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일본 우익은 아베를 버릴 수 있을까?

성회용 기자 2018. 3. 1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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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지로 몰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극우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불하 스캔들이 아베 총리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오랜만에 도쿄 도심과 총리 관저 앞에 대규모 반(反)아베 시위대까지 등장했다.

모리토모 학원은 오사카 외곽에서 유치원을 경영한다. 정말 작은 학원인데 극우주의 교육행태로 유명하다. 특혜 불하 논란이 일어난 국유지는 초등학교 건립용으로 사들였다. 돌출행동으로 얻은 유명세를 등에 업고 학교 하나 지어보려다 사고를 쳤다. 무슨 대학 캠퍼스 건설 같은 거창한 비리가 아니다. 작은 극우성향 유치원이 초등학교 사업까지 해보려다 일이 꼬인 거다.
 
● 연결고리는 극우단체

일본 제1의 막강 권력자 아베 총리는 어쩌다 이런 쥐꼬리 만한 사학재단과 엮였을까? 일본 언론은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 멤버라는 점이 연결고리였다고 보도한다.

실제로 모리토모 학원의 가고이케 이사장은 일본회의의 오사카 대표·운영위원이라는 명함을 공무원들에게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아베 총리는 물론이고 퇴진 압력을 세게 받는 아소 부총리도 바로 ‘일본회의’ 멤버다. 가고이케라는 오사카 지역 유치원 운영자가 중앙 정계의 막강한 실력자들과 ‘같은 모임’이라고 주장했다. ‘잘 안다’고 과시했다. ‘극우교육’을 하려는 데 땅이 필요하다며 편의를 봐달라고 했다.

지역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막강한 총리 부인이 직접 유치원을 방문하자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름만 대면 아는 거물정치인들도 연락이 쏟아졌다. 공무원들에게 노골적으로 편의를 봐주라고 했다. 누가 봐도 모리토모 학원과 극우 정치세력은 끈끈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일본회의 홈페이지

● 일본회의는?

일본회의는 극우단체다. 1997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두 우익단체가 통합해 일본회의를 만들었다. 극우단체 가운데 일본 최대 규모다. 본부는 도쿄 시내 메구로구에 있다. 회원 수는 4만명에 육박한다. 일본 전국에 47개 본부와 241개 지부를 두고 있다. 회원 명단 전체가 공개된 적은 없지만 일본 국회의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회원이라는 게 정설이다.

아베 내각 각료 중에도 아베 총리, 아소 부총리를 포함해 10명 이상이 일본회의 멤버라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기시다 전 외무상과 고이케 도쿄도지사도 회원이다. 기관지 이름도 ‘일본의 숨결(日本の息吹)’, 어딘지 모르게 국수+군국주의 냄새가 풍긴다.

회원 구분도 예사롭지 않다. 정회원, 유지회원,독지회원. 그런데 여성회원을 별도로 분류한다.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극우단체답다. 일본회의는 약간 사이비종교 냄새도 풍기는데 대표위원 35명 가운데 각종 종교 단체 관련 인사가 14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의 대표도 물론 여기에 들어가 있다.
 
● 일본회의의 정치적 색깔

두말할 필요 없다. 물론 극우다. 천황제 국가를 지향한다. 줄곧 1930년대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명했는데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글로는 아름다운 일본을 재건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책 제언과 국민운동을 추진하는 단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기한 내용을 보면 그냥 “2차대전 초기로 돌아가고 싶다”로 이해된다.

단체 강령 세 번째 항목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공생공영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기여한다’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 평가는 정반대다. 걸핏하면 자위대를 강화해서 세계로 진출시키자는 주장을 펼친다. 지금 여당인 자민당 내부 핵심세력과 코드가 일치한다. 강한 일본, 강한 자위대. 일왕을 더 떠받드는 사회분위기. 이게 일본회의의 정치적 목표다. 

일본회의가 모리토모 학원과의 관계를 부인한 해명문(3.13)

● 꼬리 자르기에 나선 일본회의

여간 해서 당황하지 않는 일본회의가 13일 , 5개월 만에 홈페이지에 공지문을 하나 올렸다.
제목은 <재무성의 모리토모 학원 결재문서에 관한 보도에 대하여>. 내용을 보자.

