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GM은 군산에서 왜 브레이크 밟나

이종태 기자 입력 2018.03.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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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독일·오스트레일리아·러시아·인도네시아·인도 등 여러 해외 생산기지에서 발을 뺐다. 경영난이나 유동성 부족 때문이 아니다. GM의 경영 전략을 알아야 '한국GM 사태'를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초 열린 미국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제너럴모터스(GM) 주주총회에서는 사운을 건 전쟁이 벌어졌다. 도발자는 GM의 대주주(지분 3.6%)인 그린라이트캐피털(이하 그린라이트). 유명한 기업사냥꾼 데이비드 아인혼이 회장을 맡고 있는 헤지펀드다. 그린라이트는 지난해 3월, ‘GM 가치 상승 막는 천장 뚫기(Unlocking Value at GM)’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경영진에 보냈다. GM의 주식(보통주)을 두 종류, 즉 ‘배당 전용 주식(Dividend Shares·배당전용주)’과 ‘자본가치 상승 주식(Capital Appreciation Shares·자본가치주)’으로 쪼개자는 기상천외한 방안이었다(39쪽 상자 기사 참조). 이 방안을 시행할 경우, GM의 시가총액(주가×주식 수)이 70% 오를 거라고 그린라이트는 주장했다. 또한 GM 이사 3명을 그린라이트 추천 인사로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GM의 6월 주총은 그린라이트와 메리 배라 CEO 체제가 격돌한 전쟁터였다.

문제는 GM의 낮은 주가였다. 2010년 11월의 재상장(GM은 2009년 파산한 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재건되었다) 이후에도 주가가 도통 오르지 않았다. 재상장 직후인 2011년 1월 초, GM의 주가는 1주당 37달러 내외였다. 2013년 말에 잠시 40달러를 돌파했으나 다시 추락해 지난해 3월에는 34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에 ‘S&P500지수(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산출한 주가지수)’가 80% 정도 올랐는데, GM 주가는 오히려 3% 떨어졌으니 주주들의 분노가 폭발할 만했다.

GM 경영진은 물론 대다수 언론과 신용평가사들이 그린라이트의 제안에 질겁했다. 무엇보다 GM의 재무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었다. 기업이 주식, 채권 등 증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린라이트가 주장한 배당전용주를 발행하면, GM은 현금 한 푼도 새로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무려 20억 달러 규모의 채무를 떠안게 된다.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GM은 유동성 축소는 물론 더 높은 금리를 감당하게 되면서 수익성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린라이트 같은 ‘주주행동주의자’들에게 친화적인 미국 사회에서도, ‘투기꾼만을 위한, 해도 해도 너무한(gone too far) 도발’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주총에서는 GM 메리 배라 CEO 측이 승리했다.

패배한 그린라이트가 극단적으로 과격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GM 주주들의 분노 때문이다. 메리 배라 CEO 체제 역시 ‘주가 올리기’에 심각한 부담감을 느껴왔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인수합병으로 성장해온 GM

메리 배라는 2014년 1월 CEO로 취임한 이후 매년 판매 실적을 경신했다. 2015년에는 분기 배당률을 20%에서 36%로 올렸다.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5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강행하기도 했다. 꽤 과격한 방법도 동원했다. 생산 규모를 축소해서 총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자회사를 포기하거나 매각하면 된다. GM에는 포기하거나 매각할 수 있는 자회사가 굉장히 많았다.

GM은 1908년 창립 당시부터 국내외 명문 자동차 회사들을 인수합병하면서 성장해온 그룹이다. 창립자 월리엄 듀런트는 뷰익을 경영하면서 올즈모빌, 캐딜락, 폰티액, 쉐보레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을 잇달아 합병해 GM의 초석을 다졌다. 인수한 회사의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품을 다양화했다. 캐딜락은 부와 명예·성공을 상징하는 사치품이고, 그다음의 고급 상표는 보수적 이미지의 뷰익이다. 쉐보레는 가장 대중적인 상품으로 젊은 층을 겨냥했다.

