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이 동대사 '보물창고'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강구열 2018. 3. 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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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시대 미술품 등 9000여점 소장 / 적칠관목주자 등 백제 관련 유물 많아 / 한국 고대사 보다 정밀하게 밝힐 단서 / 日 왕실 업무 담당하는 궁내청서 관리 / 자국의 학자들에게도 '불가침의 영역' / "한·일 유물 공동연구·교차 전시 절실"

“정창원(正倉院) 유물은 우리가 백제를 알기 위해 필수적이다. 일본의 것만이 아니라 아시아, 세계의 유산으로 같이 연구되었으면 한다.”(신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정창원의 운영이 굉장히 폐쇄적인 게 사실이다. 유물 중에는 알려진 것보다 백제의 것이 더 많다. 공동연구가 잘 이뤄지길 바란다.”(나이토 사카에 나라국립박물관 학예부장)

일본 나라현에 있는 동대사의 정창원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다.
지난 7일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 국립문화재연구소 주최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 국제심포지엄 말미에 한·일 학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의 일부다. 정창원은 일본 동대사(東大寺)의 ‘보물창고’로 나라시대(8세기 나라를 수도로 했던 고대 일본의 한 시기)부터 소장하기 시작한 9000여 건의 미술품과 문서 등으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 고대사를 보다 정밀하게 밝힐 단서가 되는 백제, 통일신라에서 유래한 유물이 많아 우리의 관심이 크다.

이날 심포지엄은 일본 학자에게서 정창원의 유물이 증언하는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긴밀한 관계를 직접 듣는 드문 기회였고, 정창원 유물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고, 정밀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 작업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자리였다.

◆“의자왕이 내대신 후지와라 가마타리에게 하사한다”

일본 학계에서는 정창원의 유물이 “중국이나 실크로드로부터 직접 전래한 것으로 한반도와의 관련을 간과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나이토 학예부장의 발표는 일본인 학자가 백제, 통일신라에서 건너간 유물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동대사에 헌납된 쇼무천황 관련 물건의 목록인 국가진보장에는 ‘적칠관목주자’가 “의자왕이 내대신에게 하사한 것”이라는 설명이 담겨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적칠관목주자와 비슷한 형태인 ‘적칠문관목주자’.
그는 느티나무로 만든 가구인 ‘적칠문관목주자’에 먼저 주목했다. 고묘황후는 756년 5월 세상을 뜬 쇼무천황이 생전에 갖고 있던 600여 개의 물건을 동대사에 헌납했는데, 그 목록이 ‘국가진보장’이라는 문서로 남아 있다. 이 문서는 ‘적칠관목주자’에 대해 “백제 의자왕이 내대신(후지와라 가마타리)에게 하사한다”고 유래를 밝혔다. 적칠관목주자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비슷한 형태인 적칠문관목주자가 있어 그것의 형태를 짐작하는 게 가능하다. 나이토 학예부장은 “적칠문관목주자의 금속장식은 충남 부여 하황리 무덤에서 출토된 은자루 유리공의 금속장식 등 백제의 문양과 많이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의 격동기인 7세기를 빠져 나와 현재까지 전하는 ‘기적의 유리그릇’이라고 규정한 유리잔은 유리 부분이 페르시아에서 제작되었고, 다리는 “문양이 2008년에 발견된 미륵사지 서석탑의 금동사리기와 매우 흡사해” 백제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창원 유물의 대표 격으로 꼽히기도 하는 바둑판 ‘목화자단기국’은 “한반도에서 종종 소나무를 재료로 한 공예품을 볼 수 있다는 점, 바둑판의 화점 숫자가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17개라는 점” 등을 근거로 신라 관련 유물로 소개했다.

히가사 이쓰토 나라국립박물관 학예부 연구원은 정창원 소장의 ‘화엄경론질’이 “일본 화엄종의 총본산인 동대사의 사상적인 뿌리를 말해주는 유물”이라며 “신라에서 온 박재품(배로 운반된 물품)이며 많은 신라사경을 일본에 전파한 승려 심상의 소지품이었을 가능성”을 점검했다. 

유리잔과 바둑판인 ‘목화자단기국’은 백제와 신라에서 유래한 유물로 추정된다.
◆일본인 학자조차 접근이 어려운 정창원

정창원의 유물 중 당나라, 신라, 페르시아, 인도 등에서 건너온 것은 450여건으로 전체의 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핵심 유물인 쇼무천황 관련 유물들은 외국산의 비중이 높다. 외국 학자들, 특히 고대사 관련 자료가 많이 부족한 한국 연구자들의 관심이 크게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정창원 유물에 대한 접근은 극도로 제한된다. 정창원이 고대로부터 이어진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에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의 관리 하에 여전히 ‘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어 외국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학자들조차도 직접 보고 연구할 기회가 많지 않다. 유물이 공개되는 것은 1년에 딱 한 번이다.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정창원 전시는 1946년부터 지난해까지 69번 개최됐다. 궁내청 소속의 학자나 나라국립박물관 담당자들이 전시를 위해 유물의 상태를 체크하고, 꺼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살펴보는 게 다라는 얘기다. 워낙 접근이 어렵다보니 “대학에서 정창원 유물을 대상으로 졸업논문을 쓰려고 하면 말릴 정도”이다.

동국대 최응천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한국 연구자들의) 개별적 접촉이나 간헐적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공식적인 조사와 성과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창원 유물 연구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 차원의 지원 및 창구의 일원화 △유물의 목록화 작업 및 데이터베이스화 △일본과 공동연구의 적극적인 시행 및 정창원 관련 연구자 초청 △국내 보물급 유물의 교류 전시 추진 △관련 서적의 출판과 지원을 통한 연구 저변의 확대를 제시했다. 나이토 학예부장은 “(지금과 같은 운영으로는) 관련 연구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국 학자 등과 같이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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