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앉아 우주를 유영한 천재의 죽음에 전세계 애도

입력 2018. 3. 14. 17:46 수정 2018. 3. 1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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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별세..자녀들 "업적과 유산 이어질 것"
21살 때 루게릭병 시한부 판정받고 55년간 불굴 의지로 극복

[한겨레]

스티븐 호킹 박사. 스티븐 호킹 공식 누리집 갈무리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일생을 바친 스티븐 호킹이란 별이 다시 우주로 돌아갔다. 한 발짝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무한한 시공간을 연구하고 여행했으며, 동시대인들을 그 세계로 안내해온 인물이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호킹이 14일 새벽(현지시각) 76살 나이로 영국 케임브리지의 집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자녀 루시, 로버트, 팀은 “사랑하는 아버지가 오늘 세상을 떠난 것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아버지는 위대한 과학자였고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우주론의 가장 밝게 빛난 별”이라며 애도했다.

194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난 호킹은 62년 옥스퍼드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66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21살에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루게릭병)으로 몇년 더 못 살 것이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1985년엔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수술을 받고 목소리까지 잃었지만 삶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다. 일반상대성이론에 기반을 둔 블랙홀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빅뱅과 블랙홀 이론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고, 블랙홀이 열복사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한 ‘호킹 복사’ 이론을 내놨다. 평생 그를 자극한 것은 “왜 이런 모습이며, 왜 이렇게 존재하는지”를 밝혀 “우주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은 지적 욕구였다.

탁월한 연구자였을 뿐 아니라 활발한 저술 활동과 강연으로 대중의 과학 지식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대표작 <시간의 역사>는 40개 이상의 언어로 출간돼 1000만부 이상 팔렸다. 32살에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됐고,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간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의 이름엔 컴퓨터 음성재생장치 조정기를 손에 쥐고 오른쪽으로 머리를 젖힌 채 휠체어를 탄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그는 자주 미소를 지었다. 그의 업적이 더욱 빛을 발한 건, 손이 마비되고 1분에 세 단어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대중과의 교류를 멈추지 않아서다. 안면에 부착한 센서로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고, 육성이 아닌 음성재생장치로 발언하며 세상과 소통했다. 우주와 철학을 논하며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는 ‘친절한’ 학자였다.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고견도 종종 내놨다. 지난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웹 서밋 기술 콘퍼런스에선 “인공지능(AI)이 인류 문명사에서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 스티븐 호킹 공식 누리집 갈무리

호킹은 애니메이션 영화 <스타 트렉>에 나오고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도 목소리로 출연하는 등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삶을 낙관하며 즐겼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와 아내였던 제인 호킹의 삶은 2014년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조명받았다. <에이피>(AP) 통신은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실험실은 우주였다”고 했다. 호킹은 평생에 걸쳐 자신만의 우주에서 맘껏 유영했다. 평생을 우주를 연구한 이답게 아인슈타인처럼 신학적 의문에 대한 소견도 밝힌 바 있다. <그랜드 디자인>이라는 저서에서 “자동적 창조”를 언급하며 무신론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호킹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도 믿었다.

천재의 상실에 세계 과학계가 애도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트위터에 “그의 이론은 우리와 전 세계가 연구하고 있는 우주의 가능성에 관한 빗장을 풀었다”며 “2014년 우주인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미소 중력(무중력)에서 슈퍼맨처럼 계속 날아다니길 기도한다”고 적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는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 대중들이 복잡한 이론과 개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믿을 수 없는 과학적 헌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킹은 생전 죽음에 대한 관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2011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죽는 것을 서두르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2013년 발간된 자서전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는 이렇게 끝난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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