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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사진으로 보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발자취

김상선 입력 2018.03.14. 17:20 수정 2018.03.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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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천체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가 14일(현지시각) 자택에서 76세로 타계했다. 루시· 로버트· 팀 등 호킹의 세 자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부친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이들은 성명문을 통해 “아버지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며 “아버지의 용기와 끈기, 탁월함과 유머 감각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우리는 아버지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킹 박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인, 근 위축성 측색경화증(ALS) 진단을 받고 사망 직전까지 투병했다. 당시 진단 의사는 호킹 박사에게 1~2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내렸지만,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 뛰어난 연구성과로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와 이론물리학자가 됐다. 호킹 박사를 기록한 사진을 통해 그의 발자취를 들여다봤다.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이라는 신체적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우주론과 양자 중력 분야에서 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살아왔다.
그는 대학 시절 조정 선수로도 활약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21세의 나이에 얻은 불치병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 장 한장도 손으로 넘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왔다.
2017년 3월 24일 홍콩을 방문했던 호킹 박사.[AFP=연합뉴스]
1970년대 후반 호킹 박사는 논문을 통해 블랙홀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이기만 한다는 기존 이론을 뒤집고 물질을 뱉어낸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호킹 박사는 대학재학 시절에 만난 첫 부인 제인 사이에 3자녀가 있다. 1990년 제인과 이혼하고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였던 일레인과 재혼했다.
[EPA=연합뉴스]
한때 호킹 박사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되어주었던 두 번째 부인 일레인. 그녀는 당시 움직일 수 없는 호킹 박사를 학대한 것으로 알려졌고, 호킹 박사는 결국 2006년 11년 만에 그녀와 이혼했다.
2008년 4월 21일 워싱턴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강의하는 호킹 박사.[AFP=연합뉴스]
1988년 발간한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병원비가 부족해져서 경제적 곤란을 겪었던 그는 저서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
[AFP=연합뉴스]
스티븐 호킹은 2009년 8월 12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비록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일 수 있는 과학자였지만, 전 세계를 돌며 새로운 우주이론을 발표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2002년 8 월 19일 베이징에서 물리학 자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과 만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연합뉴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난 1990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해 9월 9일 주한 영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환영만찬회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 등과 만났다.
다음날인 1990년 9월 10일 호킹 박사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블랙홀과 아기 우주'에 대해 강연을 했다. 호킹 박사는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두 번째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호킹 박사는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 직원을 대상으로 ‘호두 껍질 속의 우주’를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에서 그는 “저의 가장 큰 업적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라고 말해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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