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2)교통사고 당해도 입원 거부.."엄마들은 아플 자격도 없어요"

홍진수 기자 2018. 3.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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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중증질환 어린이 엄마들의 ‘빼앗긴 잠’

2시간여 대화를 나누는 사이 허아현씨(38·가명)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3~4분에 한 번씩은 자리에 누워 있는 한 살배기 본재의 목에서 가래와 침을 뽑아내야 했다. 허씨의 분주한 손길이 없으면 본재는 생을 이어갈 수 없다.

지난 2월1일 인천의 집에서 만난 허씨의 표정은 걱정했던 것만큼 어둡지는 않았다. 허씨는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지만, 몇 달이 지나니 좀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본재는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의료기기들에 둘러싸인 채 거실에 누워 있었다. 가래와 침을 뽑아내는 ‘석션기’는 허씨의 손 닿는 곳에 있었고, 본재의 발에서 나온 선은 석션기 옆에 있는 산소포화도·심장박동 측정기에 연결돼 있었다. 본재의 몸속에서 산소포화도가 98% 아래로 떨어지거나, 심장박동 수가 88회 이하로 내려가면 기계는 날카로운 경고음을 낸다. 경고음이 나면 바로 석션을 한 뒤 본재의 가슴을 두드려줘야 한다. 허씨는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친정어머니가 짬을 내 오는 며칠을 제외하면 허씨는 한 달 내내 잠 한숨 제대로 잘 수가 없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잘 갖춰져 있다고 하지만 병원 밖에서 아이를 돌보는 중증질환아 부모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퇴원을 한 이후로는 허씨처럼 엄마나 아빠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문턱은 많이 낮아졌어도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하고, 고통받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있다.

허씨는 지난해 3월30일 경기도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본재를 낳았다. 임신 29주 만이었다. 28주째 배가 아프고 자궁수축이 일어나 입원했다. 병원에서 수축 이완제를 맞으며 버텼는데, 자궁이 파열됐다. 제왕절개수술을 하기 전 본재는 자궁 밖으로 밀려나왔고, 2~3분간 심장이 멈췄다. 본재는 심폐소생술을 받아 다시 숨은 쉬게 됐다. 그러나 그사이 뇌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4시간 곁에서 지켜봐야…“엄마들은 아플 자격도 없어요”

지난 2월1일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을 앓고 있는 생후 10개월 된 본재의 어머니 허아현씨(가명)가 본재 곁을 지키고 있다. 방 한쪽에는 본재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기기와 각종 약이 놓여 있다. 권도현 기자

본재는 태어난 병원에서 차도가 없자 지난해 6월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자가호흡을 하지 못해 기도에 삽관을 한 상태였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 사진을 찍어보니 좌뇌와 우뇌 모두에 시커먼 구멍이 보였다. 본재는 태어난 지 5개월이 다 된 지난해 8월에야 집에 올 수 있었다.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도록 퇴원 전 기관절개 수술을 받았다. 목에 구멍을 뚫고 동그란 관을 꽂았다. 코와 입이 아니라 목에 난 구멍으로 숨을 쉰다.

■ 생후 11개월 본재…책임을 떠안은 엄마

본재의 퇴원을 앞두고 허씨는 서울대병원에서 2주가량 교육을 받았다. 본재의 목에서 가래와 침을 뽑아내는 방법은 물론 목에 꽂혀 있는 ‘기관공’을 소독하는 법, 기관절개관을 교환하는 법 등을 배웠다. 서울대병원 김민선 교수(소아청소년과)는 “본재 같은 중증환아가 집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엄마를 ‘반간호사’로 만들어서 내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퇴원한 본재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엄마인 허씨의 몫이었다. 우선 의료기기부터 마련했다. 산소포화도와 심장박동을 수시로 측정해 경고음을 울리는 기계의 가격은 170만원이었다. 너무 비싸 한 달에 15만원씩 주고 대여하기로 했다. 석션기는 모두 구입했다. 집에서 사용하는 석션기는 30만원으로 그나마 저렴했지만 본재가 병원에 가거나 외출할 때 갖고 나가야 하는 휴대용 석션기는 100만원이나 했다. 본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기지만 건강보험 등은 적용되지 않았다. 본재의 몸에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쓰는 산소발생기에는 다행히 건강보험이 지원됐다. 한 달에 내는 12만원 중 10만8000원은 건강보험이 부담해줬다.

