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최정화 현대미술가] "역발상으로 뻔한 것도 새롭게 쓰레기와 예술, 차이 어딨겠냐"
못·깨진 병·녹슨 식기 등
예상치 못한 소재로 작품
쓰던 것·사용하는 물건은
한국의 오늘과 내일 보여줘
패럴림픽 개막식을 마무리한 직후 강원도에서 잠시 서울로 넘어온 최 작가를 그의 개인전이 한창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만났다. 자신의 작품 하나 없이도 ‘최정화 색’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는 2년 가까이 준비한 개막식이 열리기 직전까지의 긴장감과 결과에 대한 만족감을 함께 드러냈다.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조화롭게 만나느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신명과 흥이 강조됐습니다. 감독단 전체의 일치된 마음이 꽃을 피운 것이죠. 환영무로 시작해 강원도가 자리 잡은 동해안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로 이어졌어요. 원시 문화가 있는 한반도 그곳에서 아이들이 겨울 놀이를 즐기면서 장애와 비장애가 서로 돕고 똬리를 틀며 원심력과 구심력이 조화를 이룬 회오리를 만듭니다. 과거부터 현재가 단숨에 엮이죠. 오륜의 바퀴는 바큇살 있는 휠체어를 떠올리게 할 수 있겠지만 인연법의 법륜이기도 합니다. 만다라·단청·꽃문양이 돌면서 원을 이루고 물방울이 떨어져 이루는 듯한 파문은 공연 내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죠.”
해·달·오륜기·휠체어 바퀴··· 모든 대립, 둥근 원에서 공존 장애·비장애 똬리 틀며 협력 패럴림픽 개막식 조화에 초점 18일 폐막식은 더 놀라울 것
“작가의 역할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관객에게 경험시키는 것이죠. 저는 전통에 관심이 많지만 궁중 전통이나 상류층의 전통이 아닌 민속·민화 같은 생활 속의 전통, 배제된 것들에 더 관심을 둡니다. 잊히고 버려지고 때로는 우리가 놓아버리고 가치를 주지 않았던 것에서 다시 가치를 되찾는 것이 내 작업이죠. 그래서 내 작업은 미술관보다 생활사 박물관에 더 잘 어울릴지 모릅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이번에 공공미술프로젝트로써 은평한옥마을 전체를 전시장처럼 활용하며 공사장·공터·산책로 등 곳곳에 그의 작품을 선보였다. 마을 초입에 크기가 다른 개집 10개를 층층이 쌓은 ‘새집’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온다. 세계 각국의 청소용구를 모아 꽃꽂이하듯 담아놓은 ‘청소하는 꽃’도 예리한 감각이 돋보인다. 아른아른 속이 비치는 밥상보를 층층이 연결해 나무 위에 걸어둔 ‘바람탑’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운치 있게 나부낀다. 형광분홍색의 플라스틱 꽃들을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겨울꽃’은 계절을 앞섰다. 작품 재료는 하나같이 버려진 것 아니면 시장에서 산 것들이다. 신작은 쓰다 버리는 그릇으로 만들 참이다. 현대차의 후원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형식으로 열리는 ‘MMCA현대차 시리즈’의 올해 작가로 선정된 최 작가는 ‘모이자 모으자’를 외치며 쓰임이 다한 식기를 소재로 한 ‘민들레:민(民)들(土)레(來)’ 프로젝트를 예정하고 있다.
“기억을 채집하는 일입니다. 쓰던 것, 사용 중인 물건은 한국의 오늘을 보게 하고 내일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생활이 예술보다 중요하니까요. 버려질 물건들로 꽃을 만들어 민들레 홀씨처럼 다시 ‘당신들’에게 날아가 씨앗이 되게 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서울에서의 일을 얼른 마무리 짓고 다시 평창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최 작가가 “폐막식은 개막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놀라울 것”이라며 “꼭 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지치기는커녕 한껏 신난 그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게 그토록 재밌느냐’고 물었다.
“기존에 있는 것들, 뻔한 것 갖고도 새롭게 보이게끔 하는 일인걸요. 사뮈엘 베케트(1906~1989)가 ‘낡은 나사의 새로운 회전’을 이야기했죠. 나는 버려진 쓰레기, 옛사람들의 유물, 동양사상의 근본···그런 것들만 들여다볼 뿐입니다. 폐막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봄맞이가 될 거예요.”
우문에 현답한 그가 준비한 평창동계패럴림픽 폐막식은 18일 오후8시부터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다. /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 송은석기자
He is···
△1961년 서울 △1980년 대신고 졸업 △1987년 홍익대 회화과 학사 △1987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1997년 제5회 토탈미술상 △1998년 상파울루비엔날레 △2005년 제7회 일민미술상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2013년 세토우치트리엔날레 △2014년 후쿠오카트리엔날레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 미술감독 △2018년 9월 ‘MMCA 현대차 시리즈’ 전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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