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 경질을 바라보는 김정은의 속마음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입력 2018. 3. 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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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북핵과 이란 핵의 엇갈림, 그 희망과 불안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핵 문제와 관련해 두 가지 결심을 한 것 같다. 하나는 5월 이내에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담판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 자체로는 희망적인 소식이다. 또 하나는 이란 핵협정 파기를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절망적인 소식이다. 그리고 5월, 세계의 화약고들로 불렸던 한반도와 중동은 운명적 순간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조가 나타났다. 트럼프가 13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국무장관으로 내정한 것이다. 예견된, 그러나 느닷없는 국무장관 교체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트럼프의 두 가지 결심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틸러슨은 사사건건 트럼프와 불협화음을 보였지만, 폼페이오는 트럼프의 충실한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래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매파로 불렸던 폼페이오의 국무장관 기용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의 최측근이 외교 전면에 나섬으로써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과를 내려는 트럼프의 의중이 더 잘 실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서훈 국정원장과 긴밀한 소통 채널을 갖고 있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인 평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 협상이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협상 실패 시 트럼프는 선제공격을 비롯한 초강수를 옵션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은데, 폼페이오는 이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폼페이오는 CIA 국장으로 있으면서 북핵 저지를 위한 군사적, 비군사적 수단들을 강구해온 인물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가 국무장관을 교체한 데에는 이란 핵협정에 대한 판단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트럼프는 틸러슨을 경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란 핵협정을 끔찍하다고 보는데, 그(틸러슨)는 괜찮다고 느낀다. 우리는 진짜로 생각이 달랐다." 틸러슨은 최근까지 이란 핵협정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틸러슨에게 '헛수고하지 말라'며 해고한 셈이다.

이에 반해 폼페이오는 이란 핵협정과 관련해 트럼프와 이구동성을 해왔다. 폼페이오의 기용이 이란 핵협정 파기의 수순이라는 분석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그런데 '디-데이'가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는 5월 12일까지 이란에 경제 제재 부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경제제재를 다시 부과한다면 이란 핵협정은 운명을 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제재 부과를 핵협정 파기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연합 국가들은 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러나 이에 동조해온 틸러슨은 경질되었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폼페이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또한 유럽 연합은 미국이 경제제재를 부과해도 이란과의 경제관계는 지속할 뜻을 내비치고 있지만, 유럽 회사들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들에 대해 제재를 부과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란 핵협정이 파기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중동 아마겟돈'의 문을 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중동을 관할하는 미국 중부사령부의 조셉 보텔 사령관은 최근 미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란 핵협정은 우리가 이란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원칙적인 위협 가운데 하나인 핵문제 해결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이란 핵협정이 사라지면, 우리는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상대하기 위해 다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가 말한 "다른 길"이란 바로 전쟁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 한 가지 질문. 이란 핵협정이 파기되면 김정은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국제정세에 밝다"는 김정은은 이란 핵협정의 운명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면서 트럼프와의 담판을 저울질할 것이다.

우려되는, 그렇지만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김정은이 '미국은 믿지 못할 나라'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란 핵협정을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려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또한 그의 머릿속에는 대량파괴무기 무장해제를 당하고 나중에 침공을 당한 이라크의 후세인, 자발적으로 핵포기를 선언했다가 8년 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리비아의 카다피, 한때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가 강대국들의 약속을 믿고 모든 핵무기를 포기했지만 10년 만에 강대국들의 배신을 경험한 우크라이나 등이 차례로 스쳐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최후의 질문을 떠올릴 것이다. '핵무력에 의존하는 평화가 안전할까? 아니면 비핵화를 통한 평화가 더 좋을까?'

이러한 전략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안고 있는 김정은에게 트럼프의 무모하고도 위험한 이란 핵협정 파기 움직임은 그 자체로는 분명 악재다. 동시에 김정은과 트럼프를 상대로 운명적 행보에 나선 문재인 정부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핵무기보다 더 확고한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해 트럼프의 동의를 구하고 김정은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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