본재를 데려온 첫 달에만 의료기기 가격으로 200만원가량을 썼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소모품비로 다달이 최소 50만원이 필요했다. 석션기에 연결해 가래와 침을 빼는 카테터(가느다란 튜브형 관)는 100개들이 한 상자에 8만원이다. 처음 병원에서는 카테터를 2번만 쓰고 버리라고 했다.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카테터를 쓰지 않을 때 잠시 담가두기 위해 20㎖짜리 ‘꼬마 식염수’도 200개를 샀다. 50개들이 4상자에 6만원이었다.

병원에서 가르쳐준 대로 하다가는 소모품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 소모품 비용 때문에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에 쉽게 요령을 배울 수 있었다. 식염수는 저렴한 1ℓ짜리를 구입해 여러번 사용했고, 카테터도 쓸 수 있는 만큼 계속 썼다. 여기에 기관절개한 곳의 뚜껑 역할을 하는 휴미디밴트가 하루에 한 개씩 필요했다. 본재가 분유와 물, 약을 먹는 주사기도 다양한 크기로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아끼고 아낀 비용이 한 달 50만원이다.

소모품 말고도 목돈을 써야 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본재가 병원에 갈 때다. 본재는 퇴원 후에도 한 달에 최소 3번은 서울대병원으로 가야 한다. 뇌초음파로 상태를 확인하고 먹을 약 처방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본재처럼 기관절개를 한 아이들은 동네병원에서 진료하기 어려워해 예방접종도 서울대병원에 가서 한다. 처음에는 본재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사설 앰뷸런스를 불렀다. 인천 집에서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비용은 13만원 정도다. 한 번 왕복하는 데 교통비 25만원 이상이 든다. 사설 앰뷸런스는 처음 2번 정도 이용하고 그만뒀다.

그 후 사업을 하는 본재 아빠가 잠시 들러 직접 운전을 했다. 돈은 적게 들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본재와 외출하는 것이 조금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대리운전 기사를 부른다. 25만원까지 들던 병원 왕복 교통비는 ‘요령’이 생긴 뒤로는 8만원으로 줄었다. 그래도 한 달에 3~4번만 병원을 가면 30만원이다. 병원뿐만 아니라 외출 자체가 어렵다. 허씨 혼자 본재를 유모차에 태워 나가면 화장실도 가기 어렵다. 그러나 본재가 돌이 지나 장애인 등급을 받기 전에는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부모의 책임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허씨다. 허씨는 본재가 집으로 온 지난해 8월 이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본재는 잠이 든 뒤에도 수시로 침과 가래를 빼줘야 한다. 옆에서 자다가 아이 숨소리가 달라지면 석션을 한다. 조금 깊은 잠이 들었다 싶으면 산소포화도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본재 아빠는 주말도 없이 일한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더 바빠졌다. 본재의 치료와 재활에 필요한 돈을 부지런히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하는 딸을 위해 한 달에 며칠은 서울에 사는 친정어머니가 허씨의 집에 와서 자고 간다. 그때는 어머니에게 잠시나마 본재를 맡길 수 있다. 그래봤자 잠을 조금 더 편하게 자고 화장실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정도다.

허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자신이 아플 때다. 허씨는 “내게 몸살이 오거나 병이 생기면 그게 제일 위기”라며 “내가 아플 때 본재를 봐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휴가나 휴식은커녕 몸이 아픈 것까지 미리 걱정해야 하는 것이 중증환아 엄마·아빠들의 처지다.

그나마 본재 엄마의 상황은 좋은 편에 속한다. 본재를 낳기 전 태아보험을 들어놓은 덕분에 병원비는 감당할 수 있었다. 본재가 태어난 뒤 두 달 동안 입원한 병원에서는 본인부담금만 1500만원이 넘게 나왔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뒤에는 건강보험 산정특례 적용을 받아 두 달 동안 350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다행히 태아보험과 정부의 미숙아 지원금으로 병원비는 다 치를 수 있었다. 허씨는 “같은 처지의 엄마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태어나서 쭉 서울대병원에 있던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자취를 감춘 경우도 있다고 한다”며 “우리는 태아보험이 있어 감당했는데, 1년 가까이 입원하고 그러면 나가서도 생활이 안된다”고 말했다.

