답장이 왔어요.(사건이 일어난 때를 김씨는 36년 전, 가해자쪽은 35년 전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에 화가 나서 제가 답장을 안 했더니,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싶네요. 너무 힘들어 꼼짝 못하고 누워있네요!’라고 왔는데 더 화가 났어요. 저는 지난 세월 얼마나 아팠는데, 지금 ‘너무 힘들고 아파서 누워있는데’ 저보고 어쩌라고요? 저의 고백으로 그분이 잠이 안 오고, 아픈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그분의 몫이지요. 왜 당한 제가 그것까지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나요.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요? 난 30여 년 간 너무 힘들었는데, 그것까지 제가 배려하고, 제 몫으로 돌리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카톡 메시지.

-이런 일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시간이 너무 길면 너무 아파요. 옛날 같으면 어떻게 이야기했겠어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이제는 해야죠. 사실 고백을 하기까지 몇 분과 의논을 했어요. 하지만 다들 너무 옛날 일이다, 네가 다친다, 딸을 생각해라 등의 이유로 저를 말렸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 일을 제 짐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요.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라도요. 신앙심이 두터운 여자 선배에게 기자를 만날 예정이라고 하니까,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했어요. 어제 잠자기 전에 ‘이야기에 보탬 없이 고해성사하듯 편하게 이야기하게 해주세요’라고 하나님께 빌었어요. 그렇게만 기도했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편합니다.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는 인터뷰 후 ‘그 분’과 그 매니저에게 여러차례 연락을 했다. “외국에 가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