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뉴스 그 후]"미투가 우리 탓?"..부글 부글 끓는 386세대들

김봉수 2018. 3. 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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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자료 사진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불붙은 미투(#Me tooㆍ성폭력 피해 고백) 캠페인과 관련해 "386세대들의 문란한 성(性)문화 때문"이라는 가짜뉴스가 나돌고 있다. 야당 유력 정치인들까지 공공연히 입에 올리자 386세대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투 캠페인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대학 졸업생 A씨는 얼마전 온라인 동문 모임에 들어갔다가 이같은 글을 읽고 치를 떨었다. 'Me too 운동'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안희정, 민병두, 정봉주 등 최근 586세대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된 잇딴 '미투' 폭로에 대해 "'성(性)을 혁명의 도구화하는 운동권의 왜곡된 성 문화 때문"이라는 취지로 비난한다. 힘들어 하는 여학생이 있으면 밤에 힘이 넘치는 남학생이 '뜨겁게 안아 준다'든가, 저학년 운동권 조직원들도 복도 계단 아래에서 **를 한다는 식이다.

이 글은 "인권은 혁명이 완수되는 날까지 보류된다. 혁명을 위하여 개인의 인권은 물론 **까지도 수단시되는 것"이라며 "그는 아직도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을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최근 일부 온라인 카페ㆍ블로그는 물론 카카오톡 대화방, SNS 등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주요 정치인들의 입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운동권 출신들도 미투 운동을 사회적 시련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문화를 자기 고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도 지난 8일 당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좌파들이 1980년대 이념교육을 하면서 마지막 순서에 성수치로부터 해방이라는 타이틀로 성공유 의식을 했다"며 "좌파들이 걸리는 행태를 보면서 80년대 친북좌파 운동권들의 의식 연장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투 캠페인으로 인해 '의문의 1패'를 당한 386세대들은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한 정치권 진출 386세대 인사는 "이른바 386세대들은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면서 타에게 모범을 보이고 도덕ㆍ예의를 굉장히 중시하도록 교육받았다. 이기주의, 출세 지향적인 사람들이 주도한 어느 세대들보다 도덕적 수준이 높다고 자부한다"며 "캠퍼스커플 조차도 '동지'로 삼아야 할 사람과 연애를 하느냐며 혼이 났다. 386세대의 성의식이 문란하다는 지적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다만 우리 세대가 젠더 감수성이 약한 상태에서 여성을 보호하거나 보조적 지위로만 보는 문화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386세대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해 여당의 인기를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시내 한 대학 민주동문회 관계자도 "'운동권의 성문화' 얘기는 군사 독재 시절부터 늘 들어 온 것으로 식상하다. 학생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신입생들의 동조를 막기 위해 일부 어용 학자들이나 안기부, 경찰들이 퍼뜨리고 다닌 엉터리 논리"라며 "특히 1986년 발생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전후로 공안당국이 그런 얘기들을 꾸며대면서 공권력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려 했었다"고 회상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현 미투 운동의 원조격이다. 권인숙 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이 당사자다. 권 원장은 당시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에 위장취업했다가 부천서로 연행됐는데, 조사하던 문귀동 경장으로부터 성고문을 당한 후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당시 공안당국과 언론은 운동권들이 정부를 곤란하게 하기 위해 성적 수치심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즉 '성의 혁명 도구화' 논리를 퍼뜨리며 여론을 호도했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짜 뉴스' 횡행이 미투 캠페인을 퇴색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한 전문가는 "공작 운운하거나 386세대의 탓으로 돌리게 되면서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을 폭로해 정화하겠다는 미투 캠페인의 취지를 정치화ㆍ희화하고 있다"며 "개인적인 성적 문란과 성범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더욱이 자유한국당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386세대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데 강제로 하는 성희롱, 성추행 등 성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점에 집중하는 것이 미투 문제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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