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씨 '카카오 강연' "인공지능이 못하는 '인간과의 소통'이 사람의 몫"

주영재 기자 2018. 3. 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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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소설가 김영하씨가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오피스에서 ‘AI 시대의 창의성’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카카오 제공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지금 인간의 창의성은 생존을 위한 제1조건처럼 여겨진다. 창의성의 영역에는 기계가 침범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영하씨(49)는 지난 11일 카카오 판교 오피스에서 열린 ‘카카오스쿨’ 강연에서 “창의성이 너무 강조되면서 억압처럼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며 “인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창의성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카오스쿨’은 카카오가 일상에서 유용한 정보기술(IT) 이야기를 나누자는 취지에서 개최한 행사다.

김 작가는 통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창의성의 기본이라 좋은 창의성만 골라 발휘하길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이가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채식을 하거나 씻지 않거나 마약은 하지 말고 애플 같은 회사만 만드는 창의성을 바란다”며 “진정 창의성을 원한다면 나쁜 생각, 이상한 생각, 말도 안되는 생각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상 창의성은 위험하고 불편하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서 가택연금을 당했다. 서얼 차별을 부당하다고 여기고 왕조 체제에 문제의식을 품었던 허균은 능지처참도 모자라 부관참시를 당했다. 김 작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인류는 몇 천년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며 “지금은 창의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부를 축적하고 사람들에게 유익한 걸 많이 가져다주기 때문에 굉장히 너그러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창의성은 이제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로봇이 쓴 시와 인간이 쓴 시를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가 됐다. 인간이 윤리와 관습 같은 한계에 막혔을 때 기계는 거리낌 없이 기괴하고 파격적인 글을 쓸 수 있다. 김 작가는 “창의성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기계를 이길 수 없다”며 “다만 예술가들도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창의적으로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을 쓰며 진부한 대화만 떠오를 때 기계가 생각도 못한 대안을 보여줄 수 있다. 자신이 쓴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거나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어디선가 들은 듯한 느낌이 들 때 기계에 물어보면 순식간에 표절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는 그러나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고 봤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인간보다 병에 대한 진단이 정확할 순 있지만 그 진단을 의사에게서 듣고 싶은 것이 환자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겪지 않는 존재의 공감을 인간은 믿지 않는다”며 “인공지능이 허접한 소설 몇 백개를 잠도 안 자고 만들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걸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제 생애 불가능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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