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女 보좌직원은 꽃이라 불렸다"..정치권으로 번진 #미투 움직임

김혜민 2018. 3. 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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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보좌직원은 꽃이라 불렸다"..정치권으로 번진 #미투 움직임

응용법은 이렇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사실이 공개된 지난 5일, 국회 사무처ㆍ보좌진 직원의 페이스북 커뮤니티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다.

글을 쓴 국회 보좌 직원은 "얼굴평가, 성희롱, 성추행은 이미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 직원들은 이미 성폭력이 만성화된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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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커뮤니티에 공개된 '국회 성폭력 백태'
권력형 성희롱·성추행 다반사…직급 낮을수록 철저히 '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위계·친분 이용해 희롱하는 행위 반복돼선 안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국회의원실에 근무하는 여자 보좌 직원은 '여비서'로 불린다. 응용법은 이렇다. 모처럼 원피스를 입고온 날이면 "그렇게 입으니 몸매가 살고 여비서 같네". "여비서는 사무실의 꽃이지". 아주 흔하게 접하는 말이다. 의원실로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를 내놓을 때면 "우리 여비서가 커피는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타"라는 표현도 거침없이 나온다. 성희롱의 일상화다.

#성추행은 너무 숱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남자친구가 있어도 좋으니 나랑 따로 연애하자'며 얼굴과 팔뚝을 거침없이 만진 보좌관, 새벽에 전화와서 '오늘밤 재워달라'는 유부남 비서관, '외로우니 한번만 포옹해달라'며 사정하는 보좌관까지. 술에 취해 허리 쓰다듬는걸 예사로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사실이 공개된 지난 5일, 국회 사무처ㆍ보좌진 직원의 페이스북 커뮤니티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다. A4 용지 3매 분량으로 꾹꾹 눌러 담아쓴 글에는 국회의 성폭력 백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국회 보좌진들은 "터질 게 터졌다"고 말한다. 이미 국회 전반에 권력형 성폭력이 뿌리깊게 퍼져있다는 얘기다.

글을 쓴 국회 보좌 직원은 "얼굴평가, 성희롱, 성추행은 이미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여자 보좌진의 외모와 몸매에 대한 평가가 당연시되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그는 "예뻐서 같이 술을 먹자든지, 얼굴은 수술을 한거냐는 등 성희롱이 혀에 박힌 수준"이라며 "술 한잔 먹으면 성추행도 예사로 일어나지만 워낙 폐쇄적이고 음성적인 곳이라 하소연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글에는 몇년 전 A비서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도 적시됐다. 하지만 신원이 밝혀질 것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글에는 "그 비서관의 회관 내 인맥이나 영향력이 두려웠다. 경찰 조사 이후 지라시 등을 통해 이름이 공개되는 것도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그저 제탓만 했다. 속이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며 "국회는 사실상 치외법권인 곳"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같은날 국회 홈페이지 국민제안 코너에는 실명을 밝힌 국회 첫 미투글이 올라왔다. B비서관은 "2012년부터 3년여간 의원실에서 벌어진 성폭력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직장 상사 관계로 묶이기 시작한 뒤 장난처럼 시작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됐다"고 털어놨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보좌관은 이날 면직 처분됐다.

국회 보좌 직원들은 이미 성폭력이 만성화된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인뿐 아니라 보좌진 사이에서도 상명하복 질서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의원실 보좌진 직책은 비서-비서관-보좌관-수석보좌관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의원이 인사권을 갖고 있어 고용형태상 직급이 낮을수록 철저히 '을'이다. 실권이 수석보좌관에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한 의원 지역구의 보좌 직원이 선임 보좌관에서 수차례 성추행 당한 사실을 의원에게 털어놨지만 "나 역시 감당이 안되는 인물"이라며 같이 부둥켜 울었던 사례도 있었다.

국회 보좌진 중 말단인 9급 비서직은 여성 비율이 70%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최고직급인 4급 보좌관직은 여성 비율이 6%를 채 넘지 못한다. 직급이 높을 수록 남성이 많아 남성 중심의 분위기가 팽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로 인사권을 남성이 갖고 있고 평판조회 중심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국회의 관행이 미투 고백을 확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해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자칫 정치적인 공세 소재로 악용될 것이 두려워 실명 '미투'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한 의원실 보좌 직원은 "그게 아무리 보좌진 사이의 일이라 하더라도 정치 이슈화되면 엉뚱하게 이용될 수 있다"며 "의원한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응통로도 마땅치 않다. 한 의원실 여성 보좌직원은 "의원을 대상으로 한 윤리위원회가 있지만 보좌진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국회 사무처 내부 규정이 있지만 이런 일을 공개하고 처벌하는덴 미온적인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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