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DNA에 인디언이? 美서 유행하는 '뿌리찾기'

심재우 2018. 3. 1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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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업체에 DNA 샘플 우편 발송
한 업체는 일본인으로 나와 당황
카테고리에 한국이 미포함된 탓
이민자 사회의 화합 도구로 활용

━ [특파원 리포트]미국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뿌리 찾기…기자가 직접 해보니

미국은 이민자 사회다. 특히 뉴욕은 너무나 다양한 인종이 공생하고 있어 ‘멜팅 팟(melting pot, 용광로)’이라는 표현까지 쓰인다. 한국인처럼 단일민족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못할 정도로 원인모를 자부심과 편견으로 무장한 미국인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이 어느 나라에서 왔고,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늘 궁금해한다.

이같은 수요를 노리고 현재 미국에서는 23andMe와 마이헤리티지, 앤세스트리 등 DNA를 검사해주는 35개에 달하는 업체가 혈육관계를 따져주거나 특별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성업중이다. 한발 더 나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전자 구성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주는 비즈니스 모델도 내세우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비즈니스에 직접 대입한 것이다.

우연히 본 유튜브 홍보 영상이 뇌리에 박혔다. 전형적인 백인으로 보이는 영국 남성이 조상찾기 DNA 테스트에 응하면서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나라가 있나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독일이요”라고 답했다. 쿠르드족 출신의 여성은 “터키 사람들이 싫어요. 사람들이 아니라 정부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주뒤 DNA 검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종족에서 유래했는지를 공개적으로 알려주는 자리가 마련됐다. 독일이 싫다고 대답한 영국 남성은 '영국인 30%, 독일인 5%'라는 결과르 확인하고는 당황해 했다. 쿠르드 여성도 “내가 터키인이라고요(?)”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동유럽 유전자가 결과표에 나온 쿠바 남성은 “나는 진정한 세계인입니다”라며 크게 웃었다.

이처럼 조상찾기 DNA 테스트가 미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비결은 사람들의 '뿌리 찾기' 욕구와 관련돼있다. 한편으론 인종과 나라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바로잡는데 기여한다. 유튜브 홍보영상도 ‘열린 세상은 열린 마음으로 시작합니다’는 문구로 끝을 맺는다.

이에 직접 한번 해보기로 했다. ‘토종’ 한국인인데 DNA 검사 결과가 한국인 그대로 나올지, 아니면 일본이나 중국의 유전자가 섞여 나올지, 또는 지리시간에 배운대로 아시아에서 알래스카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인디언 원주민과 공통의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 여러가지 사항이 궁금했다.

가장 지명도가 높은 23andMe와 마이헤리티지를 골랐다. 복수 업체에 기자의 DNA 검사를 맡겨야 나중에 신뢰도 있는 결과 대조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됐다. 일단 이들 업체의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고 비용을 지불한 다음 키트를 주문했다.

인간의 염색체 쌍을 의미하는 23과 '자신(Me)'을 조합한 23andMe에는 조상찾기 서비스와 질병 유전자 서비스를 함께 신청해서 160달러(18만원)를 지불했다. 마이헤리티지에는 조상찾기 서비스만 체크해 70달러(7만5000원)를 냈다.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마이헤리티지는 다소 저렴한 가격대를 표방하면서 DNA 검사업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23andMe는 구글의 관계사이다.

본지 심재우 기자가 마이헤리티지 검사를 위해 면봉으로 구강 점막세포를 채취하고 있다. 최정 뉴욕중앙일보 기자
테스트 키트는 주문한지 1주일 안에 모두 도착했다. 23andMe의 키트가 마이헤리티지에 비해 묵직한 편이었다. 마이헤리티지는 면봉으로 입속 구강세포를 긁어서 채취하는 방식이고, 23andMe는 침을 2㎖ 정도 뱉게해서 그 안에 포함된 세포속 DNA를 검사하는 방식이었다.

두 회사 모두 검사한 샘플을 쉽게 박스 우편물로 만들수 있게 디자인돼 있었다. 기자의 DNA가 들어있는 샘플은 우편을 통해 두 회사의 연구소로 배송됐다. 23andMe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벌링턴에서, 마이헤리티지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각각 검사가 진행된다.

DNA는 A(아데닌)ㆍT(티민)ㆍG(구아닌)ㆍC(시토신) 4가지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지에 따라 각각의 유전자 정보가 저장된다. 휴먼지놈프로젝트가 처음 완성된 2003년만 하더라도 30억개의 염기서열을 모두 파악하는데 10년의 세월과 30억 달러(약 3조2000억원)의 돈이 필요했다. 이제는 초고속 분석기가 개발되면서 100달러 이내의 비용과 하루 이내의 기간으로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두 회사는 보내준 샘플에서 확인된 유전자와 각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특별한 유전자를 비교 분석해 조상찾기를 시작한다. 각 지역별로 휴먼지놈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민족을 구분하는 비교잣대가 보다 정확해지는 추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6주후 마이헤리티지가 먼저 검사결과를 e메일로 보내줬다. 의외의 결과였다. 기자의 DNA 분석 결과는 일본인 45.1%, 몽고인 31.1%, 중국ㆍ베트남인 22.8%, 아메리칸 인디언 1%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이헤리티지를 상대로 취재해본 결과, 조상찾기 카테고리에 ‘한국인’이란 항목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인과 유전적으로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해명을 받아냈다. 마이헤리티지에서는 모든 한국인이 일본인으로 통한다는 의미다.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지만 마이헤리티지로부터 ‘미안하다’‘수정하겠다’는 답변은 듣지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2주뒤 23andMe의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한국인’ 90.3%라는 문구가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머지는 일본인 8.8%, 중국인 0.6%, 동아시아인 0.3%, 아메리칸 인디언 0.1% 순으로 나타났다. 23andMe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의 DNA에 대한 두 업체 검사 모두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전자가 조금씩 나왔다는 것은 동아시아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간 것이 사실임을 직접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한국인도 아메리카 대륙에 약간의 ‘유전적 지분’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같은 DNA 검사를 통해 암이나 특정 질병이 발생할 위험을 체크해 예방하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23andMe의 경우 유전자검사를 통해 유방암, 난소암, 전립선암 유전자의 존재 유무를 알수 있는 키트를 의사의 처방없이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상태다.

그러나 바이오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콜레스테롤이나 혈당 등과 관련된 12개 항목에 대해서만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고 있다. 암이나 치매와 같은 질병 항목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검사 자체가 가능하다.

유전자분석 데이터 업체인 디엔에이링크의 이환석 박사는 “미국의 경우 고객이 직접 유전자검사를 의뢰할 수 있는 항목을 작년부터 대폭 풀기 시작했다”면서 “불필요한 규제를 시장에 맞게 완화해야 바이오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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