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신입생 대상 음주 강요 여전..대학가 술문화 달라지지 않았다

김현주 2018. 3. 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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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음주는 물론 성희롱, 폭행 등 새 학기를 맞은 대학가는 아직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수련모임(MT)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신입생들도 각종 환영 행사를 앞두고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OT와 MT를 통해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선배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인 것은 맞지만, 아직도 청춘의 패기를 술로 측정하는 문화와 장기자랑 강요 등이 불편해 참석을 망설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새내기 대학생들 사이에선 아예 OT나 MT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무조건 반감을 가지기 보다는 애초 취지를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 위주로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환영 행사가 주는 긍정적인 요소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4년 경북 경주시의 한 리조트 붕괴 사고가 벌어진 뒤 정부는 대학의 OT를 각별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교육당국은 OT를 되도록이면 교내에서 해결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이드라인이 대학 현장에선 아직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는 형국입니다. 일부에서는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 성폭력 등 인권침해 교육을 더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경찰은 대학 내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OT나 MT 등이 집중되는 이달 말까지 '신학기 선후배 간 폭행·강요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강요하는 얼차려나 회비 명목의 금품 납부 강요, 과도한 음주 강요 등을 '갑(甲)질'로 규정하고 있는 경찰은 올해도 각 대학 소재지 관할 경찰서에 관련 전담수사팀을 꾸렸습니다. 대학 자율성 존중 차원에서 가벼운 사안은 즉심·훈방 조치하지만, 중대한 사안은 고질적 악습 여부와 가해자 범죄 경력까지 따져 엄히 처벌하겠다는 방침입니다.

#1. 18학번 신입생 박모(20·여)씨는 "술 없는 OT에 참가하면서 음주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막상 입학해보니 대학 술문화가 여전한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2. 신입생 김모(20)씨도 "개강 후 가진 술자리에서 'OT 때는 학교나 총학생회 눈치 때문에 적당히 마시고, 개강하고 난 뒤 MT부터 본격적으로 달린다'는 황당한 말을 선배에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의 폭음은 여전히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8일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가 전국 82개 대학 및 전문대 소속 학생 5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나라 대학생 음주 행태 심층조사’에서 한 번에 10잔 이상 술을 마신다는 대학생 비율은 38.4%로 2009년(26.0%)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음주 횟수보다 한 번에 마시는 술의 양이 큰 폭으로 증가, 대학생의 음주량에 대한 심각성을 제기했다.

최근 새 학기를 맞아 대학가 내 술자리가 빈번해지면서 ‘술 강요’ ‘과음(폭음)’ 등 음주행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OT 시즌에는 ‘대학가 내 건전음주’가 화두에 오르다가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흐지부지되는 교내 음주문화에 대해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학생들도 인정한 건전음주 교육 필요성

글로벌 주류기업 디아지오코리아가 지난달 전국 대학생 18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 캠퍼스 음주 문화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54.6%)의 대학생들이 건전음주 교육이 가장 필요한 대상으로 자신(대학생)을 꼽았다.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음주를 경험하고, 음주습관이 형성되는 이 시기가 건전한 음주문화를 배울 수 있는 최적기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설문에 참여한 대학생 10명 중 9명은 건전음주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2명 중 1명은 "건전음주 교육을 직접 받아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전음주 교육의 현 실태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 10명 중 3명만이 건전음주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건전음주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 중 가장 많은 38.5%가 대학 OT에서 받았다고 답했다. 올해 대학 신입생 1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드링크아이큐(DRINKiQ)' 건전음주 교육을 실시한 김영진 디아지오코리아 대외협력총괄 상무는 "건전음주 교육을 받은 신입생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특히 대학생 스스로 건전음주를 배우고 실천해야 대학 내 건전음주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오리엔테이션을 통한 건전음주 교육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원하는 건전음주 교육은 어떤 내용일까.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건전한 음주습관(34.1%) △올바른 자신의 주량 확인(27.9%) △음주 에티켓(26.2%) △음주 이후 대처방안(5%) △습관적인 음주의 위험성(3.9%)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많은 대학생들이 올바른 주량을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고 싶다는 것은 그간의 이른바 ‘술부심(술+자부심)’에서 벗어나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만큼만 마시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눈길을 끈다.

드링크아이큐를 담당하고 있는 서희주 디아지오코리아 사회공헌팀 차장은 “교육 내용 중 특히 표준잔 개념과 계산 방법에 대해 대학생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이는 자신이 마신 술에 포함된 알코올의 양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적정 음주량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어 건전음주를 시작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며 “보다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생의 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라이프스타일 반영, 건전음주 캠페인도 달라져야

이번 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이 활발한 대학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할 때 건전음주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 플랫폼도 SNS로 옮겨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음주문화 개선을 위한 홍보활동 방법을 묻는 질문에 대학교와 협력해 건전음주 습관 달성 시 혜택 제공(25.5%), SNS를 통한 건전 음주 이벤트(20.1%), 웹툰·영상 등을 활용한 SNS 홍보(13.9%), 건전음주 문화 체험활동 진행(12.9%), 대학교 앞에서 홍보 캠페인(12.2%), 대학가 술집 방문해 음주개선 홍보물 배포(9.9%) 등의 순으로 답했다.

SNS를 활용한 이벤트와 홍보가 효과적이라는 답변이 34%에 이르는 것으로, 대학 캠퍼스나 대학가 술집을 돌며 홍보물을 배포하는 등의 기존 캠페인에서 탈피해 대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활동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디아지오코리아의 캠퍼스 건전음주 캠페인인 쿨드링커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세종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차모(24)씨는 "친구들이 대부분 SNS를 통해서 소통하고 있다"며 "건전음주 팁을 알려주는 카드뉴스를 포스팅하거나 흥미로운 짧은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최대한 SNS를 활용해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최근 2030대 사이에서 급증한 '혼술(혼자 마시는 술)족'에 대한 질문도 이뤄졌는데, 한 달에 1회 이상 혼술을 한다는 대학생이 절반이 넘는 52.6%로 나타났다. 주 1회 이상 혼술을 한다는 답변도 17%에 달해 대학가에도 혼술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혼술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31.6%), 혼자 마시는 게 편해서(23.8%), 취미 생활(영화·독서 등)을 함께 할 수 있어서(17.7%) 순으로 답했다. 비용이 적게 들어서(8%),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서(5.8%), 술자리를 가질 시간이 없어서(3.5%)라는 팍팍한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한 답변도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혼술과 관련해 건전음주 교육 시 습관적인 혼술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혼술족이 늘어나면서 음식점과 주점업이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음식점 및 주점업 생산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 감소했다. 이는 2000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음식·주점업은 서민들의 대표적 창업 업종이지만, 생산이 역대 최대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경기 회복세에도 계속된 소비 부진, 1인가구 증가에 따른 소비 트렌드 변화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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