해외 기업들에도 손을 뻗쳤다. 1929년에는 독일 오펠(복스홀은 오펠의 영국 자회사), 1931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홀덴을 인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탈리아 피아트를 인수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으나 경영난으로 포기했다(위약금으로 20억 달러를 지급함). 한국의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2001년이다. 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이머징 마켓에도 진출했다. 확장 지향성이 매우 강한 ‘세계제국’이었다.

ⓒEPA 2009년 11월5일 독일 오펠의 노동자들이 GM의 구조조정 발표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2009년 파산 이후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부활한 GM은 예전 같지 않았다. 축소 지향형 회사로 변신한다. 해외의 생산기지에서 발을 빼며 제국을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취임한 메리 배라 CEO는 이런 흐름을 본격화한다. 2015년 러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생산기지에서 철수하고, 타이의 시설을 축소했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3월에는 GM의 유럽 본부로, 그룹의 매출(2016년에는 120만 대 판매)과 기술 개발에서 핵심적 지위를 유지해온 오펠과 복스홀을 프랑스 자동차 그룹인 PSA에 매각했다. 2개월 뒤에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포기하더니, 지난해 10월엔 오스트레일리아 홀덴에서 철수했다. 당시부터 ‘다음 표적은 한국 GM’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 매체인 <오토모티브 뉴스>에 따르면, GM은 ‘세계로부터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disenga- ging from the world)’. 일시적 경영난이나 유동성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 경영 전략 차원에서 말이다. 다른 글로벌 메이커들과 비교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자동차는 고정비용이 막대한 산업이다. 거대하고 비싼 장비와 수많은 노동자가 필요하다. 이런 산업에서는 제품을 많이 생산해야 비용 최소화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규모의 경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연간 1000만 대’ 생산 규모를 갖추기 위해 앞다퉈 국내외 업체들을 인수해온 이유다. 연산(연간 생산) 1000만 대에 근접한 기업으로는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 프랑스 르노닛산, 미국 GM 등이 있다. 현대기아차는 900만 대 정도다.

GM은 ‘글로벌 최대 자동차 메이커’ 지위를 둘러싼 경쟁에서 이탈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2017년 6월24일자)는 GM의 연간 생산능력이 850만 대로 줄어들 것이라며 “매출(판매량)보다 이윤에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예컨대 10억원 상당의 제품을 팔고 1억원의 이윤을 기록하던 회사가 생산량을 8억원 규모로 축소하지만, 그만큼 비용도 줄이면서 최종적으로는 1억3000만원의 이윤을 남기는 방식이다. 회사의 매출 규모와 시장점유율, 고용량 등은 크게 줄어들겠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기업이 오히려 각광받는다. GM은 지난해 3월6일 오펠 매각을 발표하면서 로이터 통신에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오펠이 자회사가 아니었다면, 지난해(2016년) 2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시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사 GM의 총수입이 (오펠이 없기 때문에) 10% 정도 줄었다고 해도 ‘주당순이익(EPS:순이익을 총주식 수로 나눈 값.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은 5% 상승했을 것이다. 앞으로 자본 지출을 연간 10억 달러 정도 줄일 계획이다.”

GM은 해외 철수로 절감한 돈을 어디에 쓸까?

