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만에 돌아온 으라차차 청춘 시트콤

박경은 기자 2018. 3. 1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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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서울 부암동에서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를 운영하는 청년들의 좌충우돌 삶을 그리고 있다. 엄혹한 현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이다.
멸종위기에 처해 있던 ‘청춘 시트콤’이 극적으로 부활했다. JTBC에서 방송 중인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그 주인공이다. 소셜미디어나 시청자 게시판에는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는 시청평이 대다수다. 쉼 없는 웃음폭탄을 안기는 이 작품이 20~30대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으면서 제작진은 최근 이 방송을 4회 연장키로 결정했다.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포스터

그동안 시트콤은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전설적인 작품들을 남겨 왔다. <순풍 산부인과> <논스톱> <똑바로 살아라> <하이킥> 등의 기념비적인 시리즈가 있었지만 장르적 특성상 언제나 비주류였고, 그마저도 최근 몇 년간은 꼽을 만한 대표작도 찾기 힘들다. 정통 멜로나 로맨스 코미디가 변함없이 건재하고 그 사이를 다변화된 장르물이 채우는 동안 청춘들의 성장을 그린 청춘물 역시 TV에서 발붙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시트콤과 청춘이 결합된 ‘청춘 시트콤’은 사실상 2000년대 초반 방송됐던, 대학 동아리 멤버들의 성장담을 그린 <논스톱> 이후 명맥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3년 방영됐던 <논스톱>의 마지막 시리즈는 내레이션을 통해 유명한 유행어를 남겼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이때~”. 마치 암울한 청춘의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이 작품 이후 청춘 시트콤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15년. 청년실업 40만이 아니라 100만명을 훌쩍 넘어선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청춘 시트콤이 다시 등장했다.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스틸컷

꿈꾸는 희망하고는 거리 먼 현실 <으라차차 와이키키>는 서울 부암동에서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를 운영하는 청년들의 좌충우돌 삶을 그리고 있다. 배경과 시점,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보면 여느 트렌디 드라마의 잘 나가는 주인공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엄혹한 현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이다. 저마다 영화감독, 배우, 작가를 꿈꾸지만 실상은 돌잔치 비디오 촬영·편집, 신약 부작용 테스트나 단역 아르바이트, 초등학생 반장선거 연설문 작성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짠내 나는’ 청춘의 이야기가 그간 드라마를 비롯해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이 시점에 청춘 시트콤이었을까.

이 작품의 대본을 지휘하는 김기호 작가는 ‘논스톱’ 시리즈로 청춘 시트콤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이다. 그가 오랜만에 청춘 시트콤을 들고 나온 것은 “안그래도 현실에서 고통받고 있는 청춘들을 ‘짠내 나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면서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청춘의 에너지와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이라도 시름을 잊고 마음놓고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가 이 작품을 기획한 것은 지난해 초였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효가 다한 장르’라는 제작사의 편견을 깬 것은 순도 높은 웃음 포인트가 가득한 대본의 힘이었다. 김 작가는 “연출을 맡은 이창민 감독이 대본을 보고 관심을 가지면서 제작이 본격화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질 만큼 대본의 힘이 강력했다”고 말했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조를 갖춘 이야기와 정통 시트콤이라는 형식의 만남은 강력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새로울 것 없고 지겨울 수도 있는 현실 이야기를 포복절도할 웃음 속에 녹여낸 제작진의 솜씨 덕분에 우울한 청춘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웃기는 상황이 시시각각 터져나오지만 단순한 에피소드로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 한편에 떨쳐낼 수 없는 무언가를 눅진하게 남긴다. 취업난, 갑을관계, 성폭력 등 이 시대 청년들이 접할 법한 다양한 문제들을 가벼운 듯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방식은 무례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않다.

방송 초반에 등장했던 마트 장면은 이 같은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 남자 주인공들이 마트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분유를 집어들려 하자 다른 중년여성이 이를 집어든다. 분유 한 통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주인공을 향해 마트 점원이 “젊은 사람이 포기하라”고 하자 이들은 동시에 버럭 소리친다. “왜 우리가 포기해야 되는데요. 우리도 열심히 했어요. 근데 안되는 걸 어떡해요. 죽을 만큼 열심히 노력했는데 세상이 안 도와 주는 걸 어쩌라고요!”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스틸컷

알 만한 배우는 한 명도 없어 눈물 나도록 웃기지만 웃다가 뜨끔해지면서 다시 돌려보게 되는 이 같은 장면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탄탄한 대본과 연출력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한 기반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에는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 배우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 경력이 오래지 않은 신인급 연기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나마 대중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배우는 <학교> 시리즈에 나왔던 이이경, <청춘시대>에 출연했던 손승원 정도다. 김정현, 고원희, 정인선 등 주요 출연자들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연기력으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월화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방송하는 드라마임에도 신인급 연기자들을 내세워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물론 남녀 주인공이 각각 3명씩 등장하는 구조의 드라마는 분량이나 주목도 때문에 스타 캐스팅이 어렵기는 하다. 이창민 감독과 김기호 작가는 “배우의 이름값에 기대는 캐스팅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대본을 완벽히 소화해서 제대로 된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 성패의 관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20대 연기자들을 거의 만나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디션에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실제로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배우 중에서도 오디션을 봤지만 우리가 원하는 톤의 코미디 연기를 표현해내지 못해 포기한 사례도 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초 의도했던대로 우리 드라마가 웃음을 줄 수 있어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동안 정말 웃을 일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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