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발라드 전설 변진섭..세대 공감 아이콘으로 날갯짓

2018. 3. 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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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한국 가수 최초 음반 100만장 판매
광고 제안도 거절했던 변진섭
한동안 방송에서 보기 힘들어
"공연과 음악으로만 관객 만나려 해"
엄마 딸이 함께 보는 공연 만석
곧 13번째 음반 나올 예정

[한겨레]

3월 말 13번째 음반이 나오는 가수 변진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변진섭(52)은 ‘발라드의 황태자’로 불리며, 1980년대 후반 전성기를 누렸다. 그가 발표하는 음반은 밀리언셀러가 됐고, 음반 수록곡은 연달아 히트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이문세-변진섭·신승훈-조성모’로 이어지는 한국 대중가요의 발라드 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어느덧 데뷔 32년차. 눈가엔 주름도 늘고, 턱엔 나잇살도 붙었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만은 청년 못지않아 보였다.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성일(이하 김) 목소리가 참 고와.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랄까? 그 목소리로 록 밴드(대학 때 활동한 밴드 ‘탈무드’) 활동을 했다는 게 의외야.

변진섭(이하 변) 데뷔 전인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밴드를 했어. 록, 하드록, 헤비메탈이 당시 트렌드이자 레퍼토리였지. 밴드 멤버들이 하드록에 꽂혔을 시기였고, 그러다 보니 나는 당연하게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돼야 했지. 경희대 록밴드 ‘탈무드’ 5기야. 권인하 선배가 1기였고.

목소리가 록 장르와 잘 맞았어?

의외겠지만, 록 가수와 목소리 싱크로율이 거의 100%였어. ‘딥 퍼플’의 이언 길런 목소리만큼은 안 됐겠지만. 어려서부터 내가 모창이나 성대모사를 잘했어. 하하. 느낌을 흉내 내는 거지.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와는 목소리가 거의 비슷했어. 딥 퍼플의 발라드를 부를 땐 내가 더 좋다는 평도 들었어. 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음이 많이 올라갔기 때문이야.

어쨌든 데뷔는 밴드가 아닌 솔로였는데? 발라드를 하고 싶었던 거야?

그냥 음악이 하고 싶었어. 대학 시절 낮에는 밴드 활동 하고, 밤에는 통기타 무대에서 공연했어. 아르바이트였는데, 나중에는 나를 찾는 무대가 많아져서 하루에 다섯군데까지 갔어. 돈도 많이 벌었지. 당시 자가용을 끌고 다닐 정도였어. 밤에 부른 노래가 거의 발라드였지. 그렇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음악 장르가 생기게 되더라고.

1집을 내자마자 큰 사랑을 받았지?

그렇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가수 역사상 최초로 100만장 넘게 팔린 음반이니까.

당시 10대부터 40대까지 누구나 변진섭과 변진섭의 노래를 좋아했지. 정말 인기가 어마어마했어. 2집 200만장 이상, 3집 <어떤 이별>도 120만장 팔렸지. 하지만 그 뒤부터는 방송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것 같아. 이유가 궁금해.

3집 이후부터는 대중성보다는 내 취향이 많이 반영된 음반을 냈어. 기획사로부터 독립을 하니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욕심이 커졌지. (골든디스크 시상식 등에서) 가요대상을 받고 나니까 뭘 해도 될 것 같았어. 특히 4집은 김수철 선배의 곡으로 절반을 채우며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지. 대중적이지 않아서였는지, 반응은 호불호가 갈렸어. 욕도 많이 먹었어. 결론은 뭐, 너무 내 생각 쪽으로 나간 거지. 그러다 보니 방송도 뜸해졌나 싶기도 하고.

가수 변진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매년 음반 내고도 방송 활동 자제…“노래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 이후에도 주춤했는데?

2000년대 전까지는 매년 음반을 냈어. 방송 활동은 거의 안 했지. 이문세 선배처럼 노래로 인정받고 싶었고, 공연장에서 팬들과 교감하고 싶었어. 좋은 음반으로 사랑받고,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면 된다고 여겼지. 내 롤모델은 들국화의 선배들이나 이문세 선배였어. 내 스스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은 탓도 있고. 티브이(TV) 광고를 비롯한 상업적 마케팅을 멀리하며, 오로지 공연과 내 음악으로 승부하겠다는 소신을 지키려고 했지. 지금도 변함이 없어.

변진섭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으로 우리나라 음악 시장 판도가 크게 요동치긴 했어.

그렇지. 그 이후부터는 댄스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고, 발라드는 대중에게서 점점 멀어졌지.

영화 <너에게로 또다시>(1991) 출연 계기는? 유일한 외도 아니었나?

가수는 노래 말고 다른 걸 하면 안 되는 줄 알았어. 당시에도 공연만 하고 방송을 안 한다는 게 내 기본 철칙이었어. 광고도 많이 들어왔는데, 하나도 안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지. 그런데 ‘너에게로 또다시’, ‘희망사항’ 등이 히트하면서 변진섭을 내세우면 뭘 해도 된다고 감독과 회사 관계자가 생각했던 것 같아. 급하게 나를 주인공으로 청춘영화 시나리오를 썼어. 하지만 결국 내가 ‘안 한다’ 하니까 최수종·하희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거지. 나는 당시에 ‘가수 변진섭’ 역으로 잠깐 출연한 거야. 당시엔 뭐, 이상은도 영화 <담다디>에 출연해야 했던 시절이니까.

김수철도 <고래사냥>에 출연했었어. 히트곡이 제목인 영화에 출연한 게 지금은 자랑스러울 것 같은데?

그러게. 지금이라면 내가 주연하고, 시나리오에 개입해서 좀더 멋진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 노래와 같은 제목의 영화가 좋은 영화로 남으면, 그게 내 자산이나 필모그래피로 남지 않았을까.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안 한 편이지?