GM은 해외 철수로 절감한 돈을 대충 세 가지 용도로 사용할 것이다. 첫째, 주주에 대한 환원으로 주가를 부양한다. 둘째, 큰 개발비를 들이지 않고 높은 수입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부문에 투자한다. 북미에서는 유가 하락 이후 GM의 픽업트럭과 SUV가 엄청난 인기다. 중국에서는 GM의 주요 브랜드인 뷰익이 오펠과 복스홀(2016년에는 120만 대)보다 우월한 실적을 내고 있다. 북미와 중국은 GM의 캐시카우(cash cow)다. 셋째, 미래형 자동차 및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집중 투자할 것이다. 메리 배라 CEO는 지난해 3월 언론 인터뷰에서 ‘GM의 기업 가치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자동차 산업을 변혁할 테크놀로지와 ‘서비스로서의 교통(TaaS: Transportation as a Service)’ 개념 덕분에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 자체가 바뀔 것이다. GM은 미래에 투자하면서 거대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가 언급한 테크놀로지는 전기차(EVs)와 자율주행차(AVs)다. 자동차는 ‘내연기관 중심의 이동 기계’로부터 점점 더 정보통신(IT) 기기에 가깝게 변화되고 있다.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이 IT 업체와 협력하거나 인수하는 반면 구글이나 테슬라 등은 자동차 제조를 모색하는 형국이다. 업종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전기차 전문업체인 테슬라는 지난해 4월 GM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뒤 지금까지도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월26일 기준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591억 달러인 반면 GM은 581억 달러이다. 테슬라의 연간 생산능력은 GM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8만 대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테슬라는 2020년까지 연산 50만 대 체제를 꿈꾸지만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처럼 대량 생산라인을 갖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여기에 GM의 기회가 있다. 대량생산 능력에 첨단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면 된다. 지난해 초 출시한 전기차 쉐보레 볼트는 테슬라를 따돌리고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 1위다.

GM은 자율주행차 부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선두 주자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내비건트 리서치가 지난 1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자율주행 기술력 부문에서 1위는 GM이다. 그다음이 알파벳(구글의 모기업)의 자율주행차 개발업체인 웨이모. 테슬라는 꼴찌다. GM은 2016년 자율주행 차량 스타트업인 크루즈 오토메이션(Cruise Automation)을 10억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한국GM 제공 GM이 공개한 크루즈 AV에는 운전대와 가속페달이 없다.
ⓒ연합뉴스 GM은 내년에 몇 개 도시에서 이 모델을 시험 주행할 계획이다.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는 세계시장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GM의 야심찬 계획은 전기차 쉐보레 볼트와 자율주행 기술의 결합이다. 지난 1월12일 선보인 ‘크루즈 AV’ 모델이 그것이다. 크루즈 AV에는 운전대와 가속페달이 없다. 당연히 운전석도 없다. 그냥 앉아 있으면 된다. 고객이 호출하면 집 앞으로 와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로봇택시다. GM은 내년에 몇 개 도시에서 시험 주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GM은 앞으로 형성될 로봇택시 시장의 1번 주자가 될 수 있다.

이 로봇택시는 GM의 미래 비즈니스 모델인 ‘서비스로서의 교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로봇택시 서비스가 대중화된다면, 굳이 차량을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 <이코노미스트> (2016년 1월9일자)가 영국 대형 은행 바클레이 보고서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완전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미국 가구의 평균 자동차 소유 대수가 현재의 2.1대에서 2040년에는 1.2대까지 축소될 전망이다. 고객 처지에서는 자동차를 ‘소유’하기보다 다른 개인이나 기업이 제공하는 ‘이동 서비스’를 이용하는 쪽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서비스로서의 교통’이다. GM 같은 자동차 메이커에게는 끔찍한 위기다. GM이 2016년 차량 공유 업체 가운데 우버 다음의 2위 업체인 리프트(Lyft)에 5억 달러를 투자한 이유다. 자사가 양산하는 로봇택시로 ‘자동차 공유 사업’을 하겠다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GM의 전기차 및 차량 공유 서비스 부문 진출은 기업 처지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차량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면 비대한 생산능력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해외 생산을 중단함으로써 조달된 자금을 주가 부양에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일거양득이다. GM은 더 작고 덜 글로벌화되지만 더 수익성 높은 기업을 지향한다. <이코노미스트> (2018년 1월25일자)는 바클레이 은행 애널리스트의 입을 빌려 GM의 글로벌 구조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GM은 (비대한 몸집 때문에) 죽어가는 공룡이 아니라 진화 중인 포유류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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