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고은 시인 문제 '동지''관행'의 이름으로 회피..반성·사죄"

김향미 기자 2018. 3. 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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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은 시인/김창길 기자

고은 시인이 상임고문을 지냈던 국내 대표 문인단체 한국작가회의가 13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작가회의는 이날 사과문 첫머리에서 “반성합니다. 그리고 변하겠습니다”고 적었다. 작가회의는 “고은 시인은 오랫동안 본회를 대표하는 문인이었기에 당사자의 해명과는 별개로 그와 관련한 문제 제기에 본회는 답변의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입장을 신속히 밝히지 못했고 그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과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실망에 어떠한 위로도, 희망도 드리지 못했다”며 “이는 ‘동지’와 ‘관행’의 이름으로 우리 안에 뿌리내린, 무감각한 회피였다. 반성한다”고 밝혔다.

앞서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됐을 때에도 작가회의가 관련 회원들을 제대로 징계 조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작가회의는 이번 사과문에서 “2016년 11월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8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와 검토를 진행했으나 징계를 집행하기 전에 회원들의 자진 탈퇴로 인해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작가회의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극작 부문 회원이었던 이윤택 연출가를 제명했다. 함께 징계에 회부될 예정이었던 고은 시인은 지난달 22일 상임고문직을 내려놓고 탈퇴했다. 작가회의는 이번 이사회를 통해 ‘성차별·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규정에 따르면 평화인권위원회 내에 ‘성폭력피해자보호대책팀’을 두고, 대책팀이 작가회의 회원 관련 성폭력 피해 신고센터(전화 02-313-1486) 역할을 맡는다. 또한 윤리위원회를 상설로 두고, 위원회가 성폭력피해자보호대책팀에서 회부된 사안에 대해 논의를 거쳐 징계 유무와 방법을 결정하기로 했다.

성폭력피해자보호대책팀은 피해자의 진술확보와 가해자로 지목된 회원에 대한 소명요청 등 공정한 조사활동을 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며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윤리위원회에서 해당 사건을 심사한다. 윤리위의 결정이 나오는 시점까지 가해자로 지목된 회원의 회원 자진 탈퇴는 금지된다.

<한국작가회의 대국민 사과문>

반성합니다.

그리고 변하겠습니다.

한국작가회의는 이른바 ‘문단 내 성폭력’ 사건과 문화계 ‘미투(me too)’ 운동에 관해 많은 질타를 받았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 계승을 선언하고 활동해 왔습니다만 젠더 문제에 관해서 그동안의 대처가 미흡하고 궁색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본회의 태도로 인해 상처입고 실망한 동료 문인과 독자, 시민들께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본회는 모든 질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조직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2월22일 본회를 탈퇴한 고은 시인은 오랫동안 본회를 대표하는 문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사자의 해명과는 별개로 그와 관련한 문제제기에 본회는 답변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장을 신속히 밝히지 못했고 그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과 시민사회구성원들의 실망에 어떠한 위로도, 희망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동지’와 ‘관행’의 이름으로 우리 안에 뿌리내린, 무감각한 회피였습니다. 반성합니다.

또한 본회는 2016년 11월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덟 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와 검토를 진행하였으나 징계를 집행하기 전에 회원들의 자진탈퇴로 인해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지난 10일 소집된 이사회에서 정관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관개정검토위원회’를 개설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아울러 윤리위원회를 신설하고, 이사회에서 통과된 ‘성차별·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성차별·성폭력 혐의가 의심되거나 인정되는 회원에 대해서는 윤리위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탈퇴를 금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위에 의한 폭력과 약자 혐오, 차별에 반대하며 인간존중의 사람살이에 작가들이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의 출발점입니다.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을 돌보고 피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징계나 처벌을 넘어서는, 더 건강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꿈꾸는 독자·시민들과의 소통 창구로 삼겠습니다.

본회는 현재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창립된 1974년 이래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거대한 인권운동의 흐름을 존중하며 다음 세대 작가들이 보다 나은 창작 환경에서 집필할 수 있게 힘쓰겠습니다. 독자들에게 이전과 다른 문학인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본회는 시민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애쓸 것임을 약속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겠습니다.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던 심정으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겠습니다.

2018년 3월13일 한국작가회의 윤리위원회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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