응. 꼭 해야 하는 거 아니면 안 했어. ‘토토즐’(1985~1997년 방송된 문화방송(MBC)의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1시간 특집 편성 프로그램 출연한 게 다인 듯해. 그래서 당시엔 ‘건방지다’는 소리도 들었어.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가수가 되는 게 내 목표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

2012년엔 문화방송의 <나는 가수다 2>, 2015년엔 제이티비시(JTBC) <히든싱어4>에 출연했는데.

이제는 과거 내 팬들도 중년이 됐고, 공연장에 딸이나 아들을 데리고 나와. 세대 개념을 깨야 하지 않을까 싶어 출연했어. 어찌 됐건 청중들에게 내 목소리로 다른 이의 노래를 들을 기회를 주는 것도 가수의 역할일 거라고 생각했어. ‘나가수’는 그런 시도의 시작점이었지. 근데 ‘야망’(고음 없는 샤우팅을 음악인들이 빗대 쓰는 은어) 없는 노래를 부르니까 딱 떨어지더라.

가수 변진섭.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가수 변진섭이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의외로 내 목소리 닮은 사람 없어…리메이크도 도전하고파”

<히든싱어>의 경우 시즌1 때부터 변진섭을 섭외하려고 공을 들였다는데?

그렇다고 들었어. 3년째 모창자가 안 나와서 섭외를 못 했다고 하더라. 결국엔 출연하긴 했는데, 내가 봐도 그이의 목소리와 나와는 차이가 있었어. 노래는 다들 잘하는데.

세대 개념 깨려면 아이유, 선미, 씨엘 노래를 변진섭이 불러야 하는 거 아냐?

이제는 하려고 해. 약속된 음식 말고, 사이드로 이런 색다른 음식도 있다는 것, 다른 가수의 노래를 잘 리메이크하는 것 등은 팬과 관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 같아.

그래서 말인데, 10집 음반에 배인숙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를 실었던 적이 있잖아. 변진섭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어. 말 나온 김에, 세대 개념을 깨는 일은 드라마 오에스티(OST)를 통해서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지. 근데, 나는 운이 별로 없는 편이야.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언니가 살아있다>에 삽입된 ‘사랑이 올까요’ 정도만 주목받았어. 그런데 그것도 “그 드라마에 나온 그 노래 좋아하는데, 오빠가 불렀어요?” 이렇게 되묻는 분들이 꽤 돼. 하하.

음반 준비 중이지? 새로운 곡은 나왔어?

‘새들처럼’을 작곡한 지근식한테 받은 두 곡, 내가 작곡한 세 곡 포함해서 여덟 곡 확보했어. 3년 만에 나오는 시디(CD) 2개짜리 정규 음반으로, 1개는 라이브 음반으로 준비 중이야. 3월28일 발매 목표인데, 3월 중 미국 공연이 예정돼 있어서 4월로 미뤄질 수도 있어. 공연은 지난해보다 많이 하려고 해. 한 해 공연 스케줄을 짜다 보면 악몽도 꾸는데 긴장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고마워.

변진섭은 한달에 1~2번 이상 공연을 한 지 오래다. 앞으로도 직접 팬들과 만나는 공연을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지난해 여름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했던 데뷔 30주년 콘서트를 직접 가서 관람했었어. 멋있었는데, 벌써부터 올해 변진섭 공연은 어떨까 궁금해지네. 음반도 기대가 돼. 다 잘돼서 변진섭이 다시 ‘발라드의 황태자’로 세대를 아울러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는걸! 고마워.

변진섭 프로필

1966년 / 서울 출생.
1985년 / 경희대 동아리 밴드 ‘탈무드’에 가입하면서 음악 활동 시작.
1987년 / 제1회 문화방송(MBC) 신인가요제에서 ‘우리의 사랑 이야기’로 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
1988년 / 1집 음반 <홀로 된다는 것> 발표. ‘홀로 된다는 것’, ‘새들처럼’,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등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큰 인기를 얻음. 180만장 이상 팔림.
1989년 / 2집 음반 <너에게로 또다시> 발표. ‘너에게로 또다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희망사항’, ‘숙녀에게’가 연이어 차트 1위에 올라 가요계를 석권함. ‘당신의 장난감 당신의 인형’, ‘로라’ 등 음반 수록곡 전곡이 차트 순위권을 오름. 240만장 이상 팔려, 이문세 이후 차세대 발라드의 황태자로 등극. ‘너무 늦었잖아요’로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수상.
1990년 / ‘너에게로 또다시’로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2년 연속 수상. 3집 음반 발표. ‘어떤 이별’이 히트하면서 120만장이 팔림. 그해 신설된 제1회 서울가요대상의 대상 수상. 문화방송 가요대제전 대상 수상.
1991년 / 김수철이 작곡가로 참여한 4집 음반 발표. 타이틀곡은 심상원 작곡의 ‘너와 함께 있는 이유’. 록, 블루스, 포크 등이 섞인 색다른 감성의 곡으로, 음악적으론 파격을 시도.
1992년 / 5집 <그대 내게 다시>, 1994년 6집 <이미지(Image) ’94―니가 오는 날>, 1996년 7집 <어게인>(Again), 1998년 8집 <논픽션>, 1999년 9집 <20B> 등 꾸준히 발표.
2000년 /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 이주영과 결혼해 현재 두 자녀를 두고 있음.
2004년 / 10집 <히스토리>(He’story), 2007년 11집 <드라마>(Drama), 2015년 12집 <타임리스>(Timeless) 등을 발표하며 음악활동을 이어옴.
2018년 / 3월28일 13번째 정규 음반 발표 예정.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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