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독주로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라리가의 우승 레이스가 안갯 속에 빠졌다. 조용하게 착실히 승점을 쌓아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어느덧 바르셀로나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역전 우승의 가능성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다가오는 5일 오전 0시 15분(한국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위치한 캄프누 스타디움에서 2017-2018 라리가 27라운드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하 아틀레티코)의 경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라리가 우승 팀을 결정지을 수 있는 운명의 일전이다. 올 시즌 열리는 라리가 경기 중 최고의 빅 매치라 평할 만하다.

먼저 홈팀 바르사는 이번 시즌 라리가의 독보적인 선두다. 26경기에서 승점 66점(20승 6무)을 챙겼다. 패배는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리그 일정이 절반도 채 끝나지 않은 시점부터 우승이 확정적이란 예측이 나왔을 정도의 압도적인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아틀레티코는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어느덧 2위까지 올라왔다. 바르사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승점 60점 고지를 밟은 아틀레티코는 현재 승점 61점(18승 7무 1패)을 기록 중이다. 바르사와의 승점 간격은 단 5점 차이다. 한 때 11점까지 벌어졌던 두 팀의 승점 차이를 고려하면 지금의 차이는 아틀레티코 입장에서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간극이다.

'거북이' 아틀레티코의 상승세

올 시즌 아틀레티코의 행보를 가장 잘 비유한 표현은 '거북이'다. 동화 '토끼와 거북이'의 거북이처럼 아틀레티코는 묵묵한 걸음으로 초반부터 달아난 '토끼' 바르사를 추격하는데 성공했다. 앞서 말했듯 이번 시즌 아틀레티코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통틀어 시즌 개막 직후 10경기에서 고작 4번의 승리 밖에 거두지 못했다. 이어진 경기에서도 쉽사리 이기지 못했다. 리그 순위는 4위까지 밀려났고 지난 수 년 간 대성공을 거뒀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부진은 길지 않았다. 쉽게 승리하지는 못해도 지지는 않으며 승점 1점씩은 꼬박 챙겼던 아틀레티코는 2018년 들어서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승점을 쓸어 담고 있다. 올해 있었던 9번의 리그 경기에서 8승 1무의 성적으로 승점을 무려 25점이나 획득했다. 아홉 경기에서 20골을 넣었고 실점은 단 3골 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완벽에 가까운 리그 운영이다.

라리가 무대에서 최고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아틀레티코의 핵심 무기는 단연 단단한 수비다. 아틀레티코가 올 시즌 라리가에서 내준 실점은 11골이다. 경기당 실점은 고작 0.4에 불과하다. 라리가를 넘어 유럽 5대 리그를 통틀어도 아틀레티코의 실점이 가장 낮다. 리그로 한정하면 아틀레티코의 방패막이 유럽에서 제일 견고하다.

감독 디에고 시메오네가 만든 아틀레티코식 4-4-2 포메이션이 여전히 유효하다. 상대 공격진은 아틀레티코가 만들어내는 수비 덫에서 헤맨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인 디에고 고딘이 수비의 중심을 잡고 짝꿍으로 나서는 스테판 사비치 혹은 호세 히메네스가 상대방 공을 탈취한다. 필리페 루이스를 비롯한 주전 풀백들도 물샐 틈 없는 수비력으로 측면을 틀어막는다. 혹여나 슈팅을 허용하더라도 최후의 보루 골키퍼 얀 오블락이 버티고 있다. 4명의 미드필더 자원들도 기본적으로 수비력들이 좋은 선수들로 배치되기에 아틀레티코의 수비는 '늪' 그 자체다.

살아난 공격력은 덤

본래 최대 장점이었던 단단한 '등껍질'이 팀을 지켜냈고 그 사이 침묵하던 공격진이 살아나며 바르사 추격에 불을 지폈다. 이번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시작한 디에고 코스타의 활약이 반전의 계기였다. 아틀레티코가 FIFA로부터 받은 징계로 인해 지난여름 팀에 합류했음에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코스타는 공백기가 무색하게 복귀전부터 득점포를 가동하며 힘을 냈다.

코스타의 존재는 '에이스' 앙투안 그리즈만의 부활도 이끌어냈다. 시즌 초중반까지 그리즈만은 부진을 거듭했다. 개막전 지로나 FC와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며 불운한 시작을 알린 그리즈만은 리그 19라운드까지 단 5골을 넣는데 그쳤다. 세계적인 공격수로 평가받는 그리즈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득점 수치였다.

그러나 코스타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자 우리가 알던 그리즈만이 돌아왔다. 섬세한 기술과 빠른 속도의 그리즈만은 강인한 힘과 건장한 체격의 코스타를 만나자 폭발하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코스타가 버텨주는 사이 발생한 틈을 그리즈만이 기민한 움직임으로 파고들어 상대에게 치명상을 안기고 있다. 최근 리그 7경기에서 그리즈만은 무려 9골을 쏟아냈다. 특히 가장 근래에 있었던 레가네스와 경기에서는 4골을, 그 전 세비야와 경기에서는 3골을 넣으며 무시무시한 득점 감각을 뽐냈다. 시즌 초중반까지의 부진이 무색한 최근 활약상이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승리

아틀레티코가 정상 궤도로 올라온 사이 경쟁자 바르사가 주춤한 점도 아틀레티코의 추격 속도를 가속시켰다. 아틀레티코와 마찬가지로 올해 들어 리그에서 9경기를 소화한 바르사는 6승 3무를 기록 중이다. 나쁘지 않은 기록이지만 경쟁자 아틀레티코의 추격 속도를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경기력이 시즌 초반과 비교하면 떨어졌다는 점이 바르사의 걱정거리다. 빡빡한 경기 일정이 바르사의 힘을 빼고 있다. 아틀레티코와 달리 바르사는 모든 대회에서 올 시즌 순항 중이다. 스페인 국왕컵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고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도 소화했다. 올해 들어 바르사는 주마다 빠지지 않고 두 경기 씩을 치러내고 있다. 최근 바르사가 가진 가장 긴 휴식기는 23라운드 헤타페 전과 24라운드 에이바르 전 사이 6일이다. 때문에 주전급 선수들의 피로도가 상당히 높다.

