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르 클레지오 "여성 존중않는 민주주의는 무의미"

김규식 입력 2018.03.13. 17:15 수정 2018.03.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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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제 '빛나-서울 하늘아래' 불어판 출간 기념해 한국 방문
"평화열차타고 유럽~서울 다니길"..황석영 "미투 나도 반성하겠다"

韓·佛 문단 거장 황석영-르클레지오 교보석강 특별대담

소설가 황석영(75)과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8)는 각각 한국과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황석영은 남북을 가르는 한반도 현실에 몸을 던져 저항하고 이를 글로 옮긴 작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르 클레지오는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은 서정적인 서사로 독보적 지위를 얻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은 여성의 삶에 깊이 공감한다는 말을 쉽사리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는 여성의 인권을 말하지 않고는 세울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또한 여성을 말하지 않고 진정한 인간애를 다룰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2일 저녁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2018 교보 인문학 석강-르 클레지오·황석영 특별대담'에서다.

르 클레지오는 서울을 무대로 한 소설 '빛나-서울 하늘 아래'를 한국과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그는 프랑스어판 출간을 맞아 프랑스 언론인들과 10~13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 간담회 진행을 맡은 곽효환 시인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를 어떻게 보냐"고 묻자 르 클레지오가 먼저 대답했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남성에게 억압당하고 있고, 결정권도 없고,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마치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이 독립하지 않고 자유롭지 않으며 존중받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무의미하다."

특히 르 클레지오는 이번 작품에서 스토커 문제를 다뤘다. 늦은 저녁 신촌 골목을 걸을 때 생각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여성이라면 마음 놓고 골목을 걸을 수 있었는지. 그는 쉽사리 자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들이 내게 말했다. 스토커 얘기를 들어봤고 희생양이 되어봤다고.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무섭다고 했다. 이런 행동을 단죄해야 한다. 스토커가 더 이상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황석영은 자신이 겪은 특권을 말했다. 비록 늦은 나이에 깨달았지만 그는 반성한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내 나이 또래부터 40대까지 말하자면 같은 종류의 회한이 있을 것이다. 나는 누나가 셋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여성들 사이에서 컸다. 수년 전이었던 것 같다. 큰누나가 어렸을 때 도시락을 싸던 얘기를 했다.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면서 계란 프라이를 내 것에만 넣는 것을 봤다면서. 계란 프라이 나도 먹고 싶었다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 줬던 것이다. 아들이고 장남이니까. 여든이 넘은 누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황석영은 소설가 조남주가 '82년생 김지영'에서 고백한 일상의 성차별을 일흔 넘은 나이에 깨달았다. 그는 "독재에 항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독재자와 닮아가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나오며 역할을 바꾸려고 했다. 여성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그렇게 처음 쓴 작품이 '오래된 정원'이었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서사 또한 여성의 독백이었다. 그 뒤로 많은 작품을 여성을 주인공으로 썼다. 충분하지 않지만 노력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황석영은 미투는 언젠가 닥칠 운명이었다고 강조했다. "나는 미투를 만인이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성을 말하자면 분노, 수치감, 모욕감 이런 것들이 일상 속에서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생각한다. 운 나쁜 사람은 걸리고 운 좋은 사람은 걸리지 않고 지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보지만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더욱 심화돼서 토론이 더욱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반성하겠다."

두 소설가는 '미투' 말고도 한반도 평화, 청년의 좌절된 꿈을 말했다. 유럽에서 출발해 시베리아를 지나 한반도로 기차를 타고 들어오겠다는 꿈을 황석영이 밝히자 르 클레지오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했다. 사랑방 대화처럼 많은 주제를 두 사람은 이날 한 시간여 동안 나눴다. 여전히 한국은 문학으로 다뤄야 할 인간사가 풍부하며 수준 또한 낮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르 클레지오는 "나는 한국에서 시를 아직 활발히 쓰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는 시를 쓰지 않는다. 엄청난 일이다"고 강조했다. 황석영은 아시아 문학계에서 한국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강력히 검열한다. 루쉰 이후로 읽지 않는다. 일본은 베트남전 이후 대중문학과 경계가 무너졌다. 상업화·오락화했다. 마치 워크맨을 팔아 전 세계 도시인의 권태를 달래준 것처럼 감수성을 잘 포장하지만 활력을 잃었다. 한국 문학은 계속 벽에 부딪치면서 부수기도 돌아오기도 하며 고통 속에서 왔다"고 말했다.

[김규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