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다가오는 평화의 조짐

김태훈 기자 2018. 3. 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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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평창올림픽 계기 조정자 역할 주도
대북특사단 방북 결과 설명을 위해 방미 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정세가 급격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내외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와 동시에 ‘왜’ 이렇게 분위기가 갑자기 반전됐는지에 대한 분석과 추론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를 향해 ‘노망난 늙은이’와 ‘미치광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핵무장을 바탕으로 한 적대적 대결구도를 천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두 달 전의 ‘강 대 강’ 대결구도 바꿔 하지만 예측불가능한 캐릭터의 북·미 두 지도자 모두 서로를 향한 ‘강 대 강’ 선전 이면에 대결구도를 탈피할 출구전략에 관한 고심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가장 최근 대북제재에서는 지난해 9월 북한으로의 유류 공급을 차단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결의안이 채택된 바 있다. 미 트럼프 정부도 지난 2월 그간 대북제재의 구멍으로 지목된 ‘공해상 선박 간 환적’ 차단에 초점을 맞춘 ‘사상 최대 규모’의 새 대북제재안을 발표했다. 북한은 정권 차원에서 대북제재에 굴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해 왔지만 중국과의 무역량 감소까지 겹친 상황에서 다른 출구를 찾을 필요도 커져 왔던 셈이다.

미국의 입장 역시 대북제재만으로는 반복돼온 제재의 실효성 논란을 넘어서기 힘든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2월 제재안에서 제재대상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결정적 역할을 할 중국의 은행과 에너지기업을 통한 제재가 빠졌고, 해상 차단조치도 일단 배제된 것이다. 더 악화될 상황을 대비해 최후의 제재 카드를 남겨뒀다는 시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국 내 권력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중국 시진핑 주석 체제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존재했다.

이 상황에서 특히 북한은 대화라는 또 다른 통로를 열어 정세를 전환할 가능성을 찾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 창구를 넓혀가면서 ‘조정자’ 역할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와의 접점을 넓히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이번 대북특사단 방문은 새로운 대화국면을 여는 가장 주요한 매개가 된 셈이다. 그 결과 ‘비핵화’와 ‘핵실험 및 군사행동 중단(모라토리엄)’, 그리고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모두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는 대북특사단의 성과가 드러났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강하게 요구했을 것으로 보고,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은 우리가 얻어낸 성과라고 볼 수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상당히 강하게 밝혔고 북·미대화에 비핵화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대화를 막는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라고 봤다.

북한이 남한은 물론 미국과 대화할 용의를 가지고 전략적인 대응을 했다고 해도 이번 대북특사단이 가져온 결과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대북특사단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끌어냈지만 향후 역할을 다하는 결과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가운데서 남한의 위상을 더욱 극대화할 가능성도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가 급격하게 경색된 시점을 따져 올라가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시절인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까지 이르게 된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는 남북관계 경색 과정에서 북한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대남특사를 보냈으나 관계회복에 기여한 역할은 미미했다. 미국에서도 2009년 억류된 자국 언론인 석방을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보냈지만 억류된 언론인을 송환하는 이상의 대화가 진전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약 10년간 단절돼 있던 소통의 창구를 먼저 여는 것은 남한의 몫으로 돌아왔다.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 있어서도 남한이 북·미 양국 간에 남아있는 공백을 메우는 중재자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점이 된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핵화를 두고 북한과 미국은 대화가 안 되고 있던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으로 돌파구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미국이 대화의 전제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도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던 것이므로 대북특사단이 북한의 뜻을 확인함으로써 북·미 간 대화에서도 남한의 역할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북·미 정상 모두 국면전환 의지 확인 물론 북한이 본격적으로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확인했고 미국도 이에 응하기는 했지만 남한 정부로서는 남은 과제를 신중하게 풀어가야 할 상황에 놓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북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밝힌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표현은 과거 미국의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3년에도 대화 가능성을 제안하며 담화에서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이 핵동결 등의 방식으로 비핵화 원칙에 합의한 전례는 있지만 합의를 여러 차례 파기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이른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1994년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에 이어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쟁 위기가 극도로 고조됐으나 미국과 북한은 핵시설 동결과 대북 경수로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이어가 2002년 핵개발을 공식 인정했다. 가장 최근에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직후인 2012년 2월 북·미회담에서 ‘2·29 합의’를 이뤄냈지만 북한은 지난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는 등 비핵화 합의와는 상반된 행보를 보여 왔다.

때문에 이번 북한의 비핵화 입장 표명이 수정 없이 이행될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비핵화를 포함해 군사행동 억지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디딤돌을 신중하게 놓아간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향한 소기의 성과는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안보분야를 전문으로 한 여당의 한 의원은 “사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놓아버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주 장기간에 걸쳐서, 그리고 남북을 넘어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움직임까지 변수에 넣고 추진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이번 특사단의 결과는 그 첫걸음에 불과하다”면서도 “북한이 기존의 중국 의존 일변도를 넘어 남한과 미국 관계에 주력하겠다는 신호가 일관되게 보이므로 적어도 지난 10년간의 대치상태는 손쉽게 극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최소한 대화의 테이블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인 데다, 주변 6개국이 참가하는 6자회담이 재개되는 등 논의의 범위까지 넓어지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의 지속기간도 상당히 길어질 수 있다. 여기에 남북정상회담이 4월, 사상 처음인 북·미 정상회담이 5월로 가까운 시일 안에 열릴 정도로 대화 기조가 급물살을 탄 것을 보면 두 정상회담의 결과도 일정 수준 이상이리라는 기대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현재 해줄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서서 파격으로 볼 수준의 메시지를 공개한 것”이라며 “핵심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으로, 국면전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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