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보는 청년 시선이 어둡다

안상현 기자 2018. 3. 1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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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국가인권위 노인인권종합보고서
청년 56% "우리 일자리 뺏겨", 77% "복지 늘면 우리만 부담"
고독사·학대·차별 관련 질문엔 청년이 老人보다 2배 이상 '걱정'
일본처럼 노년 두려움 확산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어둡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세대 간 경제·정치·사회적 이해관계가 날이 갈수록 매섭게 충돌한다. 인터넷 공간에선 노인을 경멸하는 언어가 쏟아진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진다. '경로(敬老)'는 옛말이고 '혐로(嫌老)'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것은 노년층만이 아니다. 언젠가 노인이 될 미래를 상상하며 20·30세대가 우리 사회의 '혐로 현상'을 더 걱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처음 '노인인권 종합보고서'를 만들었다. 노인 인권 침해와 그에 대한 국민 인식을 전반적으로 조사했다. 전국 노인(65세 이상) 1000명과 청·장년(19~64세) 500명을 설문했다. 본지가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노년층보다 청년층이 노인의 상황을 더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19~39세) 중 80.9%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부정적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 인권이 침해된다'고 답했다. 노인 응답률(35.1%)의 2배 이상이다.

그래픽=박상훈


노인에 대한 청년들의 부정적 인식은 일자리·복지비용 등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종합보고서에서 청년 56.6%가 '노인 일자리 증가 때문에 청년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고 응답했다. '노인 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고 답한 청년 비율은 77.1%에 달했다. 고령사회로 청년들의 부담이 느는 것이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낳는 것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을 노후생활에 필요한 만큼 받지 못한다'는 문항에 대해 청년 80%가 동의했다. 세대 갈등에 대해서도 청년층이 훨씬 심각하게 느꼈다. '노인·청년 간 갈등이 심하다'는 문항에 20·30세대 81.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노년층(44.3%)의 거의 2배 수준이다.

연구를 맡은 원영희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노인이 됐을 때 겪을 상황에 대해 현재 노인들보다 더 걱정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를 놔두면 '노화 공포증'이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어 사회의 관심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인이 학대·방임을 당한다'는 문항에 노인들은 10%만 '그렇다'고 답했지만, 청년들은 85.2%가 동의했다. '고독사(死) 가능성' '나이로 인한 직장 내 차별' 등에서도 실제 노인이 느끼는 체감보다 청년들의 걱정이 2배 이상 높았다.

'혐로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도 3~4년 전부터 '노년 혐오'를 의미하는 '혐로(嫌老)'라는 신조어가 쓰인다. 노인 세대 부양에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넘어 노인이 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 이런 노년 혐오도 그만큼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은 지난해 8월 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 비중이 14% 이상)에 진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분배 문제와 부양 의무 등 세대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청년층 사이에서 노인 혐오는 앞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며 "노인에 대한 반감이 차별을 낳고, 결국 노인 인권 악화와 노년 혐오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노년 혐오는 실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유행한다. '틀딱(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을 비하)' 같은 표현들이다. 지난해 '태극기·촛불'로 상징되는 세대 간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이런 노인에 대한 혐오는 더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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