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학기 우유전쟁 "누구를 위한 우유급식인가"

류인하 기자 2018. 3. 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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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부의 확대 방침에 원치 않는 부모, 아이, 교사 모두 스트레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인 김모씨(36)는 새 학기를 앞두고 또다시 아이들과 ‘우유전쟁’을 벌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우유를 먹이려는 자와 우유를 마시지 않으려는 자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에는 3학년 담임을 맡았다. 당시 반 아이 중 유당불내증 및 체질문제로 우유를 마시지 못하는 아이 3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우유급식을 신청했다. 그러나 정작 신청하고도 우유 마시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선생님, 아침에 우유 마시고 와서 배가 불러요”부터 “장염증세가 있어서 엄마가 오늘은 우유 마시지 말고 그냥 들고 오래요”까지 아이들은 확인되지 않는 온갖 핑계를 쏟아내며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유를 마시는 척하다가 화장실 변기에 뱉는 아이까지 나왔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 집에 쌓이는 우유팩 우유급식을 놓고 김씨와 아이들의 갈등은 학기 내내 반복됐다. 사물함에 우유를 넣어놓고 몇 주째 방치했다가 상한 우유가 터지는 일은 흔하게 벌어졌다. 김씨는 “우유도 마실 아이들만 마시게 하면 좋을텐데 학교가 우유급식률에 신경쓰다보니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 입장에서야 우유 신청을 독려해야 하지만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잘 상의해 ‘학교 우유급식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신청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4학년 쌍둥이를 키우는 박모씨(41) 역시 매일 넘쳐나는 우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학교에서 일괄 우유급식을 하는 탓에 먹지도 않는 우유팩이 집에 계속 쌓이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지난해 담임선생님께 “우리 아이들은 굳이 우유 안 먹이셔도 됩니다”라고 전화까지 했지만 아이들의 가방에는 늘 우유팩이 들어 있었다. 박씨는 “직장맘이다 보니 아이들 가방을 챙겨주지 못할 때가 많은데 가끔 보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우유팩이 3개씩 나올 때도 있었다”면서 “애들에게 ‘안 마실 거면 집에 와서 냉장고에라도 넣어둬라’고 잔소리해봤지만 그때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학교 우유급식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선학교 현장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유급식을 거부하는 아이들은 증가하고 있는데 정부가 우유급식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일선학교 현장에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또 성장기 아이들을 위한 조치인지, 낙농업자 살리기를 위한 조치인지 헷갈린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공약으로 학교 우유급식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에 따라 올해 우유 무상급식 대상자를 기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특수교육대상자, 한부모가정에서 국가유공자 자녀, 다자녀가정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유급식 대상자는 확대됐지만 정작 올해 학교 우유급식 신청자는 지난해보다 소폭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학생 수가 줄어든 원인도 있지만 그만큼 유상으로 신청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학교 우유급식을 받는 초·중·고교생은 56만3658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당초 정부가 무상급식 대상자 확대치(1만9000명)를 반영해 올해 목표치로 정한 57만4000명(51.4%)보다 약 1만300여명 적은 숫자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는 딸을 키우는 회사원 양모씨(38)는 아이가 세 살 되던 해부터 우유를 먹이지 않았다. 굳이 우유를 섭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음식으로 영양섭취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씨는 “아이가 우유를 달라고 하면 주기는 했지만 소아청소년과나 육아서적에서 ‘하루에 500㎖ 이상 우유를 먹여라’고 강제하는 말을 굳이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유의 효과에 대해 명확한 결론도 없이 마치 아이가 우유를 마시지 않으면 심각한 성장 불균형에 이를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하는 문화가 거북하다”고 했다. 양씨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굳이 우유를 신청해 먹이지 않을 생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와 학생 간의 우유급식 갈등을 재미있게 풀어낸 노래 <우유 가져가>도 나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곡은 유튜브 조회수만 4만2000건에 달한다. 현직 교사들이 결성한 ‘수요일 밴드’가 부르는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6교시 마치고 종칠 때쯤에 애들 보내려고 하는 찰나에 급식소 영양사님의 메시지. 냉장고에 우유 아직 있다지. 우유당번 19번 지금 바로 가져와. 선생님 깜빡했구나 우유 마시고 가거라. 우유 가져가 좀! 우유 마셔라 좀! 우유갑 던지지 말고 잘 포개 넣어 좀!’

수요일밴드 <우유 가져가> 뮤직비디오 캡쳐화면

교사와 학생 간 갈등 풍자한 노래까지 원치 않는 우유급식은 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아이에게도 모두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평소 우유를 좋아하고 잘 마시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영양간식이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유급식은 강요가 아닌 선택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부산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이모씨(37)는 “부산은 우유급식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여타 지역보다는 좀 덜한 편”이라면서도 “담임이나 영양교사에게 우유급식 책임을 미룬 채 우유급식률 높이기에만 급급한 학교 관계자들을 보면 솔직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무상급식으로 우유를 주는 취지에는 100% 공감하지만 진짜 마시고 싶은 아이들이 즐겁게 마시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학교 우유급식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박정희 정권은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1962년부터 일부 학교에 우유급식을 시작했다. 이후 1970년 전국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에 도입됐고, 점차 중·고등학교까지 확대됐다. 전후 시기인 50여년 전에는 말 그대로 ‘먹고 살 것이 없어’ 우유가 좋은 성장발육 식품으로 각광을 받았다. 실제 우유는 칼슘, 단백질, 비타민 등 필수 영양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왔다. 최은석 가천의대 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지난해 6월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와 ㈜청년의사가 공동으로 주관한 우유 인식개선 포럼에서 “고칼슘 식품인 우유는 뼈에 좋다”며 “특히 여성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성은 중학교 때 집중적으로 우유를 마셔 영양공급을 하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발표했다. 강재헌 서울 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칼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당, 단백질, 비타민D 등이 함께 섭취되면 좋은데 우유는 이 같은 영양소가 골고루 함유돼 칼슘 흡수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유 자체의 안정성을 의심하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제 2015년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중에 유통되는 ‘무항생제 인증 우유’는 실제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젖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반 젖소보다 항생제 사용기간을 조금 더 줄인 것에 불과하다”고 폭로해 많은 부모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었다.

이상우 실천교육교사모임 이사는 “교사가 아이들과 씨름을 하는 일 중 10분의 1은 우유급식 때문”이라며 “무료급식이 필요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이제는 교사가 아이들의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실현장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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