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권력 무상"..뒤숭숭한 MB 포항 고향마을

김정석 2018. 3. 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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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유년기 보낸 포항 덕실마을…"이게 무슨 일이냐" 뒤숭숭
14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 마을회관에서 한 주민이 마을회관 안에 걸린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자꾸 이러면 이제 대통령 아무도 안 할라 칼 끼다!(안 하려고 할 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등 혐의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한 14일. 이 전 대통령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덕성1리)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덕실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30여 명은 대부분 이날 오전 이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자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 전 대통령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같은 고향 출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덕성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조규자(80·여)씨는 "정치를 잘 몰라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며 "이 전 대통령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문재인 정부가 그를 괴롭히는 것 같아 TV 보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조씨는 마을회관 안에 걸려 있는 이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 사진을 바라보며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가족과 함께 이 마을을 찾았을 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는데 이제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집안일을 하고 있던 유순옥(87·여)씨는 "시집 오고 나서 이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많이 전해 들었다. 공부도 잘 하고 착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저런 고초를 겪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대통령만 하고 나면 저렇게 잡혀 들어가니 이제 대통령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14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덕성1리)에 위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 복원 생가. 포항=김정석기자
덕실마을에서 15년 정도 살았다는 허정(75)씨는 "전직 대통령들 중 그만한 뒷돈을 안 챙긴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도로 끝냈으면 됐지 너무한 것 같다. 대통령 재임 시절 높았던 권력이 무상하다"며 "이렇게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으면 지역갈등이나 이념갈등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이 전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있으니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 생가와 인접한 곳에 살고 있는 김모(74)씨는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좋은 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비리 의혹만 쏟아졌으니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했지 않았겠느냐"며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은 밝혀지고 처벌 받을 것은 확실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 당시 이 전 대통령이 고향 마을을 찾아오지 않은 데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한 70대 남성 주민은 "자기 고향 마을에 큰 지진이 났으면 찾아와서 주민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며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주민들이 서운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14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덕성1리)에 위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 기념관. 임시휴관한 상태다. 포항=김정석기자
마을 한 쪽에 조성된 이 전 대통령 복원 생가는 방문객이 없어 한산했다. 복원 생가는 이 전 대통령이 살았던 집터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대통령이 살았던 당시 모습을 전통 방식으로 복원해 만든 이곳은 안채와 사랑채, 창고 등 초가집 건물 3동과 우물 등이 1598㎡ 부지 안에 자리해 있다. 인근에 위치한 이 전 대통령 기념관인 '덕실관'도 입구에 '임시휴관'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은 채로 폐쇄된 상태였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이 전 대통령을 안타까워하는 고향 마을 주민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포항시 남구 대잠동에 사는 김모(74)씨는 "대통령 재임 중에도 각종 의혹이 많았는데 검찰 조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활동하는 손광운 변호사는 "검찰의 이번 수사가 정치보복 성격으로 흘러가서는 결코 안 되겠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의 부정이 있었다면 적폐를 청산하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단호하고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효자동에 사는 박모(39·여)씨는 "전직 대통령이 또 검찰 조사를 받는 건 안타깝지만 지은 죄만큼 겸허히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포항·전주·의정부=김정석·김준희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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