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간호사 노동환경 고치는 처방은 '연대의 힘'이죠"

입력 2018. 3. 13. 19:56 수정 2018. 3.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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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캐나다간호사노동조합 위원장 린다 사일러스

최근 두번째로 서울을 방문했던 린다 사일러스 캐나다간호사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의 간호사에게 연대를 통한 ‘좋은 싸움’을 당부했다. 사진 송진영 연구원

“속도보다 중요한 건 연대입니다.” 최근 서울을 다녀간 린다 사일러스(57) 캐나다간호사노동조합(CFNU) 위원장이 남긴 말이다. 그는 캐나다 간호사들의 노동조건이 좋아지고, 의료의 질이 개선된 비결로 연대를 거듭 강조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초청으로 창립 20돌 기념 국제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한 그는 여러 병원을 탐방하는 등 5박6일간 한국의 의료 현장을 둘러봤다. 지난 1일 서울 시내 숙소에서 만난 그는 ‘이제는 간호 지식이 녹슬어 몸이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대신 일하는 환경을 낫게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보건의료산업노조 창립 20돌 ‘축하’
캐나다 간호사 처우개선 사례 소개
“전체 간호사 90% 가입한 노조 강력”

“한국도 간호사들 ‘좋은 싸움’ 필요”
의사·환자·시민들과 연대 ‘제안’
“혼자 아닌 함께여서 30년 노동운동”

“제가 노동운동을 시작할 무렵인 1980년대만 해도 간호사의 처우는 환경미화원과 비슷할 정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캐나다 간호사들의 연평균 급여는 5400만원에서 6200만원 수준이다. 전체 국민소득 평균 5200만원에 견줘 많게는 1천만원이나 높다. 여기에 더해 유급휴일, 육아휴직 등 복지 혜택도 다양하다.

사일러스 위원장은 간호사들의 노동조건이 이렇게 좋아진 데는 조합원들의 강한 연대에 따른 산별교섭이 큰 구실을 했다고 평가했다. 캐나다간호사노조는 전체 간호사의 90%에 이르는 20만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그는 노동조건이 나아진 또 하나의 비결로 노사정 간 대화를 꼽았다. 대표적으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대응 때를 들었다. 방독면·보안경·장갑·가운 등의 감염 예방 장비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251명의 사스 감염자 중 의료진이 40%를 차지했다. 이에 노사정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의료진의 감염을 예방하는 조처를 강화했다. 캐나다 정부는 2009년 의료진 감염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개선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간호 현장은 여전히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해마다 1만1천명의 신규 간호사가 공급되지만, 이직률이 상당히 높다. 24시간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호 업무의 특성상 초과 근로가 잦고 업무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사일러스 위원장은 이직률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도 간호사 조직 내부의 연대를 제안했다. 신입 간호사의 부족한 업무 능력을 고참 간호사의 배려와 훈련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간호사는 한 팀으로 일해야 합니다. 고참이 신입의 환자 한두명을 더 돌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입에겐 큰 힘이 되지요.”

캐나다간호사노조는 1990년대부터 추진해온 ‘파마케어’ 도입을 위해 최근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파마케어는 환자가 처방받은 약값을 보장하는 공공보험이다.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에 해당하는 메디케어로는 약값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노조의 요구에 따라, 캐나다 정부 내 태스크포스가 구성되었다.

사일러스 위원장은 “의료계 종사자들과 국민들은 파마케어가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재무부 장관은 저소득층에게만 선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연대를 또다시 힘주어 말했다. “사실 재무부 장관은 보험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마케어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거죠.” 그는 인터뷰 도중 “파마케어를 논의하는 과정에 그 장관을 배제해달라는 성명서를 방금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성명서는 간호사노조만이 아니라 의사노조 그리고 캐나다노동회의(노조총연맹)가 공동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일러스 위원장은 한국 간호사에게도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캐나다 간호사 한명이 4~7명의 환자를 돌보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20명을 돌본다.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38%나 되는 간호사가 자격증은 있지만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에 비하면 한참 높은 수치다. 더구나 노조 가입률이 10%에 불과한 한국 간호사가 처한 환경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사일러스 위원장은 다른 단체와 함께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간호사 노조의 힘만으로 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면 의사, 환자 나아가 대중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간호사 노조의 활동을 사회 전체를 위한 ‘좋은 싸움’이라 표현했다. 간호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그 혜택은 환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도 간호 인력에 지출하는 비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는 의료비야말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출이라고 반박했다. 간호 인력을 늘려서 아픈 사람들을 빨리 낫게 하는 게 사회 전체의 부를 창출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닌다는 립밤·거울·볼펜 등 노조 홍보물을 건넸다. 그는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온 동력을 묻자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jy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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