본재는 생후 4개월여를 병원에서 보냈다. 그러고도 목에 구멍을 뚫는 기관절개 수술을 받은 뒤에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허씨가 그냥 데려가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담당 의사는 “그대로 나가면 3~4일도 못 버틴다”고 했다. 일주일간 밤낮없이 고민한 끝에 수술을 받고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를 요양병원에 보내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막상 보내려 해도 아이들을 위한 요양병원은 별로 없어 1년 넘게 대기해야 한다.

허씨는 “본재 같은 아이와 저 같은 엄마들이 언론에 나오면 꼭 후원받는 계좌번호가 함께 뜨던데, 왜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고 사람들의 후원에 기대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아픈 아이들은 계속 나올 텐데, 본재와 우리는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정부가 책임지는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6살 태경이…장애인 돌봄서비스도 ‘그림의 떡’

충남 아산에 사는 강혜연씨(45)는 요즘 청와대 청원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중증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한 가지 질환·장애만 있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건강보험 산정특례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강씨의 아들 태경이(6)는 뇌병변과 함께 용혈성요독증후군이란 병도 앓고 있다. 췌장과 신장이 모두 고장났고, 눈도 안 보이며, 입으로 먹지도 못한다. 그러나 용혈성요독증후군만 지난해부터 산정특례가 적용됐을 뿐 다른 질환은 산정특례에서 빠져 있다.

거의 움직이는 종합병원 수준인 태경이는 한 번 입원하면 기본이 3주다. 지난해에는 8개월간 서울대병원에 있었고, 올해 1월에도 입원했다 퇴원했다. 강씨는 중증질환 아이들의 산정특례 범위를 넓혀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할 생각이다.

본재의 발에는 호흡 및 혈액 순환 상태를 측정하는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연결돼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태경이는 2012년 1월 의료사고로 장애가 생겼다. 태어날 때 병원 측 과실로 두개골이 골절되면서 뇌손상을 입었다. 38주 동안 엄마 배 속에서 잘 자랐지만 나오면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강씨는 “천안에 있는 한 산부인과인데, 태경이 이후에도 2명이 더 사고를 당했다”며 “당시 언론에도 보도가 됐다”고 말했다.

▶의료비용 건보 제외 많아…산정특례 확대·돌봄서비스 절실

태경이는 6개월간 한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머물렀다.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장애가 늘어났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뒤에는 안정이 됐다. 그러나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눈도 보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가호흡은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먹지는 못한다. 위에 구멍을 뚫어 음식물을 넣어주고 있다.

수시로 입원을 해야 하는 태경이는 해마다 병원비로만 1000만원가량을 썼다. 그나마 지난해 태경이가 앓고 있는 질환 일부가 산정특례에 포함되면서 600만원으로 줄었다. 강씨 집에도 산소포화도 측정기, 석션기 등이 완비돼 있다. 강씨는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기본적인 장비”라고 말했다.

태경이 역시 수시로 서울대병원을 오간다. 집이 아산이라 병원에 갈 때 온갖 방법을 다 써봤다. 외래진료를 받을 때는 강씨가 직접 운전을 해 기차역으로 간다. 그다음 KTX로 갈아탄다. 집에서 기차역까지 가기 위해 소형자동차를 구입한 뒤 개조했다. 휠체어와 석션기 등을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3년간은 서울역에 도착한 뒤에는 휠체어를 밀어가며 지하철을 갈아탔다. 요즘은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다닌다. 기본 3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 오지만, 서울역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아가는 것보다 낫다. 강씨는 “한국에는 아픈 아이들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장치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강씨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무작정 서울대병원으로 향한다.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에도 가봤지만 태경이 진료자료가 없어 검사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산에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까지는 2시간 이상 걸린다. 강씨는 “심각한 상황이면 아이 아빠를 부를 수밖에 없다”며 “회사에서 3번 연속 승진이 누락됐는데,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의 남편은 2009년 이후 8년간 직장에서 하는 건강검진도 받지 못했다.

