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TALK] 땅 파서 지진 여부 안다..양산단층 '트렌치' 현장 가보니

울산=김민수 기자 2018. 3.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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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약 3m 지점에 확연히 다른 지층이 맞닿아 있어요. 붉은 색을 띠는 암석이 단절돼 있습니다. 예전에 지진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연대 측정법 분석으로 단층에 변형된 지층이 제4기 에 형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활성단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4일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에서 진행된 ‘트렌치’ 현장. 굴착한 단면을 보면 붉은색을 띠는 암석층이 계속되다가 전혀 다른 자갈층이 나타나는모습이 보인다. 분절된 단면으로 지진이 일어난 흔적이다. 연구진은 자갈층의 연대 분석을 통해 자갈층이 제4기 신생대 지층인지를 확인해 활성단층 여부를 판단한다. /울산=김민수 기자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자원연) 국토지질연구본부 지질연구센터 박사는 4~5m 깊이로 파내려가 속을 드러낸 지층을 보며 말했다. 지난 14일 찾아간 이 곳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 2016년 9월 발생한 관측 이래 역대 최대 규모(5.8)의 ‘경주지진’ 원인으로 지목된 양산단층 지류가 있는 곳이다.

현장에서 만난 최 박사는 “현재 이곳에서 진행되는 연구조사는 땅을 직접 굴착해 분석하는 ‘트렌치’ 조사”라며 “과거 규모 6 이상의 지표 파열을 수반하는 옛 지진의 흔적과 지표 지형변형 여부를 찾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 “변형된 지표는 지진 여부 안다”...제4기 이후 형성된 지층으로 밝혀지면 활성단층

단층에서 발생하는 규모가 작은 지진은 단층이 깨지는 면적이 작다. 지진을 유발하는 응력이 작아 비교적 깊은 곳에만 흔적을 남기고 지표 부근에 파열을 일으킬 정도로 흔적을 남기기 어렵다.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깨지는 단층면에 의한 파열이 지표 부근까지 올라온다. 지표에서 5~10m 부근까지 파열된 흔적이 있다면 과거 중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보면 된다.

현재 지질자원연 연구진은 양산단층대를 구성하는 여러 단층 지류 중 하나에 해당되는 울주군을 중심으로 트렌치 조사를 하고 있다. 부경대와 부산대, 지질자원연,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참여하는 ‘한반도 단층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연구 프로젝트다.

최 박사는 “트렌치 작업은 보통 5~10m 깊이로 파내려가는데, 지표 파열 흔적을 찾게 되면 보다 면밀한 분석을 위해 더 넓고 더 깊게 굴착하기도 한다”며 “파열이 일어난 퇴적층이 언제 형성됐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대 측정에 필요한 시료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만일 지표에 분절된 면의 위쪽에 위치한 퇴적층의 연대 측정 결과 258만년 전부터 현재까지 만들어진 퇴적층이라면 신생대 제4기 지층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생대 제4기 지층(지질학적 시간으로 가장 최근)에 기록된 지진의 증거는 고지진 이력을 말해주며, 이를 통해 잠재적인 미래지진의 특성을 추론할 수 있다. 제4기에 형성된 지층이라는 결론이 나올 경우 이 지역의 양산단층대는 활성 단층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7명으로 구성된 최 박사 연구팀은 이 날 작업한 곳을 포함해 5군데의 트렌치 작업을 했다. 트렌치 작업을 할 후보지역은 사전 연구를 통해 정해진다. 항공 ‘라이다(LIDAR)’ 촬영으로 얻은 고해상도 영상으로 부자연스러운 지표와 지형을 찾는다. 나무나 건물 등 지표에 있는 피복을 통과해 지표까지 갔다온 라이다 영상만 추출하면 지표와 지형 지도가 만들어진다.

경북 경주시 내남면에서 진행된 또다른 트렌치 현장. /지질자원연 제공

이를 통해 부자연스러운 지형 후보지역을 찾은 뒤 현장 지질 조사를 수행, 최종적으로 트렌치 후보 지역을 정하게 된다. 트렌치 지역이 정해지면 최소 일주일 이상의 트렌치 및 현장 조사가 이뤄진다.

최 박사는 “항공영상, 지형분석, 지구물리탐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트렌치를 하게 된다”며 “트렌치에서 지표 파열 흔적이 나오면 제4기 지층에 지표 변형이 있었는지 확인해 활성단층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 동남권 활성단층 지도 제작에 필요한 기초자료 확보

규모가 큰 단층일수록 하나의 단층면이 아니라 여러개의 단층면이 존재한다. 경주지진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양산단층대는 폭만 약 1km에 달한다. 양산단층이 모든 단층대 구간에서 실제로 제4기 신생대 시기에 지표 파열을 일으킬 정도로 지진이 일어났는지 아직 확인되지 못했다. 최 박사 연구팀은 양산단층대의 트렌치 조사를 통해 활성단층 여부를 판단하는 게 목표다.

트렌치 작업이 이뤄지는 구간이 확인되면 구간의 특성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게 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동남권 지역의 활성단층 지도가 만들어지면 어느 단층대가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는지, 어느 구간이 끊어졌는지(분절) 대략적인 윤곽이 나온다. 분절된 구간의 마지막 운동 시기나 움직인 주기 등 고지질학적 특성이 나올 수 있다.

최 박사는 “활성단층 지도와 고지진학적 자료를 충분히 얻는다면 향후 수십년 또는 수백년 내에 대규모 지진의 발생 가능성이 있는지도 추론해 볼 수 있다”며 “공장이나 시설물의 내진 설계 기초자료로도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애로사항도 적지 않다. 트렌치가 필요한 후보지역이 대부분 논밭이거나 사유지인 경우가 많아 토지 주인과의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땅이 건조하고 농가에 일이 없는 12~2월 사이에 트렌치 작업이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토지 주인과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마저도 어렵다.

최 박사는 “지형 분석과 야외 조사도 어렵지만 트렌치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 연구에 한계가 있다”며 “연구인력이 부족하고 지진지질학 분야 전문가도 국내에 많지 않아 연구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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