지난 금요일 바르사가 라스팔마스 원정 경기를 소화했다는 점도 아틀레티코에게는 호재다. 라스팔마스는 아프리카 모로코의 옆에 붙어 있는 섬이다. 스페인 땅이지만 스페인 본토보다 아프리카 대륙과 거리가 훨씬 가깝다. 라스팔마스 원정길은 사실상 해외 원정길을 소화하고 온 것과 비슷하다. 바르사보다 하루 더 많이 쉬고 홈에서 가볍게 승리를 챙겼던 아틀레티코가 체력적으로 우위에 놓여있다.

승리를 위한 판이 깔렸다. 승리만 가져올 수 있다면 아틀레티코에게 리그 역전 우승은 더이상 꿈이 아니다. 바르사전 승리로 아틀레티코는 승점 차이를 5점에서 2점까지 줄일 수 있다. 승점 2점 차는 단 한 경기 만에 순위를 뒤바꿀 수 있는 점수 차다. 또한 승점 동률시 승자승 원칙에 따라 순위를 결정하는 라리가의 특성상 우승 경쟁자 바르사를 상대로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다. 8라운드 경기에서 양 팀은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틀레티코는 이번 경기에서 승리하면 바르사를 상대로 우위에 설 수 있다. 

아틀레티코의 불안 요소

바르사전을 앞둔 아틀레티코가 긍정적인 기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일단 상대가 바르사다. 바르사는 여러 역경 속에서도 무패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과거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승부를 짜내는 능력이 좋아졌다. 분수령으로 꼽혔던 13라운드 발렌시아 원정에서 선제 실점을 내주고도 기어코 동점을 만들어 승점 1점을 챙겼고, 고전했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첼시와 경기에서도 선제골을 허용했음에도 무승부란 결과를 이끌어냈다. 먼저 실점하면 다소 흔들리던 바르사의 모습은 이제 없다.

올 시즌 바르사는 중요한 경기에서 소기의 목적을 반드시 달성했다.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굳이 무리해서 승리를 노릴 필요가 바르사에게는 없다. 승점 차이를 5점으로만 유지해도 여전히 바르사의 우승 가능성이 높다. 바르사의 공격을 받아주다 기습적인 역습으로 득점을 노려야 할 아틀레티코인데, 바르사가 현상 유지를 위해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 가면 승리는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아틀레티코가 캄프누 원정 경기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시메오네의 등장 이후 아틀레티코는 바르사와 우승 경쟁을 하는 강팀으로 성장했지만 원정 경기에서는 매번 고배를 마셨다. 시메오네 감독 부임 이후 아틀레티코는 바르사의 홈 경기장에서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했다. 캄프누에서 승리를 챙긴 기억은 13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기에 바르사의 이적생들이 팀에 녹아들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부담되는 요소다. 부상 등의 이유로 전혀 활약하지 못했던 오스만 뎀벨레가 점차 잠재력을 경기장에 표출하기 시작했고, 필리페 쿠티뉴가 짧은 적응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바르사는 '플랜 A'로 자리 잡은 4-4-2 포메이션부터 바르사의 기본 포메이션이라 할 수 있는 4-3-3 포메이션까지 활용이 가능하다. 다양한 공격 패턴의 대비가 필요한 아틀레티코의 상황이다.

반면 아틀레티코는 쥐고 있는 패가 바르사보다 적다. 지난 27일 아틀레티코는 야닉 카라스코와 니콜라스 가이탄의 중국 무대 진출을 발표했다. 이제 아틀레티코 1군에 남은 선수는 고작 19명에 불과하다. 물론 최근 경기에서 카라스코와 가이탄이 핵심 멤버로 중용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19명이라는 숫자는 리그를 운영하는데 큰 차질이 될 전망이다. 바르사 전에서 승전보를 알려도 얇아진 선수층은 향후 승점 관리에 구멍이 될 수 있다.

당장 가장 두려워 할 부분은 리오넬 메시의 발끝이다. 올 시즌 메시는 리그에서만 23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영혼의 파트너 루이스 수아레즈와 호흡이 나날이 발전하며 매서운 득점 감각을 자랑 중이다. 득점과 어시스트 부분에서 리그 1위 자리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축구 통계 사이트 '소파스코어'에 따르면 경기당 키패스 2.7개와 드리블 5.3개를 성공하며 이 부분에서도 테이블표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아틀레티코는 메시에게 세비야 다음으로 많은 실점(22골)을 허용했다. 최악의 상대가 아틀레티코 앞에 놓여 있다.

4년 만에 라리가 타이틀 탈환을 노리는 아틀레티코. 수직 상승하는 그들의 경기력에 바르사라는 최대 관문이 등장했다. 지면 사실상 우승은 물 건너가지만 이기면 역전 우승 가능성은 한껏 높아진다. 아틀레티코에게 절호의 찬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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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리즈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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