의료비 외에 태경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한 달에 70만~80만원가량이다. 태경이는 쌀 알레르기가 있어 특수분유를 먹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매일유업만 생산한다. 여기에 석션을 위한 카테터, 식염수, 위생장갑, 위에 연결된 위루관을 교체할 때 쓰는 패드와 튜브 등이 필요하다. 모두 건강보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강씨 역시 태경이를 홀로 돌보고 있다. 태경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한숨도 못 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맡길 수는 없다. 남편이 쉬는 날에는 외출이라도 하지만 나머지 시간 동안 태경이를 돌보는 것은 오롯이 강씨의 몫이다. 태경이는 뇌병변과 시각장애로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어 ‘장애인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부터 여의치 않다. 강씨는 “도우미가 오시면 석션 등을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 무서워하고 그러니 저도 불안해서 못 맡긴다”며 “몇 번 맡겨봤지만 수시로 전화가 오고, 아이가 강직이 있다보니 목욕시키는 것도 두려워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이를 홀로 돌볼 테니 이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강씨는 “장애인 돌봄서비스나 활동보조인으로 엄마가 일을 한 뒤 그 비용을 받는 방식도 있다”며 “서울대병원에 있는 엄마들 모임이라도 만들어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 10살 준영이…교통사고 당해도 입원 못하는 엄마

지난 2월7일 고경애씨(45)는 큰딸의 중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도저히 갈 수 없는 자리였지만 딸아이가 너무 서운해해서 딱 3시간을 냈다. 대신 남편이 회사일을 멈추고 집으로 왔다. 고씨의 막내아들 준영이(10)는 뇌병변으로 전혀 움직이지 못해 반드시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준영이는 2008년 6월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폐렴을 앓았고, 병원 입원 중에 패혈증까지 생겼다. 혈액으로 침투한 세균은 뇌로도 옮아갔다. 고씨는 “뇌부종이 생겨 ‘대천문(신생아 머리에 있는 숨구멍)’이 올라올 정도로 부었었다”며 “부종이 가라앉으면서 뇌손상이 일어났고, 심박동과 숨 쉬는 것 외에는 대부분 기능을 잃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2년간 재활병원을 전전했다. 아직 어리니 재활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2년 동안 준영이는 아무런 호전이 없었다. 지금은 집에서 지내며 서울대병원으로 통원치료만 다닌다.

준영이는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병원에 간다. 각종 약을 처방받아야 하고, 위와 연결된 위루관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루관 교체에는 20만원가량이 든다. 그렇다고 병원을 딱 이때만 가는 것은 아니다. 준영이는 독감에만 걸려도 몸 상태가 나빠진다.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힘들어 웬만하면 집에서 견뎌보려 하지만, 상태가 악화되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올해에만 응급실을 찾은 것이 벌써 3번이다. 입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고씨는 “응급실 한 번 가면 20만원, 입원 한번 하면 기본 100만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사는 덕분에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할 때 드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고씨의 집이 있는 은평구에서 서울대병원까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면 1만원가량이 나온다. 다만 장애인콜택시는 그리 많지 않은 탓에 기다리는 것이 일이다. 고씨는 “3시간까지 기다려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씨는 서울대병원 내에서 가장 한적한 장소를 알고 있다.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면서 석션도 해주고 준영이 기저귀도 갈아줘야 한다.

고씨 역시 준영이에게 들어가는 소모품비가 가장 큰 부담이라고 했다. 준영이는 대소변을 못 가리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장애아동을 위한 기저귀를 팔지 않는다. 대신 ‘오줌싸개’ 어린이들을 위한 팬티형 기저귀가 있다. 준영이에게 꼭 맞는다. 문제는 가격이다. 20개들이 한 팩을 사려면 2만원가량을 줘야 한다. 영·유아들이 쓰는 팬티형 기저귀와 비교하면 3배 정도 비싸다. 그래서 집에 누워있을 때는 그보다 싼 성인용 기저귀를 채워준다. 외출할 때만 바지를 입히기 위해 비싼 기저귀를 쓴다. 준영이의 현재 몸무게는 26㎏이다.

고씨는 준영이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 이런 생활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밖에서 볼일이 생기더라도 남편이 잠깐 쉬는 일요일이나 월요일 오후에 몰아서 외출을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안방 환자침대에 누워 있는 준영이 곁에서 24시간 붙어있어야 한다. 몸이 아프면 그냥 약만 먹고 버틴다.