‘모리토모 스캔들에 우리 일본회의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일본회의가 의혹에 휩싸이는 듯이 보도하는 데 사실과 다르다. 모리토모 학원 가고이케 이사장은 과거 일본회의 회원이었지만 7년 전부터 회비를 안내고 스스로 탈퇴를 신청했다. 가고이케 이사장이 일본회의를 탈퇴했음에도 일본회의 오사카 대표운영위원이라고 허위 직함을 기재한 명함을 재무성 관계자에게 배포한 것이다. 우리는 가고이케와 전혀 관계가 없다. 재무성 결재문서에 일본회의 명칭이 거명된 것은 우리도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2년 전 모리토모 학원은 어린 유치원들에게 군국주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외우게 했다. ‘아베 총리 힘내라’는 구호를 아이들 운동회에서 떠들게 했다. 이때는 가고이케 이사장이 일본회의 소속이라는 보도가 쏟아졌어도 항의는 고사하고 회원이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스캔들이 커지고 자민당 핵심들에게 불똥이 튀자 일본회의가 태도를 바꾼 것이다.
 
● 일본회의의 선 긋기 이유

일본회의 대표단 멤버를 보면 극우 성향이 뚜렷한 종교인과 학자, 그리고 정치인들이다. 이들에게 지난 5년은 축복이었다. 아베 총리가 2차 집권을 하면서부터 일본회의에는 힘이 실렸다. 노골적인 극우 단체가 정치적 뒷바람까지 만난 것이다. 일본회의는 아베 정권에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몇 배의 힘을 되돌려받았다. 회원도 늘고 후원자들도 몰렸다. 5년 동안의 달콤한 2인 3각이었다. 그런데 동반자인 아베 총리가 코너에 몰리고 있다. 같이 넘어지면 극우본산인 일본회의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사건의 발단인 가고이케 이사장이 바로 일본회의 출신 아닌가. 7년에 탈퇴했다는 가고이케 이사장이 그 동안 극우행보를 과시할 때는 침묵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일단 가고이케 이사장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아베 총리의 대응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은 공적 자금이나 국유재산에 대한 비리에 대해 국민들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사인간의 트러블은 외면하는 게 일본 여론이지만 일단 ‘공공’이 개입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리토모 스캔들은 바로 국유재산을 헐값에 사들였다 토해낸 전형적인 ‘공공사회’를 등친 비리다. 국민정서상 비난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 불은 어디까지 태울까?

이번 스캔들의 열쇠는 누가 재무성 문서 조작을 지시했느냐는 점이다. 모두 14개의 관련 문서가 조작됐다. 아베 총리 부인은 물론이고 전직 장관급 거물 정치인들의 이름이 재무성 보고 문서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검찰에도 조작한 서류를 내밀 정도로 대담했다. 당연히 누가 이런 간 큰 지시를 내렸느냐가 핵심이다. 만약 여기에 일본회의 멤버들이 관여했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극우단체 일본회의는 최악의 불경기 때 출범했다. 강한 국가를 원하는 군중심리를 업고 성장했다. 아베 정권은 이들 극우단체의 절정기를 열어줬다. 걸핏하면 야스쿠니 신사에 머리를 조아리는 우익 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우리가 곧 국가’라는 오만함이 싹틀 수 밖에 없었다. 경제까지 좋아지면서 기세는 오를 대로 올랐다. 아베 정권과는 거의 운명공동체 비슷하게 끈끈한 결속을 자랑했다.
 
이제는 상황이 반전됐다. 서서히 거리를 벌려서 불을 피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일단 불을 피해야 타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일본회의의 계산처럼 보인다. 한 때 극우의 아이콘처럼 행동한 가고이케 이사장을 떼어낸 것도 그런 맥락이다. 붙어 있다가 같이 욕먹지 않겠다는 의지가 뻔히 읽힌다.

극우총본산을 자처하는 일본회의로서는 정권은 또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일 게다. 여전히 여당인 자민당이 압도적인 국회의석을 갖고 있다. 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서 절대 여당은 곧 국가를 의미한다. 포스트 아베를 자처하는 자민당 정치인 가운데 상당수는 아베 못지않은 잠재적 극우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고이케 도쿄 도지사 같은 경우 극우지수가 아베 총리보다 훨씬 높다. 반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아베 총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본 극우는 대안이 흘러 넘치는 것이다.

진정한 연대는 파국도 함께 맞아야 하겠지만 세상에 그런 연대가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대체재들이 충분한 상황이다. 아베 정권이 막다른 구석까지 몰리면 일본 극우는 과연 등을 돌리게 될까? 지금으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리토모 스캔들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성회용 기자are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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