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주한미군, 한반도 '新데탕트' 걸림돌 되나

정완주 입력 2018. 3. 16. 11:13 수정 2018. 4. 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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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4일(현지시간) 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램버트국제공항에 도착,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주리주에서 열린 모금만찬에서 한국과의 무역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한반도에 주둔한 주한미군이 한미 간 통상협상의 인질이 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올해 급속도로 추진되는 남북 및 북ㆍ미관계 개선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자칫 최대 걸림돌이 될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주한미군 철수가 단지 미국의 통상협상 카드로 만지작거리는 수준을 넘어 미국의 대북 및 대중 협상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미국 내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주리 주에서 열린 모금 만찬에서 한국과의 무역협상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CNN 방송, CNBC 방송 등 미국의 주요 매체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암시하면서 무역협상 상대국인 한국을 ‘협박’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일단 진화에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리는 15일 WP의 보도에 대한 미국의소리(VOA)의 논평 요청에 "대통령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현 행정부가 미국인 근로자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의 무역과 투자 협정들을 재협상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공식적인 부인도 아니고 무역협상에 전념한다는 차원이라고만 강조한 것이어서 여파가 계속될 여지를 남겼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1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 철수’를 언급한 데 대해서는 “공식적인 얘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 역시 15일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그(김정은)는 승리의 춤을 출 것으로 믿는다"고 말해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해리스 사령관은 이날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 보유를 통해 한반도를 적화 통일하려 한다는 자신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트펌프의 주한미군 철수 시사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협상과 주한미군을 연계하는 발언이 이번에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6년 7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한국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또한 2015년 NBC 방송과 회견에서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비즈니스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주한미군 무용론’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은 의제이다.

제임스 루빈 전 국무부 차관보는 최근 폴리티코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는 국제주의자가 아니라 국수주의자이고, 해외 주둔 미군 유지를 위한 값비싼 비용 지급과 그 목적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철수 카드는 단지 통상협상 압박 수단이 아니라 대북정책의 일환?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드러낸 ‘천기누설’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배넌 전 수석전략가는 지난해 8월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키고, 검증 가능한 사찰을 보장한다면 미국은 그 대가로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동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맞교환할 수 있다는 핵폭탄급 발언이었다.

미국의 세계적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도 5월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토마스 라이트 수석연구원은 지난 9일 미국 잡지 ‘애틀랜틱’ 기고를 통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 요구하면, 협상가로서의 자아가 지나치게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미군 철수라는 유화정책을 쓸 기반 쌓기에 들어갔다”고 강조했다. 협상가를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 동결과 함께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ICBM 폐기의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 카드가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라이트 연구원은 미국의 군사전문지 ‘디펜스원’에 최근 기고한 글에서 이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서 “트럼프가 특히 한미 동맹에 비판적이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미국에 대한 공격과 동일시했던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안보 노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자칫 오해의 빌미를 줄 주한미군 철수론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가혹한 경제제재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대신 과거부터 줄기차게 요구해 온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예상도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미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평화협정 체결이나 수교를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이 트럼프한테 미군 철수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미국과의 수교를 요구했던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아들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어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볼 때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발언이다. 주한미군의 타깃이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하는 모양새라면 얼마든지 주한미군의 존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북한이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면 마음의 문을 더 열어놓을 수 있다. 북한이 인정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한 다음날이다.

노동신문은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을 거론했다. 노동신문은 14일 ‘약탈자의 흉계가 깔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주한미군을 “미제 침략군”으로 칭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내라고 하는 것은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무지막지하게 놀아대는 날강도적 처사”라고 주장했다. 겉으로는 남한을 편드는 격이지만 골자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통상협상 수단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순간 북한의 계산법은 복잡해질 수도 있다. 그 빌미를 트럼프 대통령이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무역협상에 치중하다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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