고씨는 “우리는 아플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과장이 아니다. 6년 전쯤 고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길에서 자동차에 받혔다.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준영이를 두고 병원에 입원할 수는 없었다. 고씨는 입원을 권유하는 의사 앞에서 울며 버텼다. 결국 통원 치료만 몇 번 받고는 말았다.

고씨는 얼마 전 A형 독감에도 걸렸다. 역시나 약만 먹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준영이에게 A형 독감이 옮아버렸다. 24시간 붙어있으니 피할 수가 없었다. 모자가 함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고씨는 “마스크를 쓰고 타미플루를 먹으며 함께 있었다”면서 “그러다보니 곧 내가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서 극한 ‘직업’이 아픈 아이의 엄마”라며 “참아야지, 어쩌겠냐”고 했다.

고씨는 가장 절실한 것으로 ‘돌봄 서비스’를 꼽았다. 몇 시간이라도 준영이를 믿고 맡겨 둘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준영이도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어 ‘활동보조인’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활동보조인 제도는 혼자 거동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만 유용할 뿐, 준영이처럼 지속적으로 석션 등을 해주고 돌봐야 하는 중증환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씨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 드는 자기부담금도 비싼 편이고, 무엇보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맡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병원 문 나서는 순간 대책이 없다”
일본 중증 소아환자 임시위탁시설인 ‘단풍의집’ 1인실 내부. 어린이를 위한 침대, 소파 침대, 샤워실,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비용은 3000엔이다. 출처 단풍의집 홈페이지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병원 문턱은 그리 높지 않다. 병원까지 오는 일이 힘겹지만 일단 오기만 하면 의료서비스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병원 밖으로 나간 다음이다. 서울대병원 김민선 교수(소아청소년과)는 “병원을 나가는 순간,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병원 밖에서 서비스를 받으려면 장애 진단이 나와야 하는데, 이는 생후 12개월이 넘어야 가능하다. 또 6개월 이상 장애가 고착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생후 11개월밖에 되지 않은 본재는 해당되지 않는다. 장애 진단을 받는다고 해도 또 제한이 있다. 활동보조는 ‘너무 어리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6세가 넘은 뒤에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장애아동돌봄서비스는 소득기준이 있고 발달장애인 위주로 만든 것이라 의료서비스가 포함되지 않는다. 태경이나 준영이처럼 의료적 의존도가 높은 아이들은 서비스를 거부당할 수 있다. 아픈 아이들이 정부로부터 아무런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 그중에서도 특히 엄마에게 이어진다. 아픈 아이 외에 다른 아이도 양육해야 하는 부모라면 그 부담은 더욱더 커진다. 김 교수는 “엄마들이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아픈 아이를 잠시 두고 뛰어내려왔다가 사고가 나기도 하고,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비상신호 소리를 못 들어 사고가 나기도 한다”며 “아이와 부모 모두 살기 위해서는 단기 휴식 서비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롤모델은 일본에 있다. 일본 국립성육의료센터(National center for child health and development)는 2016년 4월 의료형 장애복지기관인 ‘단풍의집’을 설립했다. 단풍의집은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아이들을 잠시 동안 보호해주는 곳이다. 0~18세 소아청소년이 대상이며,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한다. 이용 횟수는 1년에 3회, 총 20일(1회 이용 시 최대 10일)로 제한된다. 이용 금액의 10%만 가족이 부담한다. 인건비는 정부가 지원하고 운영비의 40%는 민간 보조금으로 충당한다. 인근에 국립병원이 있어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이송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서울대병원 근처에서 시범사업을 해볼 만하다”며 “이런 기관을 아직 만들 수 없다면 최소한 활동보조서비스를 0세까지 확대하고,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가산수당을 주는 것이라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계획하고 있는 ‘중증 소아환자 재택의료’도 병원 밖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복지부는 우선 중증 소아환자에 대한 의료인 왕진과 방문교육에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하고,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병원 내 콜센터 설치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도 왕진 제도는 있지만 왕진에 들어가는 시간과 교통비를 인정하는 별도의 수가가 없고 일반적인 진찰료만 받을 수 있어 활성화돼 있지 않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중증 소아환자가 병원에서 가정으로 퇴원할 때 방문교육 등으로 적응을 돕는 단기퇴원지원서비스와 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상담 및 교육을 제공하는 중증환자관리서비스, 방문간호와 방문진료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특별취재팀

박효순·홍진수·노정연·이유진 기자공동기획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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