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 남자들 머릿속 완벽한 공상이자 SF"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입력 2018. 3. 13. 18:57 수정 2018. 3. 1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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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존중하고 함께 만족하는 관계맺기에 서툰 남성, 여성 성적 대상화"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지금 수많은 남성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다. '여성들은 나에게 호감을 보여서 나를 착각하게 만든다. 마지못한 척 따라와 좋아서 같이 해놓고, 나중에 문제삼는다. 고발하면 누군가의 인생도 끝낼 인기와 힘을 얻게 된다.' 남자를 유혹하고, 피해호소로 '특권'을 얻으려는 '꽃뱀'들이 출몰하는 세상. 이것이 가부장제가 남성들의 머리 속에 심어놓은 완벽한 공상이고 SF다."

'미투 운동'을 대하는 다수 남성들의 빈약한 젠더의식을 꼬집는 사회운동단체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전지윤 실행위원의 글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전지윤 위원은 13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통화에서 "가부장제는 가사노동을 여성에게 떠넘기거나 여성을 억누를 때처럼 단기적으로는 개별 남성들에게 이익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득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누군가는 이것을 '2018년 3월 혁명'이라고 했다. 맞는 말일지 모른다. '미투'가 지난 한 달간 낳은 변화는 거대한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런 과격한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사과는 피해자에게 직접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히 있었던 일이다, 내가 증거이고 내가 기억한다….' 이런 진실의 목소리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또 그것은 다른 여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내가 침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힘든 일인 줄 알지만 같이 나서달라, 다른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전 위원은 "'미투'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다. 오래동안 사소한 문제로 여겨졌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이고 폭력적인 것인지 분명해졌다"며 진단을 이어갔다.

"동의 없는 성관계는 곧 강간이란 걸 깨닫는 사람도 늘어났다. 성별권력위계 속에 '동의'로도 충분치 않다는 고민까지 깊어지고 있다. 나도 내가 기억하는 '데이트'가 상대에겐 '폭력'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은지 계속 돌아보게 된다."

그는 "하지만 모든 혁명은 반혁명과 같이 간다. 반동은 진작 시작됐다"며 "노골적으로 미투를 비난하진 않는다. '미투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진정한 미투'와 그렇지 않은 미투를 구분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반동은 좌, 중도, 우를 가로지르며 나타나고 있다. 이념 초월의 좌우합작이다. 특히 '공작의 관점'을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은 너무 거슬린다. 도대체 당선 가능성도 없던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왜 막으려 했단 말인가? 미국과 한국의 남성권력자들이 미투를 막기 위해 정상회담을 잡았다면 그럴듯이라도 하지. 물론 자한당이 '이게 다 친북운동권 문화 때문이고 주사 학습한 것을 반성하라'며 '위드유' 들고 있는 건 보기 괴롭다. 하지만, 그게 진보연하는 마초들의 면죄부는 될 수 없다."

특히 "지금 수많은 남성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다. '여성들은 나에게 호감을 보여서 나를 착각하게 만든다. 마지못한 척 따라와 좋아서 같이 해놓고, 나중에 문제삼는다. 고발하면 누군가의 인생도 끝낼 인기와 힘을 얻게 된다'"고 분석하며 "남자를 유혹하고, 피해호소로 '특권'을 얻으려는 '꽃뱀'들이 출몰하는 세상. 이것이 가부장제가 남성들의 머리 속에 심어놓은 완벽한 공상이고 SF"라고 질타했다.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만족하는 관계맺기에 서툰 남성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본 채 힘겨운 감정노동들을 생략하고, 여성들은 온갖 폭력을 경험한다. 폭력은 상처로 곪아가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데는 모든 걸 거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발 이후에 여성에게 닥치는 '특권'은 의심, 비난, 악플, 괴롭힘, 트라우마, 불면증, 섭식장애, 대인공포, 공황장애다."

◇ "극소수 남성에 쏠린 부와 명예…남녀 모두에게 이득 없는 사회 구조 함께 바꿔야"

(사진='다른세상을향한연대' 전지윤 실행위원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전 위원은 이어 성폭력의 구조적인 폐해를 다룬 영화·드라마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탄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도 성폭력을 공론화한 주인공에게 처음 닥친 일은 마을에서 고립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몇몇 개인들의 탓이 아니다.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공동체 전체가 강간문화의 공범이고 집단적 가해자라고 그려낸다. 피해자가 남긴 13개의 녹음테이프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은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태도는 주인공이 매달린 한가닥 끈마저 끊어버린다."

그는 "따라서 지금 가해자로 지목된 많은 남성들은 결코 억울한 희생양들이 아니고, 단순히 도려내야 할 악마도 아니"라며 "그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거듭나야 세상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사회와 권력자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비판했다.

"미투의 파도 속에서도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질서와 성차별 구조를 지켜내려고 한다. 명백한 사안들은 꼬리 자르기를 통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려 한다. 조민기 씨의 죽음도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즉 피해여성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진정한 미투'만이 가치있다며 빗장을 걸고 있다. 이미 수많은 피해자들이 더 나서지 말라는 커다란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고발할수록 너만 손해고, 너처럼 민감한 여성은 공동체에서 추방될 거라는 경고가 울리고 있다."

전 위원은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미투 고발과 꼬리 자르기의 반복이 아닐 것"이라며 "미투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넘어서 사법적, 제도적 변화, 사회규범의 변화, 사회구조적 변혁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목소리가 무엇인지, 이미 앞서 고발에 나선 서지현, 엄지영, 김지은 씨 등이 다 말해주었다"며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당신이 부끄러워 할 것은 하나도 없어,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당신을 믿고 지지해'"라고 강조했다.

전 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은 모두 권력관계, 지배질서 안에서 연결돼 있다고 본다"며 "그러한 위계·지배·억압 구조 안에서 부와 권력을 지니지 못한 대다수 남성들 역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억압하는 데 공모함으로써 인간성을 상실하는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러한 구조는 극소수 남성들에게 부와 권력을 준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질서와 자본주의적 지배를 유지하는 힘"이라며 "하지만 대다수 남성들은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처럼, 정규직도 노동자로서 억압받고 착취받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 안에서 여성들보다 사다리의 위쪽에 있다 보니 타협하고 굴복하고 자신도 남성연대의 일부라는 허위의식을 추구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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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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